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은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 내리는 결정이라고 해서 항상 현명하지는 않다. 뛰어난 아이큐와 교육적인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이 내린 결정은 그들의 지능만큼이나 훌륭하고 합리적이어야 당연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의외로 많다. 여러 사람의 경험과 지능이 합해지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야 하는데 오히려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결정이 내려지곤 한다.
이런 사례를 들자면 한도 없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케네디 행정부 시절의 피그만 침공사건이다. 1961년 미국은 쿠바 망명자 1,500명을 훈련시켜 피그만에 상륙시켰다. 이들이 상륙하면 즉시 민중봉기가 일어나 카스트로 정권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게 케네디 행정부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쿠바인들은 전혀 내응하지 않았으며 쿠바에 상륙했던 병력은 수십 시간도 안 돼 완전 궤멸됐다. 케네디 대통령은 어처구니없는 결정에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최고 대학을 나와 최고 코스를 밟아온, 미국 역사상 가장 똑똑한 사람들로 구성됐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참모진이었다. 그런데 피그만 침공이 결정될 때 이 계획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원인은 ‘집단사고’(groupthink)에 있다. ‘집단사고’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학술적으로 규명한 예일대의 재니스 어빙에 따르면 뛰어난 두뇌들이 한 집단을 이루면 어떤 난관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지배하면 “이건 아닌데”라는 의문을 품는 성원이 있어도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면서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게 된다. ‘집단사고’가 ‘집단지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우리’라는 끼리끼리 의식이 강하고 힘을 가진 집단일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피그만 침공 당시 케네디 행정부가 그랬고 현재의 이명박 정부도 이런 성향을 보인다. 경제와 대북 문제 등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 과연 정권 내부에서 치열한 고민과 격론을 거쳐 입장과 정책이 결정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아무리 우편향 인사들로 채워진 정권이라지만 모두의 생각이 같을 리는 없을 텐데 직언과 상호견제의 메커니즘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왜 어떤 민족은 뛰어나고 어떤 민족은 그렇지 못한가를 연구한 아리에티는 한 민족이 창조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9개의 인자를 제시하고 이것을 골고루 갖춘 대표적 민족이 유대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가 특히 유대인들에게서 발견되는 뛰어난 인자로 꼽은 것은 ‘다양한 사고에의 관용’이다. 유대인들은 상황이 아무리 절박해도 획일적 사고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은 “만장일치는 무효”라는 그들의 오래된 계율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집단사고’의 위험을 피하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리더의 지혜가 가장 중요하다. 조직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으려면 사람들을 널리 두루 구해 쓰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구성원의 다양성이 전제될 때 다양한 사고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자기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 입속의 혀 같은 인사들만 옆에 두다보면 배는 균형을 잃고 기울게 된다. 구성원들과 비전을 공유하는 일 못지않게 리더에게 요구되는 것이 이런 균형 감각이다.
몇 주 있으면 오바마 행정부가 역사적인 출범을 한다. 수많은 난제들이 오바마 앞에 놓여 있어 과연 그가 국민들의 높은 기대에 잘 부응해 나갈지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적어도 그가 집단사고의 위험성만은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바마는 지난 11월4일 밤 시카고에서 행한 승리 연설에서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승리 연설을 하면서 이런 언급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힐러리 국무장관 기용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나는 백악관이 집단사고에 빠지기를 원치 않는다”며 “강한 생각과 강한 견해를 지닌 인물들을 기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개인적 친소관계와 이념을 뛰어 넘는 인선을 하고 있는 배경을 설명했다.
권력기관의 ‘집단사고’(集團思考)가 초래하는 가장 큰 비극은 이것이 종종 ‘집단사고’(集團事故)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어리석은 ‘집단사고’에 의해 국민들은 고통 받고 젊은이들은 전쟁터에서 사지로 내몰린다.
철학자 칸트는 “힘을 가지게 되면 이성이 마비되기 쉽다”고 경고했다. ‘집단사고’는 대표적 마비증상의 하나이다. 권력자들이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경구이다. 아무쪼록 다음 행정부만큼은 오바마의 바람대로 이런 우를 비켜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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