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에 개봉돼 대박을 터뜨린 배트맨 영화 ‘암흑의 기사’(The Dark Knight)에서 염세적인 사이코 킬러 조커로 나온 히스 레저는 과연 사후에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현재 할리웃에서 돌아다니는 얘기를 들으면 그가 후보에 오르는 것은 물론이요 궁극적으로 상을 거머쥘 가능성도 매우 크다. 레저가 오스카상을 타게 되면 이는 지난 1976년 피터 핀치가 ‘네트웍’으로 최초로 사후 주연상을 탄 지 처음으로 사후 오스카상을 받는 배우가 된다.
지난 1월23일 뉴욕의 자기 아파트에서 처방약 과다복용으로 28세로 요절한 호주 태생의 레저가 오스카상 후보에 지명될 수 있는 조짐은 우선 지난 9일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가 그를 올해 최우수 조연남우로 뽑으면서 그 현실화에 한 발 다가섰다. 기자를 포함해 이날 모임에 참석한 39명의 회원들은 레저에게 22표를 던져 그를 베스트로 뽑았다.
기자가 속해 있는 또 다른 단체로 골든글로브상을 주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도 11일 각 부문 수상 후보를 발표하면서 레저를 5명의 조연남우상 후보 중 하나로 골랐다. 나도 그를 수상 후보로 뽑았는데 최종투표에서도 레저를 선택할 것이다.
한편 이날 발표후 레저의 가족은 HFPA에게 “우리는 HFPA가 히스의 연기에 명예를 준것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면서 “이 지명은 그를 계속해 사랑하고 그리워 하는 우리들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것”이라는 감사문을 보내왔다.
시상 시즌에 레저가 이렇게 화제가 되고 있는 까닭은 물론 그가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이다. 뉴욕시 검시관은 그의 죽음이 약물 과다복용에 의한 우발적인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팬들과 미디어는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한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당시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악마적인 조커 역에 너무 충실하다가 감정적으로 피폐하고 쇠잔해져 죽음을 자초했을지도 모른다는 애매한 소리가 나돌았었다.
레저의 연기는 배트맨 역의 크리스천 베일의 그것을 완전히 압도한다. 여간호사 제복을 입은 그(사진)가 하얀 회칠을 한 얼굴의 좌우로 길게 찢어진 입술에 새빨간 루즈를 문질러 바르고 킬킬대면서 살인과 파괴를 자행하는 연기는 가공할 만큼 천재적인 것이었다. 레저가 주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의 타계가 아쉽기 짝이 없다.
‘암흑의 기사’는 지난 7월에 개봉돼 전 세계서 총 10억달러에 가까운 흥행수입을 올리면서 할리웃사상 ‘타이태닉’ 이후 가장 많은 돈을 번 영화가 됐다. 레저의 유족이 이 영화와 기념품 등 부수 수입을 합해 벌 돈은 총 2,000만달러로 알려졌다. 경제지 포브스는 레저를 엘비스와 만화 ‘피너츠’의 작가 찰스 슐츠 다음으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사망한 유명 인사로 지명했다.
‘암흑의 기사’의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WB)는 지금 레저를 오스카상 후보로 올려놓기 위해 티 안내고 주도면밀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잘못 했다가는 죽은 사람 팔아먹는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WB는 레저 외에도 이 영화를 위해 작품, 감독(크리스토퍼 놀란), 주연남우, 각본, 촬영 및 음악상 후보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궁극적 목표는 레저의 조연상 수상. 이 영화가 비록 비평가들의 큰 호평을 받긴 했지만 나이 먹은 오스카 회원들(5,800여명)로부터 만화가 원작인 액션영화가 작품상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다.
레저가 조연상을 받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여건은 그가 앙리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튼’(2005)으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점. 오스카 회원들에게 생소한 젊은이가 아니며 그들이 이미 한번 레저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점이 그에게 플러스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오스카상을 둘러싼 레저의 강력한 라이벌은 ‘밀크’에서 게이인 하비 밀크 샌프란시스코 시 수퍼바이저를 사살한 동료 수퍼바이저 댄 화이트로 나와 지난 10일 뉴욕 영화비평가 서클에 의해 최우수 조연남우로 뽑힌 조시 브롤린.
한편 사후에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배우들로는 스펜서 트레이시(‘초대받지 않은 손님’)와 랄프 리처드슨(‘그레이스토크: 타잔의 전설, 원숭이들의 주인’)과 제임스 딘(‘에덴의 동쪽‘과 ‘자이언트’) 및 이탈리안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우체부’) 등이 있다.
레저가 양손에 골든그로브와 오스카를 거머쥐고 하늘에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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