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뭄바이, 상하이, 굿바이!”
아침 출근길에 공영방송 뉴스에서 들은 말이다. 금융권이 무너지면서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라고 한다.
파산·감원으로 밀려난 투자은행 직원들이 대거 두바이로 몰리고, 거기서 일자리를 못 찾으면 뭄바이, 이어 상하이로 가는 게 코스처럼 되었는데, 마지막 상하이에서도 실패하면 취업은 ‘굿바이’라는 이야기이다. 미국에는 더 이상 일자리가 없다는 말, 두바이나 뭄바이, 상하이도 전 같지 않다는 말이 된다.
어디가나 ‘어렵다’는 말뿐이다. “요즘 어떠세요? 어렵지요?” 하고 인사를 건네면 열에 아홉은 한숨이다. 경기침체, 불경기, 주가 하락, 집값 하락, 경제위기 …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뉴스를 각자 자신의 은행 잔고로, 업소의 매상으로, 줄어든 일감으로 체감하면서 살얼음판 딛듯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게 요즘 보통사람들의 삶이다.
미국에서 올 한해 ‘사라진 120만개 일자리, 1,010만 명의 실업자’속에 끼지 않았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지금의 위축된 경기 보다 더 으스스하게 기분 나쁜 것은 현대판 ‘보릿고개’가 단시일 내에 해결될 수는 없으리라는 예감이다. 앞으로 매달 수십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실업률이 8%에 달하는 가파른 내리막 행진이 내년까지 이어지리라는 전망이 있다.
“들어오는 돈은 없고 나가야 할 돈은 많으니, 장사를 계속해야 할지 접어야 할지 고민이다” “직장에서 구조조정 설이 나돌아 밤잠을 못 잔다” “도무지 일감이 없다. 일하고도 돈을 못 받아 렌트비도 못 낸다” … 심각한 ‘돈’ 문제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절박해질지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돈’ 문제는 ‘돈 문제’로 끝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사이좋았던 사람들이 원수가 되거나, 멀쩡해 보이던 가정이 깨어지는 이면에는 종종 돈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요즘 특히 위태로운 것은 가정이다. 재정적 스트레스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부부들이 잦은 충돌 끝에 불화가 깊어져 별거나 이혼으로 가는 케이스들이 많다고 한다. 돈이라는 윤활유가 메마르면서 부부사이가 까칠해진 결과이다.
LA에 뿌리를 둔 공연예술단 중 ‘디아볼로’라는 무용단이 있다. 자크 하임이라는 무용가가 1992년 창설한 무용단인데, 창의적이고 실험적 성격 때문에 상당한 호평을 받아왔다.
디아볼로 공연의 특징은 출연진들이 유기체처럼 빈틈없이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는 점이다. 종종 거대한 바퀴 같이 움직이는 설치물이 등장해 한 사람이 잠깐 한눈팔면 다음 사람이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래서 고도의 긴장감과 함께 팀웍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자크가 이렇게 ‘위험’이라는 요소를 작품에 이용한 것은 노스리지 지진 때의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지진으로 폐허가 되고 나니까 새로운 생존본능이 작동하더군요.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안부를 묻고 물을 나눠주고 나서서 도움을 주는 겁니다. 위기 속에는 또 다른 양식의 삶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위기 때 오히려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결속의 힘을 그는 안무에 이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재정적 위기 역시 부부를 더 강하게 결속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 부부가 시선을 어디에 고정시키느냐가 문제이다. 시선을 과거에 맞추고 ‘네 탓’ 공방만 계속하다가는 상처만 깊어질 뿐이다. 나란히 서서 앞을 보며 역경을 같이 헤쳐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온다. 미국에서는 중요한 명절, 잔칫날이다. 올 한해의 삶을 감사하며 잔치를 할 이유들을 꼽아보자. 홍문택 신부가 이런 예를 보여준다. 그의 시 ‘오늘은 잔칫날이었습니다’를 소개한다.
<오늘은 한 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으니 잔칫날입니다/오늘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날이라 잔칫날입니다/오늘은 왜 그리 밥맛이 좋던지 하루 종일 잔칫날이었습니다/오늘은 사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전혀 없었으니 잔칫날입니다/오늘은 아무 것도 부러운 것이 없었으니 잔칫날입니다/오늘은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열심히 살았으니 잔칫날입니다/그리고 오늘은 별로 죄진 게 없는 것 같아 잔칫날입니다>
경제는 어려워도 매일 잔칫날이 될 수 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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