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새 학년을 시작하면서 많은 부모들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한다. “아이가 지난 해 보다 공부를 잘 하게 하려면 어떤 자극을 줘야 할까” 고심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나이에 따라 집집마다 다양한 규칙들이 생긴다. 숙제를 마치면 아이스크림을 준다거나, A 받아올 때마다 1달러씩 준다거나, 성적표가 잘 나오면 놀이공원에 데려간다거나, 성적이 떨어지면 게임시간을 없앤다거나, 숙제 빼먹으면 용돈을 깎는다는 등이다.
내용은 조금씩 달라도 기본은 같다. ‘당근과 채찍’의 교육법이다. “엄마아빠가 너희를 무조건 다 받아줄 수는 없다. 잘 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줄 테니 알아서 하라”는 으름장이다.
학기 초인 지금은 대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열심히 하려고 각오를 새롭게 하고 부모는 착실해진 아이들이 흐뭇해서 집안이 평화롭다. 하지만 한달이 가고 두달이 가면서 불협화음은 터져 나온다. ‘당근’이 안 먹히고 ‘채찍’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일들이 생긴다.
몇 년 전 한 주부는 초등학교 2학년 딸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학부모 면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학교를 찾아간 그 주부 앞에 은퇴가 가까운 백인 할머니 선생님이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아이의 시험지였는데 부모가 사인해야 할 난에 삐뚤빼뚤 어설픈 사인이 그려져 있었다. 7살짜리가 아빠의 사인을 흉내 낸 것이었다.
경험 많은 할머니 선생님은 아이를 야단치는 대신 부모를 불러 조언했다. 아이에게 ‘잘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이 있는 것 같으니 아이의 마음을 좀 편하게 보듬어주라는 것이었다.
당근과 채찍을 써야 할지, 쓴다면 얼마나 써야 할지는 자녀를 키우면서 많은 부모들이 고민하는 문제이다. 간혹 아주 특별한 아이들이 있기는 하다. 숙제든, 시험이든 스스로 알아서 잘 하고, 뭔가 새로운 내용을 배우면 너무 재미있어서 같은 주제의 책들을 모두 찾아 읽고, 과제가 새로 나오면 그날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자료를 모으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보통의 아이들은 숙제 보다 노는 게 좋고, 공부 보다는 게임이 좋으니 부모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상도 주고 벌도 주면서 아이들을 닦달해야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게임기를 상으로 내걸면 더 신이 나서 공부하고, 한번 호되게 야단을 치고 나면 공부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보통의 아이들이니 부모로서는 그런 ‘약발’에 초연하기가 어렵다.
당근과 채찍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서는 교육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찬반논란이 뜨겁다. 심한 경우 물건이나 돈 뿐 아니라 부모의 관심과 칭찬, 사랑까지도 수단으로 이용하라는 전문가들도 있다. 아이가 말을 잘 들을 때는 사랑을 듬뿍 주고, 말을 안 들을 때는 쌀쌀하게 대하는 조건부 사랑 양육법을 쓰면 아이들이 부모 사랑을 얻고 싶어 말을 잘 듣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대표적 심리학자는 에드워드 데시 박사이다. 동기부여 심리학의 전문가인 그는 당근과 채찍이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그 효과가 지속적이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심리적 상처를 남긴다고 말한다. 지난 2004년 그가 이스라엘 연구진과 함께 100여명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를 토대로 한 주장이다.
연구진은 학생들이 부모로부터 무조건적 사랑을 받았는지 조건부 사랑을 받았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를 보면 부모가 당근과 채찍을 양손에 들고 키운 학생들은 자라면서 확실히 부모의 말을 잘 따른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심리적 압박감 때문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학생들은 부모를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인가정에서도 자녀가 대학에 가고 난 후 부모와 거의 남남이 되는 케이스들이 있다.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받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가슴에 앙금으로 남은 경우들이다. 자녀 잘 되게 만들려고 엄하게 훈육하다가 결과적으로 자녀와의 관계를 망친다면 그 보다 허망한 일도 없다.
모든 성공의 열쇠는 자율성이다.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해야 열심도 생기고 열정도 생긴다. 올 가을 자녀와의 대화내용을 바꿨으면 한다. ‘오늘은 몇 점?’ ‘A는 몇 개?’는 잠시 접자. 대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얻는 앎의 기쁨, 최선을 다한 후 얻는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다면 성적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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