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날 집에서 쉬면서 LA 타임스를 뒤적이는데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피니언 면에 실린 ‘추운 계절의 시작’이라는 글이었다. “나는 항상 추수감사절이 두렵다”로 시작되는 글의 기고자는 레스 가페이. 홍보 컨설턴트이자 프리랜서 작가로 전직 월스트릿 저널 기자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LA 타임스에 기고할 만한 사람이면 지식층일 것이고, 지식층이면 돈은 없어도 기본적 생활여건은 갖추고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법인데, 그는 그런 상식적 선입관을 벗어나 있었다. 추수감사절에 대한 그의 두려움은 어떤 고고한 철학적 사유의 산물이 아니었다. 픽업트럭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홈리스로서 추수감사절 이후 심해지는 추위가 두려운 것이었다.
그가 1998년형 토요타 픽업트럭을 집 삼아 살아온 지는 6년 반이 되었다.
지난번 경기침체 때인 2002년 일자리를 잃으면서 아파트 렌트비를 낼 수 없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창고를 빌려 가재도구들을 보관하고 잠시 홈리스로 지내보자 한 것이 이제껏 계속 되었다. 이따금 프리랜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아파트를 얻을만한 수입은 되지 못했고, 그 사이 가족이나 친지들과도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한다.
암울한 경제상황 앞에서 우리가 막연히 느끼는 불안의 핵심을 들여다보면 결국 그의 현실과 같은 삶이다. 일자리을 잃으면서 거처할 집을 잃고, 돈 떨어지면서 주변의 사람도 잃는 3무(無)의 생활이다. 절대 맞닥트리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현실인데, 신비로운 것은 그 막다른 절벽에서도 삶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담담히 써내려간 글을 읽어보면 그는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홈리스 생활 때문에 오히려 자연과 고독을 즐길 줄 알게 되었으며,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소유’가 없다 보니 삶속에서 ‘존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결과이다.
‘소유’가 없어도 ‘존재’는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잊고 살아왔다. 소유는 존재를 위한 수단일 뿐인데,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면서 주객이 전도되었다. 그래서 “생활비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제프 딕슨 ‘우리 시대의 역설’ 중에서)한 채 살고 있다.
깨달음은 종종 극한의 체험 끝에 찾아온다. 전직 월스트릿 저널 기자가 밑바닥 생활에 내몰린 끝에 소유 없이 사는 삶의 경지를 익혔다면, 육체적 종말의 체험이 소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오기도 한다.
추수감사절 전날인 26일 LA 다운타운의 LA 미션에서는 노숙자들을 위한 디너가 있었다. 신디 크로포드 등 할리웃 스타들과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시장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근 3,000명의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한 이 행사는 매년 커크 더글러스 부부가 주최하는 것이다.
배우로 감독으로 하늘을 찌를 듯 성공가도를 달렸던 그의 삶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12년 전이었다. 뇌일혈로 쓰러지면서 말이 어눌하게 되었다. 더 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에 그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우울증을 그는 특이한 방법으로 극복했다. 자기에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남들에게로 돌리는 것이었다. “우울증이란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해서 생기는 병이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도우려 애써 보라. 우울증이 얼마나 싹 가시는 지 놀랄 것이다”고 그는 한 글에서 썼다.
이후 더글라스 부부는 가진 것을 나누는 일로 노년을 보내고 있다. LA 통합교육구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 400개를 지었고, 마약·알콜 중독 노숙자 여성들을 위한 회복 센터를 개설하기도 했다. 12월이면 92살이 되는 그는 “나눠봐야 비로서 사는 법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삶을 마감할 때가 되면 보통 세 가지 후회를 한다고 한다. “좀 더 참을 걸, 좀 더 베풀 걸, 좀 더 즐길 걸” - 존재 보다 소유에 집착하다 보면 뒤따르는 후회들이다.
2008년이 한 달 남았다. 돌아보면 아등바등 여유 없이 11개월을 보냈다. 마지막 한달은 좀 다르게 살아야 하겠다. 그것이 생애 마지막 한달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
“카펫이 더러워지고 소파가 닳더라도 더 많은 친구들을 초대할 것이다. 장미가 새겨진 초가 창고 안에서 녹기 전에 불을 켜리라. …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더 많이 하리라” - 어느 무명작가의 말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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