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남부에서는 원숭이들이 너무 설쳐서 골치를 앓는 모양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남 인도 원숭이 덫’이라는 장치를 고안해 냈다.
장치는 간단하다. 코코넛에 구멍을 뚫고 속을 파낸 후 찹쌀을 한줌 넣고 말뚝에 매어두면 된 다. 지나가는 원숭이들이 구멍을 통해 찹쌀을 보고 손을 집어넣으면 걸려드는 것이다.
덫의 핵심은 구멍의 크기다. 원숭이의 맨손은 쉽게 들어가지만 찹쌀을 한줌 움켜쥔 주먹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원숭이가 코코넛 속에 걸린 주먹을 빼내려 애를 쓰는 동안 주민들이 와서 사로잡는 것이다. 주먹 안의 찹쌀만 버리면 쉽게 도망칠 수 있는 것을 찹쌀을 포기하지 못해 원숭이는 자유를, 혹은 목숨을 잃는다.
작은 것에 대한 욕심으로 더 중요한 것을 잃는 어리석음, 어떤 가치에 지나치게 매이다보면 자유를 잃는다는 사실을 말할 때 심리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이야기이다.
지난주 한인사회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두 죽음이 있었다. 3일 하버드에서 자살한 캐슬린 주(20)양의 죽음과 5일 샌디에고에서 동반 자살한 최영덕(67)씨 부부의 죽음이다. 의과대학을 목표로 신경생물학을 전공하던 하버드 2학년 여학생이나 대형 호텔에 600만 달러를 투자할 만큼 재력이 있던 사업가나 “도무지 왜 자살을 했는지…” 주변사람들은 이해를 할 수 없어 한다.
최씨는 지난해 공동 투자자들과 함께 인수한 대형 호텔이 불경기로 고전을 하자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거의 전 재산을 쏟아 부은 투자가 실패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누구라도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호텔이 남의 손에 넘어간 것도 아니고, 재산을 모두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같이 투자한 동업자들은 “목숨을 끊을 만큼 호텔 재정사정이 심각한 건 아닌데…”라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객관적 ‘상황’ 보다는 상황에 대한 주관적 ‘인식’이 그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가지 않았나 짐작이 된다.
그는 대단히 열심히 살아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서독 광부로 일했고 1970년 중반 미국으로 건너온 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전력투구했다고 한다. 그만큼 부를 일구기도 했다. 아울러 이웃을 많이 돕기도 했지만 성격이 깔끔해서 남에게 절대로 폐를 끼치는 법이 없고 자신의 어려움을 밖으로 내보이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완벽주의자들의 일반적 특징이다.
완벽주의자들은 꺾어질망정 구부러지지 못하는 것이 약점이다. 일생일대의 프로젝트가 실패할 위험에 처하자 그는 자신의 인생자체가 실패한 것으로 확대해석 했을 지도 모른다.
하버드의 주 양은 평생을 선망의 대상으로 살아왔다.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수석을 독차지 했고, 교회에서도 리더였으며, 교우관계도 좋았다. 공부만 잘한 게 아니라 운동도 잘해서 하버드에서는 럭비 선수로 활약했다. 어디가나 칭찬 받고 사랑 받던, 빛을 발하던 여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왜 목숨을 끊었을까? 항상 칭찬만 받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함정이 있다. 남의 눈, 남의 기대를 너무 의식하는 것이다. 뭔가 부족한 점, 떳떳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남에게 털어놓지를 못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부모가 받을 충격이 두렵고, 그들로부터 거부당할 것이 무섭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두려움이다.
완벽주의는 위대한 추진력이다. 완벽에 도전한 많은 예술가, 스포츠맨, 과학자 …덕분에 인류는 발전을 해왔다. 대표적 완벽주의자로는 미켈란젤로가 꼽힌다. 그의 완벽주의 덕분에 르네상스 예술은 전성기를 맞았다.
한인들 역시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민족이다. 뭔가 목표를 세우면 밤잠 안자고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일 중독증, 자녀들 성적표에서 B를 용납하지 못하는 뜨거운 교육열은 완벽주의의 단면들이다. 덕분에 커뮤니티는 빠르게 성장했고 명문대학마다 한인학생들이 넘친다.
하지만 완벽주의는 행복한 삶의 방식은 아니다. ‘1등’을 놓칠까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삶,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가파른 삶, 남의 시선에 항상 불안한 삶이다. 좀 부족해도, 좀 실수를 해도, 좀 실패를 해도, 있는 그대로 자신/상대방을 받아들이는 푸근한 삶이 더 건강하다.
‘완벽’이라는 가치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그것이 ‘원숭이의 덫’이 되어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이번의 두 죽음이 보여주었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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