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대세다” 트렌드 정의는 무의미
네오클래식과 복고풍 부활 엿보이는듯
이번 주 내내 패션 피플들의 눈과 귀는 모두 밀라노에 쏠려 있었다.
2009년 가을·겨울 컬렉션이 개막한 것이다. 프라다, 베르사체, 구치, 알렉산더 맥퀸 등 21세기를 주름잡는, 내로라 하는 디자이너들의 숨막히는 작품들이 무대 위를 수놓았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물론 일년에 두 차례씩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파리와 밀라노에서 컬렉션이 열리는 4차례에 걸쳐 패션 피플들은 행복해진다. 꼭 그곳까지 날아가 무대 앞에 턱 받치고 앉아 있지 않더라도 뉴스를 통해 타전되는 사진들만으로도 눈부시기 때문이다.
사실 더 이상 패션계에 유행을 논하는 것이 허무해지고 허망해진지는 오래다. 약간의 유행의 맥을 잡을 수는 있어도 딱히 ‘이것이 대세’라고 하는 것이 없어진지 오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과 미니멀리즘이 공존하고 블랙 앤 화이트와 네온 컬러들이 공존한 지 오래인데다 디자이너들마다 개성이 강해지면서 레트로와 퓨처리즘 역시 같은 시대, 같은 시즌을 수놓기 때문이다. 더 이상 경계가 없어진지 오래다.
그래도 굳이 다가올 가을에 대해 평을 하자면 네오 클래식과 복고주의의 부활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돌체 앤 가버나는 그 어느 시즌보다 레트로에 대한 확실한 해석과 다짐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고 베르사체는 여전사 무드를 많이 톤 다운 한 채 확실한 여신 컨셉 시폰 드레스로 여심을 사로잡았다.
이외에도 매 시즌마다 트렌드 풍향계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미니멀리즘과 강렬한 원색으로 이 복잡다단한 세계 불경기에 대한 그녀의 입장을 표명하는 듯도 싶다. 퓨처리즘이 반영된 독특한 레그웨어와 슈즈도 트렌드 세터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으며 오버사이즈 백의 인기는 올 한해동안 계속 될 것이라는 분위기도 이번 캣워크에서 읽을 수 있었다.
밀라노에서 벌어진 유명 디자이너들의 올 가을 트렌드 핵심을 정리해 본다.
■ 유행 예감 ‘팍팍’
다음 시즌 꼭 한 세트만 골라 입을 수 있다면 단연 알렉산더 맥퀸의 세컨 브랜드인 디스카드2(Dsquared2)다. 이번 무대에서 알렉산더 맥퀸은 그간의 아티스트적 성향이 어떻게 상업화 돼야 하는가를 체득한 듯 보인다. 그간 너무 아방가르드한 느낌은 훨씬 더 부드럽고 유려해졌다. 아름다운 새틴 롱드레스에 무심한 듯 걸쳐진 슬림한 타이트한 블랙 레더 재킷은 더 이상 그가 누구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또 아무렇게나 매여진 머플러는 또 어떠하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비에이터 선글라스와 파티용 클러치까지 언밸런스의 조화가 아름답다. 엄지손가락이 저절로 올려지는 작품.
■ 역시 코트는 막스마라
유명 디자이너들이 겨울이면 어김없이 아름다운 코트를 어김없이 선보이지만 코트 하면 막스마라(Max Mara)라는 단정은 여전히 이번 무대에서도 유효했다. 막스마라의 트레이드마크인 최상품 캐시미어가 유려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피팅으로 이번 무대를 수놓았다.
■ 모피의 변신
역시 모피는 펜디(Fendi)다. 지난 겨울에도 아름다운 모피를 선보인 펜디는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다양한 디자인의 모피를 선보였는데 지난해 모피가 과장된 듯 박시한 디자인이었다면 올해는 세계 경제침체의 영향 탓인지 모피의 길이도 짧아지고 소품이 훨씬 더 많이 보였다. 모델이 입고 있는 퍼(fur) 베스트는 드레스, 캐주얼 어디에든 무난하게 어울릴 듯.
■ 핑크의 향연
이번 밀라노 컬렉션에서 가장 여심을 사로잡은 브랜드를 꼽아야 한다면 바로 돌체 앤 가버나(Dolce & Gabbana)다. 어디 하나 버릴 것 없이 아름다우면서도 그들 특유의 개성이 곳곳에서 묻어난 디자인을 들고 이번 무대에 오른 돌체 앤 가버나는 레트로의 해석을 제대로 보여줬으니까. 핫 핑크 컬러의 이 코트는 시즌이 되기 전 동이 날 듯 보인다.
‘클래식’과 ‘파격’의 공존
■ “단아한 드레스 어때요?”
살바토레 페레가모는 이번 무대에서 더 이상 그러할 수 없을 만큼 클래식하면서도 단아한 실크 드레스로 눈길을 끌었다. 퍼플 컬러 실크 드레스에 차분한 컬러의 퍼 코트가 중년 이상의 여성들에게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등극할 것으로 보인다.
■ 미니멀리즘으로 회귀
프라다(Prada)의 선택은 미니멀리즘과 레트로의 적절한 공존이었다. 간혹 거기에 유머가 곁들여 있긴 했지만 다음 시즌 그녀가 주목하는 것은 어두운 미래에 대한 단호한 결단처럼도 보였으니까. 레드 컬러 울 드레스가 오히려 음산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직도 세계 경기를 낙관하지 못한 그녀의 속내가 보인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비약이 되려나.
■ 드레스의 여왕
일반인들에게는 어쩐지 한물 간 디자이너로 보일 수도 있는 베르사체(Versace)는 사실 매년 각종 세계 시상식장 레드카펫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할리웃 트렌드 세터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그녀 특유의 상반신에 포인트를 준 블루 사파이어 컬러 시폰 드레스가 벌써부터 하반기 유행 예감을 불러일으킨다.
■ 파격을 실험하다
마니(Marni)가 좀 변한 듯도 싶다. 변함없는 미니멀리즘의 선두주자였던 마니는 다음 시즌 조금은 화려한 패브릭과 디자인으로 돌아왔다. 빅 플라워 프린트의 새틴 칵테일 스커트에 요 최근 마니가 집착하는(?) 오버사이즈 목걸이를 맨 모델의 캣워크가 눈부시다.
■ 클래식과 캐주얼의 경계
매년 페미니즘의 극치를 보여줬던 밀라 션(Mila Schon)이 이번 시즌엔 보다 더 대중성과 상업성을 등에 업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화이트 컬러 새퀸 화이트 슬리브리스 드레스에 매치한 같은 패브릭의 재킷이 ‘나도 한번’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 골드여 영원하라
랄프 로렌만큼이나 골드를 선호하는 존 리치몬트(John Richmond)의 심플하면서도 선이 아름다운 이브닝 가운. 좀 무거워 보이는 감이 없지 않지만 이미 지난 시즌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버블 스커트의 이브닝 가운 버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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