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10시 45분이다. 난 지난 33년간 나와 함께 지내온 벗 하나를 멀리 떠나보냈다. 우리 가족이 1976년 3월 4일, 미국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들여놓은 가구, 아니 이 피아노는 가구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생활의 상징이요, 이민 생활의 연장이었다. 나는 이 피아노와 함께 성장했다. 미국 중학교에 편입하여 들어가니 영어 한마디 못하는 나는 “문제아”가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어라고는 고작 “굿모닝 미스터 베이커. 굿모닝 창호. 하우아유. 파인 쌩큐.” 서울 동대문 중학교에서 정만춘 선생님, 이근구 선생님한테 2년간 열심히 배운 영어였지만 정작 미국에 와보니 그 스승님들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스승님의 은덕에 보답하지 못하는 “무능한” 학생이 되었다.
전교에서 5등 안에 들던 학생이 미국에 오니 말 못하는 벙어리, 알아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모든 것을 다만 눈과 주변 돌아가는 상황을 통해 파악하고 움직이는 열등 학생이 되었던 것이다. 이때는 비영어권 이민 학생을 위한 영어 교육(ESOL)이라는 것도 없었다. 그러니 얼마나 헤맸겠는가. 한국에서 초등학교 6년간 연속으로 반장을 지냈던 자존심 강하고 셀프 나르시즘이 높았던 아이가 미국에 와보니 글쎄 학교에서 얻는 것은 스트레스와 영어를 하지 못하는 2등 시민 콤플렉스에 빠진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 소년의 고뇌를...
이때에 나를 지켜준 동무가 있었는데 바로 이 피아노였다, -볼드윈 업라이트 피아노-. 이 피아노는 우울한 감정으로 집에 터벅터벅 돌아온 이 소년의 벗이 되어 주었다. 이 피아노 앞에서 만큼은 나는 쪼그라들지도 않았으며, 언어불통으로 고민하는 일도 없었으며, 또 어떠한 콤플렉스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이 친구는 나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겸손한 친구였다. 곧 이 친구는 나의 셀프 이스팀과 프라이드를 챙겨주는 넉넉한 친구로 자리 매김하였다. 그렇게 지내오면서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면서 오늘 이 자리까지 왔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이 피아노는 늘 내 곁에 있었다. 지금도 이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과거 이 피아노와 함께 해왔던 모든 기억이 되 살아난다. 그랬다, 이 피아노는 나의 미국생활의 메모리 박스였던 것이다.
딩동~ 딩동~ 벨이 울렸다. 아, 드디어 나의 벗과 결별할 시간이 왔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콧등이 찡~ 하는 느낌이 엄습했다. 실은 지난주에 이 피아노를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이나 가정교회에 기증하겠다고 한국일보에 이메일을 넣었었다. 오늘은 그 결과가 드러나는 날이었다. 피아노 운반자 세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동안 나는 열심히 먼지 뭍은 이 피아노의 몸을 닦아 주었다. “친구여 잘 가거라...” 이윽고 운반자들의 손에 들려 이 피아노는 집 밖으로 들려 나갔다. 순간 조금 전 다이닝 테이블 위에 옮겨 놓은 이 피아노 위에 걸쳐져 있던 아름다운 디자인 덮개와 그 위에 올려 져 있던 탁상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너희들도 그동안 오랜 세월 이 피아노의 한 지체로 지내오지 않았던가. 그래 함께 가거라.” 이것들도 운반자들의 손에 딸려 보냈다. 아, 그러고 보니... 피아노 벤치가 저만치 떨어져서 홀로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 그래 미안하다. 너도 함께 가려무나.” “짜식, 나보다 저 피아노가 더 좋단 말이지. 하긴 너도 저 피아노와 함께 이 집에 들어왔으니 저 피아노와 함께 새 주인을 맞이하는 운명에 동참하는 것이 순리겠지...”
철컥, 철컥, 쿵, 드르르르, 드디어 피아노는 짐차 뒤켠에 올라갔다. 덮개와 시계와 벤치도 함께 따라가니 덜 외로워 보였다. 나를 떠나가는 이 피아노의 마지막 행보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며 지난 세월들이 파노라마처럼 나의 뇌리를 쏜살같이 지나간다. “잘 가거라, 너는 지난 30여 년 간 한 번도 나를 배반해 본 적이 없는 좋은 친구였다. 그동안 나의 참 좋은 벗이 되어 주어 고맙구나. 이제 새 주인을 만나면 그 주인에게도 너의 모든 책임을 다하는 좋은 벗이 되어주려무나.” 이렇게 말하고 떠나보냄과 함께 새 주인과의 인연을 기원하는 축성을 하면서 십자성호와 함께 이 피아노의 마지막 길을 축복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이 피아노로 항상 즐겨 쳤던 모차르트의 소나타 라단조를 짐 차위에서 연주했다. 마치 사랑하는 애인을 기약 없이 떠나보내는 가운데 나누는 마지막 포옹처럼 그 냄새를 간직하고 싶어서, 그 느낌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 소리를 가슴에 묻어두고 싶어서...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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