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지 중 이맘때면 늘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거의 30년 전 그가 20대에 겪은 일인데 지금도 주위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곤 한다.
동부에 살던 그는 어느 추운 겨울날 타주의 친구를 방문하려고 집을 나섰다. 두어 시간 운전을 하다 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잠시사이 드넓은 천지는 새하얀 눈밭이 되었다. 설경에 매혹된 그는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가 심호흡을 하며 함박눈을 즐겼다.
그리고는 다시 길을 떠나려는 데 자동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700달러 주고 산 고물차가 고장이 난 것이었다.
인적 드문 허허벌판에서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기적처럼 누군가가 나타나 도와주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반시간 정도 앉아 있는데 자동차 한 대가 뒤에 와서 섰다. 그리고는 한 백인 남성이 다가오더니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미국에 온지 몇 달 되지도 않았던 그는 손짓발짓하며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백인 남성은 자동차 후드를 열어보더니 자기 차에서 점프 케이블을 가져와 점프를 했고, 차는 다시 시동이 걸렸다.
그는 죽다 살아난 기분으로 “탱큐!”를 연발하며 길을 떠나려는 데 백인 남성은 고개를 저었다. 배터리가 너무 낡아서 그대로 가다가는 다시 차가 선다는 것이었다. 배터리를 새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크레딧 카드도 없고 현금도 없었던 그는 난감했다. 백인 남성은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겨울 해는 짧아서 이미 사방은 어두워졌고 그는 낯선 지역에서 낯선 사람만 믿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백인 남성은 인근 정비소를 찾아가 그의 배터리를 갈게 한 후 돈까지 대신 지불해줬다.
주소를 받아서 나중에 돈을 갚기는 했지만 그는 그 백인 남성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그의 생명의 은인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아마도 천사였을 것”이라는 게 그의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이다.
사람을 한 단계 더 높은 존재로 격상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 중에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사’ 같은 사람도 있다. 앞의 백인 남성이 정말로 어떤 초자연적 존재였는지, ‘천사’가 정말로 존재하는 지는 우리의 이성체계로 확인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천사’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전주에서는 올해도 ‘얼굴 없는 천사’가 나타나 추운 마음들을 따뜻하게 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전주의 노송동 주민센터에 누군가가 돈 보따리를 놓고 간지는 올해로 9년째라고 한다. 이번에는 현금 2,000만원과 돼지 저금통이 “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발견되었다. ‘천사’는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화단에 박스가 있으니 가보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는데 목소리로 봐서 30대 남성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천사’는 인류 문명만큼 오래된 존재이다. 구약의 창세기 보다 훨씬 이전인 수메르 문명의 기록에서부터 ‘천사’는 등장한다. 이후 ‘천사’는 천상의 세계와 인간 세계를 오가는 신의 메신저로 고대문명권에 뿌리내렸고, 그로부터 수천년 예술작품을 통해 날개 달린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천사’에 대해 좀 색다른 시각을 제시한 것은 성 어거스틴이었다. 그는 천사란 영혼이며 본성 보다는 메신저로서의 역할로 의미가 있는 존재라는 주장을 폈다. 그의 주장을 좀 확대 해석해보면 천상의 메시지를 전하는 존재라면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누군가 극심한 곤경에 처해있을 때 천상의 메시지는 가없는 사랑 혹은 측은지심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메시지를 행동으로 전하는 영혼의 소유자가 바로 ‘천사’가 아닐까.
톨스토이는 우리의 인생이 “동물적인 것에서 벗어나 신에게 조금씩 가까워지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인간이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면 동물이고, 자신을 완전히 버리면 신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으로서 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단계가 아마도 ‘천사’의 경지일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할 때다. 은행잔고뿐 아니라 영혼의 연말결산도 필요하다. 조금씩 신에 가까워지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면 올해는 어느 수준까지 갔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나만을 위해 움켜쥐었던 일들, 남을 위해 내어주었던 일들을 저울 양쪽에 올려놓아 보자. 여전히 후자가 너무 가벼운 것 같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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