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사막을 여행하다가 샘을 발견했다. 샘은 수정처럼 맑고 물맛은 달디 달았다. 청년은 그 귀한 샘물을 스승에게 드리고 싶은 마음에 가죽물통 가득 물을 담았다. 그리고는 4일 길을 걸어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스승을 찾아갔다. 청년에게서 물통을 받은 스승은 물을 깊이 들이 마신 후 “물이 참 달다”며 넘치도록 감사를 했다.
청년이 흐뭇해서 돌아간 후 스승은 다른 제자에게 물맛을 보게 했다. 물을 마신 제자는 토할 것 같다며 그대로 뱉어냈다. 낡은 가죽주머니에 4일간 담겨있었으니 물맛이 어떠했겠는가. 제자는 스승에게 따졌다.
“스승님, 물맛이 이런데 왜 맛있는 척하셨습니까?”
스승은 대답했다.
“너는 ‘물’의 맛만 보았구나. 나는 ‘선물’의 맛을 보았단다”
‘선물’은 스승을 향한 청년의 지극한 마음, 물은 그 마음을 담은 ‘그릇’일 뿐이다. 스승은 퀴퀴한 물 대신 그 안에 담긴, 한없이 달콤한 청년의 마음을 마셨던 것이었다. 누군가에게서 선물을 받을 때면 생각나는 이야기이다.
연중 가장 많은 선물을 주고받는 ‘선물의 계절’이다. 우리 생애의 뼈대가 되는 소중한 인연들을 다시 한 번 보듬고 고마웠던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한해를 마무리 하는 시기이다. 연말에 선물을 주고받는 이런 전통은 고대 로마의 농신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 로마인들은 성스러운 숲에서 가져온 나뭇가지 같은 것을 행운의 상징으로 선물하곤 했다.
선물에서 ‘상징’의 의미가 컸던 고대인들은 숲으로 향했고, ‘그릇’ 즉 ‘물건’의 비중이 커진 오늘날의 우리는 샤핑몰로 향한다. 선물은 곧 뭔가 ‘새로 산 물건’이어서 ‘선물의 계절’은 ‘샤핑의 계절’, 소매업소들로 보면 ‘연말대목’과 동의어가 된다.
그래서 이 계절이면 선물 사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샤핑몰로 몰려들어 주차하는 것부터 물건 고르고, 물건 값 계산하고, 주차장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매 순간이 전쟁이다.
그런데 올해 연말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지난 주말 “얼마나 복잡할까?” 지레 걱정하며 샤핑에 나섰던 한 선배는 주차장이 휑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샤핑몰 안도 붐비지 않아서 “크리스마스 샤핑을 두시간 만에 끝내 보기는 난생 처음”이라며 그는 홀가분하면서도 찜찜해 했다.
경제에 대한 불안심리가 연말마다 들뜨던 샤핑 열기를 너무 내리누르고 있다. 빠듯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혹은 앞으로 빠듯해질 걱정 때문에 가능한 한 선물을 줄이는 분위기이다.
지난 17일 발표된 워싱턴포스트와 ABC 뉴스 공동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번 불경기로 재정적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람은 63%에 달한다. 지난 몇 달 사이 자신이나 다른 가족이 실직했다는 사람은 10명중 두 명꼴, 봉급이나 근무시간이 깎인 사람은 1/4 이상이다. 주머니가 비어서 연말 선물을 사기 어려운 케이스들이다.
그런가 하면 당장은 직장을 가졌지만 내년에 일자리를 잃을 지도 몰라 불안하다는 사람이 10명중 2명이 넘는다. 앞날이 불안해서 주머니를 틀어쥐는 케이스들이다.
이래저래 재정적 불안감에 연말 샤핑을 줄인다는 사람은 통틀어 57%에 달한다. “올해는 서로 선물 생략하자” “선물은 아이들에게만 하자”가 요즘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다.
모든 먹구름은 그 뒤에 찬란한 이면을 가지고 있듯 불경기 먹구름이라고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술 취한 밤, 거리의 싸늘한 냉기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듯 싸늘한 경제냉기는 물질만능주의에 취해있던 우리의 정신을 깨워주는 효과가 있다.
줄어든 수입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려다 보면 뭐가 중요하고 뭐가 덜 중요한지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지고, 허망하게 쪼그라든 자산을 들여다보면 돈은 필요한 것 일뿐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회 전체에 퍼진 ‘검약’ 모드에는 오랜만에 맛보는 새벽공기 같은 청량함이 있다.
올 연말 선물 샤핑을 어느 선에서 끝내야 할지 아직도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으로 보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겠고, 사회전체로 보면 샤핑을 좀 하는 것도 미덕이다. 우리가 안사고 넘어간 어떤 선물 때문에 누군가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물에 담긴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 깊은 해이다. 올해는 선물을 주는 것보다 받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너나 할 것 없이 한 푼을 아끼고 싶은 이때에 모든 선물은 ‘사막의 샘물’이거나 ‘성스런 나뭇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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