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궁금했던 두 사람의 소식을 알게 되어서 반가웠다. 한사람의 소식은 신문을 통해서, 또 한사람의 소식은 오랜만에 보내온 편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며칠 전 LA 타임스의 오피니언 란에서 나는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레스 가페이. 전직 월스트릿 저널 기자이자 홍보 컨설턴트로 지난 추수감사절 이 신문에 기고한 글을 읽고 그를 알게 되었다. ‘추운 계절의 시작’이라는 글에서 그는 2002년 실직한 후 토요타 픽업트럭을 거처 삼아 홈리스로 사는 삶을 담담하게 소개했었다.
지난달 28일자에 실린 그의 글 ‘창고에서 나온 삶’은 그 이후의 근황을 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전 주 나는 6년 반의 홈리스 생활을 끝내고 팜 스프링스 인근 란초 미라지의 시립 노인아파트로 들어왔다”고 글은 시작되었다. 그가 마침내 집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는 몹시도 행복해했다.
“처음 며칠은 나의 행운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침대를 다시 갖게 되었다. 부엌도. 욕실도. 내게 그 모두는 없이 사는 데 익숙해진 호사스런 것들이다”고 그는 썼다.
몇년전 저소득층 노인아파트에 입주 대기자로 이름을 올려둔 것이 차례가 되어 지난 12월초 아파트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큐리티 디파짓과 첫달 렌트 낼 돈이 없어 포기하려던 중 두 군데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입주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루하루가 내게는 선물 같다”고 그는 썼다. 토스터에 잉글리스 머핀을 구워 잼을 발라먹는, 홈리스 되기 이전의 아침 일과를 되찾은 것이 그에게는 꿈같은 기쁨이라고 했다. ‘소유’를 최대한 걸러낸 홈리스 생활 동안 기도와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렸던 그는 이제 감사의 기도로 새 생활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작은 공간이 그렇게도 감격스런 감사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내가 소식을 궁금해 하던 또 한사람은 웨스트 LA에서 자영업을 하던 60 즈음의 여성이었다. 칼럼 독자로 인연을 맺어 여러 해 동안 가끔씩 안부를 주고받던 사이였는데 1년여 전부터 소식이 끊겼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두 배로 올리려고 해서 아무래도 비즈니스를 접어야 겠다”는 말을 들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며칠 전 그가 인편에 편지를 보내왔다. 가게는 그만두었고 그동안 열심히 일해 모은 돈은 은행주식에 투자했었는데 주가 하락으로 거의 날렸다고 했다.
“밤사이 소복이 쌓였던 눈이 자고나니 다시 다 녹아 없어진 것 같이 불어났던 재산이 다 없어져 버렸더군요. 그러나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요. 어차피 근검절약하며 살았기에 재산이 늘었어도 또 지금 줄어들었어도 제겐 상관이 없어요. 숫자상으로의 계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행복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달린 것이니 ‘마음만 비운다면, 그래서 분수를 알고 산다면’ 기본 의식주만 해결되면 행복할 수 있지 않느냐고 그는 말했다.
‘둔감’이란 말이 일본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2년 전 ‘둔감력’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둔감’이 인기를 끌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민감하게 일희일비하기보다 좀 무디게, 그래서 묵묵히 버텨나가는 것이 삶을 성공적으로 사는 비결이라는 내용이다.
‘둔감력’이란 다시 말해 어떤 상황이 닥치든지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 인생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담담하게 몸을 맡기는 지혜이다. 6년 반 홈리스 생활을 하면서도 자포자기하지 않고 오히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성숙을 배운 가페이 씨, 애써 모은 재산을 다 잃고도 밤사이 내렸다 녹은 눈 보듯 의연한 웨스트 LA의 주부 - 둘 다 대단한 둔감력의 소유자들이다. 아마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터득한 모양이다.
어려운 시기에는 좀 둔감해질 필요가 있다. 랜타 윌슨 스미스의 시를 가슴에 담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류시화 역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중에서>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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