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둥지’ 엄마들이 바빠졌다. 대학으로, 직장으로 떠나간 자녀들이 여름방학·휴가를 맞아 집으로 모여드는 계절이다.
부부만 단출하게 남아 절간 같던 집안은 시끌벅적해지고, 개점휴업 상태였던 부엌은 다시 분주해졌다. 제대군인 같던 엄마들은 현역으로 복귀해 삼시세끼 챙기느라 몸살이 날 지경이다. 떡볶이, 김치찌개, 갈비, 된장국, 잡채… 자녀들의 주문은 끝이 없고, 샤핑카트 가득가득 장을 봐서 썰고 다지고 절이고 볶는 엄마들은, 몸은 고되도, 신바람이 난다.
엄마들이 이렇게 바쁜 데는 이유가 있다. 어려서는 한국음식을 좋아하지 않던 아이들도 대학이나 직장 따라 집을 떠나 살면서부터는 부쩍 한국음식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동부에서 대학을 다닌 한 친구의 딸은 몸이 아프기만 하면 한국식당을 찾았다. 명문의 그 학교 기숙사음식은 일류 레스토랑 못지않지만 몸살이 나거나 감기에 걸리면 입안에서 그저 이물질일 뿐이다. 인근의 조그만 한국식당에 가서 육개장이나 설렁탕에 깍두기와 김치를 먹고 나면 몸이 다 나은 듯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유년에 먹고 자란 음식, 그래서 몸의 일부처럼 각인된 맛이 주는 위안이다.
동해와 면한 일본 큐슈의 후쿠이 현에는 토진보 절벽이 있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들이 수직의 대열을 이룬 이곳은 자살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토진보라는 불승이 한 아름다운 공주를 사랑하다가 이를 시기한 연적이 그를 절벽 밑으로 떠밀어 죽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지난 2004년 4월부터 이곳에는 유키오 시게(65)라는 은퇴 형사가 매일 두세 차례씩 순찰을 돈다. 망원경을 들고 특히 자살이 잦은 3곳의 절벽 위를 관찰하며 자살할 듯한 사람들을 찾아 말리는 것이 그의 일과다.
자살하러 온 사람은 척 보면 알 수가 있다고 한다. 경치에는 관심도 없고, 카메라나 기념품 같은 소지품 하나 없이 빈 몸으로 와서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내려다본다는 것이다. 시게는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을 걸고 어깨를 감싸 안으며 친구가 된다. 이렇게 해서 지난 5년 동안 그가 자살을 막은 케이스는 188건. 188명의 생명의 은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죽을 마음을 먹은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여는 수단으로 그가 쓰는 것이 ‘음식’이다. 훈련된 카운슬러인 그는 절벽에 서있는 사람들을 일단 자기 사무실로 데려간 후 차를 나누며 카운슬링을 하고, 오로시 모치를 대접한다. 오로시는 강판에 간 무즙. 모치는 둥글둥글하게 만든 찹쌀떡. 일본에서 정월초하루에 먹는 명절음식이다.
“사람들은 찹쌀떡을 먹으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 아버지, 엄마, 형제들, 고향. 그리고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시게는 이제까지 자원봉사로 자기 은퇴연금을 털어 넣으며 이 일을 해왔는데 지난 4월부터 정부가 기금지원을 시작했다. 경기악화로 그러잖아도 많은 자살이 더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연간 3만명 이상이 자살한다.
토진보 절벽의 사람들이 음식으로 존재의 근원을 기억하며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역시 음식에서 마지막 평온을 찾는다.
사형제가 있는 텍사스에서는 사형수들이 죽기 전 마지막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게 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 대한 마지막 배려이다. 지난 1991년부터 11년간 거의 300명 사형수들의 ‘마지막 식사’를 담당했던 죄수가 몇 년 전 출옥 후 책을 냈었다. 그에 의하면 주문이 가장 많았던 것은 치즈버거와 프렌치프라이, 그리고 프라이드치킨이었다.
사형수들은 대개 인종에 따라 고유음식들을 주문했는데, 어려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특별한 음식을 주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음식을 먹으면서 평화로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죽음의 공포를 이겨나갔을 것이었다.
연어들은 바다에 나가 살면서도 모천(母川)의 수온과 질감, 냄새를 잊지 못한다. 그래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인 자녀들에게 모천은 부모의 집이다. 생각만으로도 영혼이 푸근하게 안기는 듯한 근원적 안락함의 원천. 그 아늑함을 더해 주는 것이 음식이다.
‘빈 둥지’ 축제의 계절이다. 많이 먹고 많이 즐기며 가족으로서의 뿌리를 재확인해야 하겠다.
권정희 논설위원 /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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