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되면 나는 늘 남동생과 함께 외가에 갔다. 방학이 시작되는 날 떠나 개학되기 바로 전날 다시 돌아올 만큼 외가를 좋아했다. 탈탈거리는 완행버스를 갈아타고 외가 마을 앞에 내리면 버스 꽁무니가 내뱉은 뽀얀 먼지가 걷히면서 제일 먼저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작은 송방(구멍가게)이 눈에 띄었다. 구슬같이 생긴 왕사탕, 별같이 생긴 별사탕, 팔각모양의 아리랑 성냥도 있었고 금잔디나 청자담배도 팔던 그 가게의 창틀은 언제나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메뚜기들이 수선스레 흩어지는 들길을 가로질러, 바람이 불 때마다 짜갈짜갈 소리내는 미루나무 밑을 지나 야트막한 산 모퉁이를 돌면 돌감나무 한그루가 외양간에 기대어 서있는 외가가 보였다. 외가의 대문 앞에 도착하면 먼저 문간의 옥잠화가 정갈한 잎 사이의 옥비녀 같은 하얀 꽃을 흔들며 우릴 반겼다. 손자들이 대문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외할아버지는 보리쌀 자루를 지게에 얹고 원두막으로 과일을 사러 가시고 외할머니는 마중물 한 바가지를 붓고 한여름에도 한기가 오소소 돋는 펌프 물을 끌어 올리셨다. 그 물에 신작로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온 우리들을 개운하게 씻겨 마루로 올려 보내시고 보리쌀 한 자루와 바꿔 오신 여름 과일들을 동동 띄워 놓으셨다.
손이 귀한 외가의 맏자식이었던 어머니를 출가시키고 자주 볼 수 없는 대신 방학만 되면 찾아오는 어린 손자들에게 쏟아지는 두 분의 사랑은 특별했다. 외할아버지는 우리가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손자들 오는 길에 행여 걸려 넘어질까 동네 앞 소롯길에 박혀 있는 작은 돌멩이까지 다 뽑아 놓으셨고 외할머니는 달콤한 팥소를 넣은 찐빵이며 살찐 반달 같은 수수부꾸미, 밀가루 강낭콩 떡이며 감자떡 같은 걸 준비해 놓으셨다.
동생과 나는 외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싸리나무 잠자리채를 들고 매미나 잠자리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거미줄을 탱탱히 감아 매미 소리가 나는 뒤란 감나무나 싸리 울타리에 숨죽여 다가가다 보면 콩닥콩닥 가슴 뛰는 소리가 귓등까지 들려왔다. 끈적이는 거미줄에 붙어 파들거리는 매미 중에는 삐쪼-시 삐쪼-시 하고 울던 삐쪼시매미나 매양매양매양?하고 울던 매양매미가 많았다. 저녁을 짓는 외할머니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뒤란으로 난 부엌문으로 매양매미가 자주 울었다. 시집간 가난한 누이집에 얹혀살던 한 소년이 배가 고파 누이에게 밥을 달라 하니 매형이 오면 같이 주겠노라 해 뒤뜰 장독대에 앉아 매형을 기다리다 지쳐 죽었다 한다. 그 죽은 동생이 매미가 되어 매양매양하고 꼭 집 뒤의 나무에서 우는 거라는 매미의 전설을 들려주시던 외할머니, 여름이면 한번쯤 슬픈 매미 이야기가 생각나고 환청처럼 매미울음이 들려오기도 한다.
분꽃이 향기를 토해내는 마당에 들마루를 놓고 저녁을 먹고 나면 하늘에 별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별과 같이 나타나는 것이 또 있었는데 앵앵 소리를 내던 모기들이었다. 외할머니는 풍년농약사인지 풍농농약사인지에서 얻어온 제초제 광고가 그려져 있던 부채로 연신 부채질을 해주셨고 외할아버지는 다북쑥이나 엉겅퀴 혹은 생보릿대를 태워 모깃불을 지피셨다.
싸릿한 쑥내와 함께 매캐한 모깃불이 지펴지면 모기들은 농기구들을 두던 헛간이나 사랑채 쪽으로 달아나버렸다. 참외나 수박을 배부르게 먹고 들마루에 누워 하늘을 보면 은하수가 강처럼 하늘을 흘러가곤 했다. 벼포기를 가슴에 안은 밀짚모자 쓴 농부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부채바람에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하늘을 바라보다 잠이 들면 외할아버지가 우리를 번쩍 들어 방 안의 모기장 안으로 옮겨 뉘이셨다. 방학책이나 목침 혹은 벗어 놓은 옷가지들로 네 귀퉁이가 눌려져 있던 하늘색 모기장 안에서 자다 보면 으례히 한 번씩 잠이 깨졌고 깊은 밤, 반쯤 감은 눈으로 볼 일을 보며 바라보던 외가의 하늘엔 살찐 별들이 마당 끝까지 내려와 있었다.
여름방학 중엔 꼭 장마비가 왔다. 숨이 찬 여름 소낙비들이 나무들을 푸우푸우 흔들어대기도 하고 앞마당에 피어 있던 칸나나 과꽃의 꽃목을 부러트리기도 하며 비가 내렸다. 그런 날이면 외할머니는 뒤란 장독대에 피어 있던 복숭아꽃잎을 따서 내 열손가락에 꽃물을 들여 주셨다. 오목한 돌멩이에 꽃잎과 백반을 같이 놓고 작은 돌로 찧어 내 손톱 위에 작은 꽃무덤을 올려놓으시고 콩잎으로 돌돌 감아 무명실로 칭칭 동여매어 주시며 어쩌면 작은 네 손이 엄마를 꼭 빼닮았구나 감탄하셨다. 어린 손녀의 손끝이 아릴까 그날 밤잠을 대신 설쳐 주시던 외할머니의 기억…. 마당에는 장마비가 스미고 내 손톱에는 꽃물이 스미던 그 비릿한 꽃내음의 밤은 빗소리에 갇혀 아늑했었다. 행복했었다.
그 손톱에 하얀 초승달처럼 새 손톱이 자라 나오면서 여름은 쉽게 지나갔다. 빨랫줄을 고여 놓은 바지랑대 끝에 꽁지가 빨간 고추잠자리가 날아들고 늦여름을 장식하는 참매미가 왕왕 큰소리를 내며 시끄럽게 등장하면 여름이 떠날 채비를 한다는 징조였고 우리들도 외가를 떠나야 한다는 표시였다. 들마루에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에 은하수가 서서히 중앙 하늘로 옮겨 앉기 시작하면서 새벽녘엔 찬 기운이 모기장 안으로 밀려들었다. 밀린 일기나 다듬잇돌 밑에 눌러 두었던 말린 풀잎들을 꺼내 식물채집 숙제를 마무리하는 우리 곁에서 어제나 그제의 날씨와 풀이름을 일러주시던 외할머니는 떠나보내야 할 우리들이 아쉬우신지 자꾸만 머리를 쓰다듬으시곤 했다.
친가로 돌아가는 날 아침의 외갓집은 어느 날보다 부산스러웠다. 외할아버지는 지게에 짐을 얹으시고 점심과 과일까지 배부르게 먹은 우리들은 햇빛이 좀 사위어가는 시간을 택해 지름길인 산을 넘어 친가로 향했다. 에둘러 갔던 찻길보다 훨씬 가까운 산길이었지만 외할아버지가 없으면 엄두도 못내는 길이었다. 사라질듯 나타나던 조붓한 산길은 등성이를 넘고 산도랑을 끼며 혹은 바위 밑을 둘러 나있었다. 가을이 다가오는 산에는 군데군데 산꽃이 피어 있기도 했다. 주홍색 꽃분을 재채기하듯 털어내는 산나리나 일찍 핀 보라색 쑥부쟁이꽃을 꺽다보면 외할아버지가 장난삼아 숨어버리시기도 했다. 어린 남매가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에야 나타나 너털웃음을 웃으시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손엔 산나리가 가득했다.
이별을 해야 하는 마지막 산등성이에 서면 버섯같이 오그린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친가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할아버지는 지게에서 내린 짐을 똑같이 나눠 남매의 등에 지워 주시고 미리 준비하신 막대기를 하나씩 손에 쥐어 주셨다.
외할아버지가 일러주신 대로 막대기로 풀숲을 탁탁 두드리며 음력 칠월의 산을 내려올라치면 독사가 나타날지 모르는 두려움도 컸지만 무성한 숲에 가려져 이내 보이지 않게 된 외할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더 컸다. 잘 내려가고 있는지 확인하시느라 간헐적으로 남매의 이름을 부르는 외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왔다. 용택아- 용미야- 할아버지의 부름에 화답을 해야 안심하실 텐데 금방 헤어진 외할아버지가 목메이게 그리워 눈물이 맺히고 대답은 목울대 안으로 숨어들었다. 간신히 예- 하고 대답을 올려 보낸 뒤 눈물로 어룽지는 산길을 내려왔다. 외할아버지가 동생의 등짐에 꽂아주신 산나리 꽃묶음이 동생의 걸음을 따라, 내 눈물을 따라 노랗게 흔들리던 산길, 남매의 이름을 번갈아 부르시던 외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듯 여름 산에 아련히 메아리쳐졌다.
그날 밤 해거름에 산길을 혼자 돌아가셨을 외할아버지가 걱정되어 자꾸만 올려다보던 앞산 꼭대기에도 빛나는 별 몇 개가 걸려 있었다.
다시 여름은 오고 그 산의 꽃들은 그때처럼 피어 있겠지만 다시는 동행할 수 없는 세월 너머의 여름 산, 그 너머 외갓집에서 보낸 여름방학의 아름답던 기억만이 손톱 끝에 남아 있던 봉숭아 꽃물처럼 선명히, 혹은 아리게 내 가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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