내 어릴적의 가을은 뒤란 처마 밑에 매달거나 외양간 시렁 위에 올려 놓았던 멍석이 마당에 깔리면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 곡식들이 차례로 앞마당 바깥마당으로 들여져 오면 하늘은 아낌없이 햇볕을 내려 주었다. 풍구질을 끝낸 벼, 깍지 벗은 콩이며 팥, 도리깨질로 벌어진 깨송이에서 쏟아져 나온 들깨와 참깨, 햇대추에 찐고구마 썰은 것까지 온갖 가을걷이들이 그 멍석 위에 널려졌다. 해가 기울면 멍석 네 귀퉁이를 말아 덮어 이슬을 피하고 아침이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멍석을 열어 놓는 일이었다. 고무레로 골고루 펴 따글따글한 햇볕에 수분을 날린 곡식들은 곡간을 채워갔고 밤이면 하늘의 달도 하루하루 도톰하게 살을 찌웠다.
가을햇빛은 큰멍석에는 크게 작은 멍석에는 작게 쏟아지며 살림을 도왔다. 반달이 뜰 때쯤이면 동그란 도리방석 위에 콩알만씩하게 부순 누룩이 널려졌다. 도리방석 위의 누룩은 밤에도 이슬을 맞혔다. 낮에는 햇볕에 밤에는 이슬에 뒤채이며 잡냄새를 날린 누룩은 고두밥과 섞여 술로 빚어졌다. 술을 빚는 날, 사랑마루 작은 멧방석 위에 솔잎 섞어 찐 고두밥이 식혀지고 나는 가까이 온 추석을 예감하며 작은 주먹으로 찹쌀고두밥을 자꾸 쥐어 먹었다.
“햇빛도 아깝다. 햇빛도 아까와.” 하시며 종종걸음을 하시던 어머니, 천지에 가득한 햇빛을 무에 그리 아까와 하시는지 그때는 알 수가 없었다. 그 아까운 햇볕에 어머니가 솜이불을 내다 걸고 온식구의 고무신을 뽀독뽀독 씻어 토방에 기울여 놓으면서 추석은 한발 더 가까이로 다가왔다. 햇볕을 먹은 솜이불들은 이스트 넣은 빵처럼 부풀어갔고 하얀 코빼기고무신의 물기를 말리는 일도 가을햇볕이 맡아 하던 일이었다. 푸우푸우 물품질을 해서 꾹꾹 밟아 다시 말린 풀먹인 옥양목 홑청 위에 쏟아지던 다듬이질 소리, 또닥또닥 또드락 딱딱! 어머니의 고단한 잠을 덜어내며 한밤을 울리던 그 소리는 추석이 다가오는 소리였다.
솜씨 좋은 어머니는 가을볕이 남아 있는 마루 끝에 앉아 식구들의 베개를 만드시기도 했다. 팥이나 녹두, 메밀을 넣어 씨앗베개를 만들고 몸이 찬 딸을 위해서는 따뜻한 성질을 품고 있는 구절초 꽃잎을 말려 꽃베개도 만드셨다. 단오날에는 다섯 마디, 구월 구일에는 아홉마디가 된다하여 구절초라 불려지는 산국화는 산밭으로 가는 기슭에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늘에 말린 꽃잎을 다듬어 골무 끼고 한땀 한땀 키 낮은 베개를 시침질 하시던 어머니 모습은 뒤란으로 떨어지던 감잎의 부드러운 선회처럼 한가로와 보였다. 돌아누울 적마다 사각사각 푸샛소리를 내던 솜이불과 구절초베개로 잠들던 시간, 그때는 몰랐었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가장 달콤한 잠의 기억이 그 햇내 나는 이불 속으로, 그 꽃내 나는 베개 위로 지나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추석을 서너 날 앞두고 집안의 문짝이란 문짝을 다 떼어내 창호지 갈이를 하는 게 또 하나의 가을의식이었다. 물에 불려 묵은 창호지를 떼어낸 문살과 한지에 빗자루로 밀가루풀칠을 하고 반듯하게 네 귀를 맞춰 붙인 다음 안채 사랑채의 토방이나 장독대에도 기대어 놓고 마르기를 기다렸다. 볕에 말라가는 문짝에 더 탱글거리라고 할머니는 푸우푸우 입으로 물품질을 해주시고 물안개와 햇볕을 듬뿍 먹은 문들은 북처럼 탱탱하게 부풀어 올랐다.
창호지 갈이의 마지막 작업은 사람들의 손이 자주 닿아 잘 어지는 문고리 부분에 두 겹 겹쳐바르기를 하며 꽃잎을 끼워 바르는 일이었다. 꽃잎을 따기 위해 뒤란으로 고샅으로 꽃을 타⃞아 다니시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흉내를 내 나도 꽃잎을 따러 다녔다. 내가 내민 꽃잎도 서너 장 뽑혀 꽃잎창호지로 만들어지는 걸 바라보며 즐거웠던 기억, 억센 세월만 사시던 할머니에게도 숨어 있던 꽃잎을 통한 고운 정서를 훔쳐보며 괜스레 흐뭇하던 내 나이는 여덟이었던가 아홉이었던가. 새 창호지로 분통같이 뽀얘진 방안에서 목화솜 이불을 덮고 자는 밤, 달빛이 들면 등잔불을 끄고 누워도 창호지문들은 밤새도록 꽃을 피웠다.
한 톨 쌀도 아끼시던 할머니가 새벽부터 마루방의 쌀독에서 아낌없이 쌀을 푹푹 퍼내시는 소리가 들리면 기다리던 추석 전날, 어른들이 일컫는 팔월 열나흩날이 밝았다는 뜻이었다. 추석준비를 하시는 어른들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일은 즐거웠다. 어머니의 만류에도 오리 길은 걸어야 하는 방앗간을 따라가고 솔잎을 뽑으러 가시는 할머니를 따라 뒷산으로 올라갔다. 뒷산으로 오르는 길 둔덕에 비스듬히 서있던 고욤나무에는 아무도 따가지 않는 도토리만한 감들이 다닥다닥 매달려 있었다. 된서리가 몇차례 내리도록 나뭇가지에 매달려 얼렸다 풀렸다를 반복하던 쪼글쪼글하던 그 고욤들은 새들의 차지가 되곤 했다.
팔월 열나흩날 저녁, 송편을 빚는 어른들 사이에 끼어 앉아 내가 만든 송편은 깨진 사금파리처럼 못생겼었지만 할머니는 이쁘다 이쁘다 칭찬하시고 앞산에서는 보름달이 떠올라 마당 가득 달빛을 풀어 놓았다. 외양간 지붕 위에도 쏟아지던 그 달빛은 박꽃을 하얗게 피워 놓았다. 박각시나방이 부지런히 꽃술을 드나들던 그 밤, 베개만씩한 떡반죽은 줄어들 줄 모르고 가마솥으로 옮겨진 송편들이 익기를 기다리다 하품에 몰린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두부를 쑤고 조청을 졸이느라 큰솥 작은솥 아궁이마다 타들어간 솔가지가 두어 짐이 넘고 보니 방바닥이 설설 끓어 방문을 열어 놓아야 잠들 수 있었다. 열려 있던 방문으로 보이던 앞산에는 대소쿠리만한 달이 걸려 있고 달빛에 무색해진 상기둥나무의 호롱불도 슬며시 졸음으로 빠져들었다. 졸린 눈꺼풀로 견디던 나의 마지막 기다림은 반달이 온달로 살찌워가는 걸 기다리던 시간보다 두어배는 길게 여겨졌다. 안간힘을 쓰던 내 눈꺼풀이 스르르 닫히면 하늘에 떠있던 온달은 반달이 되고 반달은 눈썹달로 줄어들며 내 잠 속으로 같이 쓰러져 들어왔다.
아침에 잠을 깬 내가 맨 먼저 하는 일은 마루방의 문을 열어보는 일이었다. 요술처럼 채반마다 수북수북 삼베 보자기에 덮혀 있을 솔잎 묻은 송편들과 들기름으로 지져낸 갖가지 지짐들, 색색 고명이 얹혀 있던 찐 조기 한 마리, 사각대소쿠리 속의 볍쌀산자, 하얀 쌀밥이 동동 떠있던 식혜가 어우러져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냄새가 가득할 마루방을 꿈꾸며 잠들던 팔월 열나흩날 밤의 기억, 꽃가지가 휘이도록 달빛이 쏟아지던 그 밤이 그립다.
스무말 드리 쌀독에 하얀 쌀이 가득 차면 행복했던 할머니와 겨우내 군불을 지필 삭정이나 솔가지가 나무청에 가득 차면 더 바랄 것이 없으시던 할아버지의 그 욕심없던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었음을 깨달은 내 머리칼엔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종종걸음 뒤를 쫓아다니던 내 팔랑개비걸음이 재미있게 찍혀 있던 옛날집 마당, 그 초가의 앞마당엔 오늘도 달빛이 흥건하리라. 햅쌀고봉밥을 담았던 밥사발만한 그리움이 묵지근하게 가슴으로 매달려오는 추석, 이국의 하늘엔 하얀 낮달이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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