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속이면 젊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가 ‘나이’를 생각하는 것은 보통 40대 후반 즈음이다. 젊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가 40대 중반 넘어서면서 “이제는 나이 때문에 안 되겠구나” 하며 마음을 접는 일들이 생긴다.
그리고 그 즈음 같이 접게 되는 것이 몸이다. 우리 몸은 보통 50살을 고비로 내리막길로 접어든다고 한다. 평균수명이 길어져 내리막길의 노년기는 대개 30여년 이어지는 데 이때 “아직 오르막길이다!”며 뇌를 속이면 노화를 늦출 수가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건강 베스트셀러 ‘내년에는 더 젊게: 80살 너머까지 50세 처럼 사는 법’을 쓴 헨리 라지 라는 내과의사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50대가 매일 땀을 흘리며 열심히 운동을 하면 몸은 자기가 아직 젊은 줄 알고 부지런히 세포를 새로 만들며 늙기를 멈추고, 축 쳐져 있으면 몸은 죽을 때가 다 된 줄 알고 지레 늙는다는 것이다.
뇌가 몸에 지속적으로 ‘아직…’ 이라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 쌩쌩하게 장수하는 비결이라고 그 의사는 말한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생명체로서의 장수만이 아니다. 재능과 실력, 노력과 도전으로 힘겹게 오른 어떤 분야에서 장수하기를 누구나 바란다. 작가로, 화가로, 가수로, 배우로, 운동선수로, 혹은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 그리고 그것이 어떤 분야이든 “아직 오르막길!”이라는 속임수 시그널이 장수의 비결이 된다.
수영선수 박태환이 이번 로마 세계수영 선수권대회에서 무참하게 무너졌다. 지난해 올림픽에서 금메달, 은메달을 땄던 자유형 400m, 200m에서 각각 예선탈락 하고 결승진출에 실패함으로써 그 자신뿐 아니라 나라전체가 허탈감에 빠졌다. 로마대회 전까지만 해도 ‘국민영웅’ 대접받던 그를 둘러싸고 온갖 잡음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몰락’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한다.
한국 사회분위기가 너무 가벼운 것은 사실이다. 좀 잘하면 도에 넘치게 열광하다가 좀 못하면 쌩 하고 돌아서는 것이 이번에도 예외 없다. 하지만 박 선수 자신이 정상에 다 오른 듯, 더 이상 오르막길이 아닌 듯, 그래서 나태해진 정황이 여러 면에서 보인다.
올림픽 금메달과 국민적 환호, 또래로는 상상도 못할 거액의 광고 출연료 … 속에서 열아홉 여린 나이에 냉정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만심에 붕 떠서 1초가 100년 같은 수영계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을 수가 있다.
그런 자만이 아마도 스타들의 수명을 단축하는 것일 것이다. ‘반짝’하다 사라지는 스타들이 너무 많다. 스타는 곧 ‘돈’ 상품가치로 직결되고, 대중의 취향은 변덕스러우니 조금 방심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대 뒤로 밀려나는 것이 스타의 운명이다.
한국 DJ 클럽이 1992년부터 10년간 인기가요 차트를 분석해 가수들의 수명을 알아보았다. 그 결과에 의하면 ‘인기가요 차트 100위’에 오른 가수나 그룹 중 절반은 1년이 지난 후 두 번 다시 차트에 오르지 못하고 대중에게서 잊혀진다. 1년 ‘반짝’ 하다 스러지는 1년생 스타들이다.
이솝 우화 중에 ‘물리고도 조심성 없이’라는 우화가 있다. 동물의 왕 사자가 병이 들어 동굴에 누워 있자니 사슴고기가 먹고 싶었다. 그래서 친한 친구 여우에게 사슴을 한 마리 데려오라고 부탁했다.
여우는 숲속에서 뛰어노는 사슴을 발견하고 “사자가 죽게 되어 새 왕을 뽑는데 사슴은 귀도 크고 장수하는 데다 뿔도 있으니 왕으로 적임”이라며 사자에게 가자고 꼬였다. 여우의 찬사에 잔뜩 바람이 든 사슴은 의심 없이 동굴로 따라갔다가 사자가 잡아먹으려는 순간 가까스로 탈출을 한다.
배고픈 사자는 다시 여우를 독려하고 여우의 감언이설에 속은 사슴은 결국 사자의 밥이 되고 만다. “네가 최고”라고 옆에서 부추기는 말은 그만큼 위력이 크다. 대개는 판단력을 잃고 허영심에 흥청대다가 위기를 맞기 일쑤다.
스스로 “정상에 올랐다” 생각하면 그때부터가 내리막길이다. 도취와 자만으로 눈이 멀기가 쉽다. “아직 오르막길!”이라고 뇌를 속이며, 때로 주위의 찬사에 귀 막으며, 묵묵히 자신을 매진하는 것이 장수하는 비결이다. 스타들도, 평범한 우리들도.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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