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야구선수인 배리 본즈는 지난 1988년 부인과 결혼하면서 혼전계약을 맺었다. 당시 그의 연봉은 10만6,000달러였다. 본즈가 부인에게 서명을 요구한 계약내용은 결혼기간에 증식한 재산에 대해 아무 권리도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변호사가 입회하지 않은 가운데 부인은 이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런 결혼이 오래 간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 결국 부부는 아이 둘을 낳고 6년 후 이혼했다. 그런데 이때 본즈는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수퍼스타가 돼 있었다. 억울한 부인은 변호사가 입회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혼전계약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오랜 공방 끝에 법원은 이 계약을 유효한 것으로 판결했으며 본즈의 혼전계약은 캘리포니아 이혼소송에서 아주 중요한 판례로 남게 됐다.
한인들에게는 생소한 본즈의 혼전계약 소송을 보면서 “역시 본즈다운 발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혼전계약은 미국 부자들 사이에 일반화 되고 있는 관행이다. 자칫 이혼 한번 잘못 했다가는 거액의 재산을 날리고 쪽박 차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의 책 ‘부자 되는 법’에서 “아무리 상대를 사랑한다고 해도 꼭 혼전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은 재산을 불리는 것 못지않게 잘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런 조언은 물론 그의 생생한 체험에서 우러나왔다.
요즘 단연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한국 재벌가 후계자의 이혼소송이다. 부인이 제기한 이 소송은 우선 5,000억원이라는 재산분할 요구 액수가 엄청난 데다 왜 이혼소송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억측도 구구하다. 이 젊은 억만장자 부부의 파경은 이래저래 큰 화제를 몰고 올 수밖에 없는 요소를 두루 지니고 있다.
돈과 명예 등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도 불행했던 문학 속의 대표적 인물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이다. 미모에 돈 많은 귀족과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안나 카레니나는 누가 봐도 부러울 것 하나 없을 것 같은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방황하다 결국 기차에 몸을 던져 죽음을 선택한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가 엇비슷하다. 모든 불행한 가정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문장은 대문호의 작품 속 구절로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한층 더 유명해 진 것은 지난 1997년 UCLA의 진화생물학자 재리드 다이아몬드에게 퓰리처상을 안겨 준 책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에 인용되면서이다.
다이아몬드는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에 대해 이런 해석을 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결혼이 많은 다른 측면들에서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 했다. 성적인 매력, 돈에 관한 의견일치, 아이들 훈육, 종교, 사돈들, 그 밖의 다른 중요한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런 중요한 측면 가운데 하나라도 실패하면 행복에 필요한 다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결혼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다이아몬드는 이 문장에서 영감을 얻어 ‘안나 카레니나 법칙’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법칙을 이용해 동물들의 가축화를 설명하고 있다. 즉 “가축화 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 할 수 없는 동물들은 그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가축이 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들 가운데 한개만 어긋나도 가축이 되지 못하며, 140여종의 대형 초식성 포유류 가운데 불과 14종만 가축이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 법칙’은 진화와 기업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는 데는 상당히 유용한 도구이다. 하지만 정작 가정의 행복과 불행을 적절하게 진단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해 진다. 분명 불행한 가정에는 어떤 것이든 제각기 이유가 있다. 마찬가지로 행복한 가정 또한 그 행복에는 제각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많은 것을 가지고도 한 가지 때문에 실패하는 가정이 있는 반면 많은 것은 없어도 단 한 가지가 있어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다이아몬드의 해석처럼 모든 것들을 갖추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과연 행복한 가정이 얼마나 될까 싶다. 아마도 가축화에 성공한 동물이 단 14종에 불과하듯 행복한 가정 또한 찾아보기 힘든 희귀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적어도 가정의 행복과 관련해서 ‘안나 카레니나 법칙’은 기껏해야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행복과 불행은 진화와는 달리 조건과 환경에 달려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음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 하는 인식의 작용이 더욱 크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한 젊은 부부의 파경을 보며 떠올려 본 행복론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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