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편지에 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소중히 간직하기도 하고 찢어버리기도 했으며 혹은 보내지도 못한 채 가슴에만 묻어두었던 편지에 관한 추억, 이제 사람들은 편지를 자주 쓰지 않는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소통을 맡아왔던 편지는 전화의 편리함에 밀려났고 또 전화는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이 문자화되며 그 모형이 바뀌었다.
또 그 문자마저 미니홈피와 블로그라는 개인 미디어로 넘어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편지는 좀 구태의연한 소통의 방법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마음에 품은 생각을 글로 써서 우표 붙여 보낸 뒤 하루에도 몇 번씩 우편함을 기웃대며 답장을 기다리던 시절에 비하면 요즈음 나오는 미디어의 소통 속도는 계산할 수 없이 빨라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인의 삶에서 생각의 깊이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다림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은근한 사람 냄새도 줄어들고 있는 건 아닌지. 오래 묵힐수록 좋은 향기가 나는 술이 되듯, 찌고 말리기를 반복하며 차 한 잔의 깊은 맛을 기대하듯이 가끔은 쓸려가는 속도를 벗어나 느림의 미학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은 어떨까. 추억처럼 편지를 쓰면서 말이다.
내겐 초등학교 때 겨울마다 국군장병아저씨께 썼던 편지가 처음으로 써보았던 편지라는 형식의 글이었던 것 같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전선을 상상해보며 연필로 꾹꾹 써내려갔던 엽서의 내용은 비슷했다. 추위와 싸우며 나라를 지키시는 아저씨께 대한 고마움과 공부를 열심히 하겠노라는 약속 같은 걸로 마무리를 했던 엽서 한 장이 전선으로 배달되어 장병들에게 위안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쬐그맣던 엽서를 통해 낮선 전선, 낮선 아저씨께 말을 걸었던 첫 편지의 기억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사랑을 시작하며 편지를 써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얀 종이 한 장을 앞에 놓고 첫 말을 쓰지 못해 손끝을 망설이던 밤, 가슴에 품어진 감정을 표현하려면 글은 언제나 감정의 언저리를 맴돌기만 했다.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창문을 열면 하늘엔 별들만 무성했다. 들숨을 쉴 때마다 이마 가까이로 다가오던 그 숱한 별들처럼 하고픈 말들이 가득했던 밤, 애써 써내려간 편지가 어색해 찢어버리며 고개를 들면 어느새 새벽이 창문 가까이까지 와 있곤 했다. 어렵게 쓴 편지를 접으면서, 또 봉투의 입구에 밥풀을 바르면서까지 망설여지는 일이 편지 쓰는 일이었다.
다 쓴 편지를 들고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할 것 같은 마음에 가까이 있는 우체통을 지나 늘 우체국까지 걸어서 갔던 기억이 있다. 빨간 우체통 밑으로 편지가 톡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또 기다려지는 것이 답장이었다. 그 시절 편지는 수신인과 수취인 모두에게 반가움이었으며 또 기다림이었다.
청마 유치환이 이영도에게 보냈던 사과 세 상자 분량의 편지는 유명하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사로메라는 한 여인에게만 보낸 편지가 3천통이 넘었고 평생 동안 쓴 편지는 7천통이나 되었다고 한다. 시인들에게도 편지라는 습작품이 없었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기다리고 그리움을 삭혀보며 외워보는 애송시들을 탄생시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편지를 테마로 한 노래가사도 많았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불러보았었고 지금도 반쯤은 기억나는 편지라는 노래가사를 살펴보면 말없이 건네주고 간 눈물 젖은 편지 한 장으로 이별을 통고받은, 애닯은 청춘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말로 한 이별보다 편지로 보낸 이별은 어쩐지 더 완강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더 슬플 것이다.
말은 가슴을 울리지만 글은 가슴에 남는 법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던 기억은 그 파문처럼 사라져가지만 사랑한다고 쓰여진 글은 가슴에 새겨진다. 한 장의 편지는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해주었고 소원한 사이를 가까이 당겨주기도 했다. 학교 때 친구들과의 우정도 책상 속에 접어 넣었던 편지 한 장으로 쌓여갔고 가끔은 맺힌 마음을 푸는 역할도 그 편지가 했다. 그래서 싸우고 편지를 주고받은 친구와의 우정은 더 오래갔다. 편지에는 마음을 다독여주고 또 품어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공들여 쓴 편지를 가슴에 안고 찬바람 속을 타박타박 걸어서 우체통을 찾던 시절은 흘러가버렸다. 날마다 우편물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지만 대부분 반갑지 않은 고지서와 정크 처리될 홍보물이 전부이다. 편지를 쓰지 않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설렘으로 우편함 앞을 서성이지 않는다. 우편함을 여는 일이 별로 달갑지가 않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이제 빨간 우체통들은 흘러가는 시간 앞에 무력해진 늙은 군인처럼 거리에서 퇴장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숱한 편지들이 잠시 머물다 가던 빨간 우체통이 서있던 거리의 풍경도 추억 속의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내겐 오래된 편지상자가 하나 있다. 뚜껑을 열면 먼저 묵은 종이냄새가 맡아진다. 방학 때 선생님이 보내주신 봉함엽서도 있고 네 잎 클로버나 마른 꽃잎이 부서져 접혀 있는 친구들의 편지, 그리고 할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편지도 있다.
사회에 나가 첫 월급을 타고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께 소액환을 보내드렸더니 답으로 보내오신 편지는 그 세월만큼이나 누렇게 탈색되어 있다. 비둘기가 그려진 우편행낭을 멘 채 십리 길을 마다 않고 자전거 타고 다니던 시골 우체부의 손을 거쳐 왔을 할아버지의 편지는 내게 보물 같은 것이다. 첫아이를 낳고 보내드린 아이의 사진을 보시고 어머니가 딸과 손주에게 따로 써보내신 편지는 지금 읽어도 재미있고 또 감동이 느껴진다. 갓난아기가 사랑받는 법이 익살스럽게 적혀 있는 아이 몫의 편지는 훗날 아이에게도 소중하게 간직되어질 것이다.
태어난 지 며칠 안 되어 제 이름 앞으로 된 편지를 받아본 아이는 이제 스물이 훌쩍 넘어 외할머니의 편지를 읽어보며 씨익 웃을 줄 아는 청년이 되어 있다. 아이에게 외할머니의 편지 역시 보물 같은 것이 되리라.
음력 사월 어느 날에 쓰신 탈색된 할아버지의 편지를 들여다보면 봄날 어느 하루, 손녀에게 쓰신 편지를 들고 이제나 저제나 언제 올지 모르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기다리셨을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지금쯤 그 시골에는 산에서 내려온 샛노란 송홧가루가 전설처럼 들판에 흩뿌려지고 있을 것이다. 싸락별 뜨는 밤이 오면 소쩍새의 울음소리도 슬그머니 동네로 내려와 누군가의 가슴에 덜컥덜컥 얹치고 있으리라. 해마다 이맘때면 솔가지를 털어 송홧가루를 걷어오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체에 받친 고운 꽃가루를 반죽해 다식을 만들어 주셨다. 노오란 솔꽃의 향기가 쌉싸름하게 나는 송화다식을 다식판에 꼭꼭 찍어 만들어 주시던 그분들은 내 곁을 떠나 그 솔꽃을 피우던 산에 묻히신 지 오래다.
이국땅에도 음력 사월이 다시 찾아왔고 어김없이 낮선 꽃가루가 천지에 날려 수없는 재채기를 토해내게 하고 있다. 독한 꽃가루를 못 이기고 조그만 알약 하나의 화학작용에 의지해 사는 봄날 하루, 삼십 년 전에 쓰신 할아버지의 편지를 다시 읽어본다.
언제 어디서나 제 몫을 튼실히 하는 어른으로 살기 바란다는 당부로 끝을 맺으신 세로로 써내려간 글씨체가 정겹다. 돌아가실 때까지 쓰지 않고 보관하시며 소액환 만원어치의 행복을 오래 간직하셨던 그 할아버지를 싣고 떠난 세월은 아득하니 멀고 편지를 접어 넣고 돌아서는 내 가슴엔 국화꽃을 찍어내던, 수레바퀴를 찍어내던 박달나무 다식판 같은 그리움만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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