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을 한마디로 압축해줄 만한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도덕적 해이’가 아닐까 싶다. 현재 전 세계를 뒤 흔들고 있는 금융위기는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됐으며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잇달아 드러난 탐욕의 추한 모습들도 도덕적인 해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난 몇 달간 개인과 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는 언론 보도와 개탄을 접하지 않고 지나간 날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정부로부터 국민 혈세로 조성된 천문학적 액수의 구제 금융을 받은 처지에 중역들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안겨 주려는 금융기관들이나 이를 받아 챙기려 하는 사람들이나 생각이 없기는 비슷해 보인다. 뉴욕주 검찰총장이 이런 금융기관들에 대해 엄중 경고를 내렸는데 잘한 조치다.
부자들은 그렇다 치고 보통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얼마나 도덕적이며 선한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고 있을까. 이것과 관련해 시사 주간지인 ‘US 뉴스 & 월드 리포트’는 클린턴 성추문이 한창이던 지난 1997년 재미있는 조사를 했다. 잡지는 사람들에게 당시 유명인들의 천국 들어갈 확률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클린턴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말한 응답자는 52%였으며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이보다 약간 높은 60%였다. 빈민구제에 일생을 바친 테레사 수녀는 이들보다 훨씬 높은 79%로 2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1위는 누구였을까. 답은 87%를 얻은 ‘자기 자신’이었다.
이 응답이 행위에 대한 냉철한 평가에 바탕한 것이라면 우리는 지금 천국 같은 세상에 살고 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당신 마음속은 천국일지 몰라도 말이다.
최근 미국 대선과 금융위기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조금 잠잠해 지긴 했지만 지난 달 한국을 뒤흔들었던 직불금 불법 수령 파문은 이런 점에서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직불금은 농촌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보듬어주고 낮은 소득을 조금이나마 보전해 주자는 취지의 제도이다.
그런데 규정상 허술한 점이 적지 않고 관리감독도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허점을 이용해 도시 거주자들과 공무원 등 수십만명이 적법하지 않게 직불금을 수령해 온 것으로 드러나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국정감사니, 제도보완이니 하면서 수선들을 떨었다.
직불금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설령 알았다 해도 유혹을 느낄 만한 공간에 있지도 않았지만 이 사태를 보면서 부당 수령자들과 같은 위치(눈 질끈 감고 모른 척 신청하면 돈이 나올 수도 있는)에 있을 경우 과연 유혹을 받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 아니냐는 공박을 받아도 좋다. 하지만 지켜보는 눈이 없으면 도덕성이 흔들리는 게 보통의 인간들이다.
맛있는 도너츠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테이블 위에 놓고 “하나 집어갈 때마다 25센트씩 놓고 가라”는 문구를 써 놓았더니 돈을 놓고 간 사람은 얼마 되지 않고 대부분이 그냥 집어갔다. 그런데 바구니 위에다 거울을 놓거나 사람 눈 그림을 붙여 놓았더니 돈을 놓고 가는 사람의 비율이 2배 이상 늘어났다. 거울은 내면의 시선으로, 눈 그림은 타인의 시선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간다.
윤리수준을 처음으로 지수화 한 사람은 홀로그램 개념을 발견해 1971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영국 물리학자 데니스 가보였다. 가보는 이상 사회를 꿈꾼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후 출간한 저서 ‘성숙한 사회’에서 윤리지수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그에 따르면 윤리지수가 130 이상이면 희생을 마다 않고 남을 위해 봉사한다. 110에서 130 사이는 이기적이지 않고 사회적으로 나무랄 데 없다. 100에서 110 사이는 적어도 바른 환경에서는 책임 있는 태도를 취한다. 90에서 100 사이가 되면 일상적인 조건에서는 제법 괜찮은 시민이 되지만 가끔은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80에서 90 사이는 남의 감시가 있을 때는 사회적인 존재로 행동하지만 가끔 나쁜 짓도 한다. 80이하는 물론 문제 시민들이다.
당신의 윤리지수는 얼마인가. 아마도 다수가 80에서 100 사이 어딘가에 자리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개인과 사회가 어느 정도의 도덕적·윤리적 수준을 유지해 나가는 데는 ‘감시의 눈’이 필요하다.
그 눈이 밤하늘에 빛나는 별 같은 도덕률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최소한 제도적인 감시의 눈초리라도 확실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눈 먼 돈이 널리지 않도록 해 유혹의 단초를 없애야 하고 문제를 잡아내는 추상같은 감사와 서슬 퍼런 언론의 직필도 요구된다.
최고 실력의 골퍼들도 가끔은 해저드에 빠지듯 도덕적 해이 또한 자칫 방심하면 누구나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나 자신의 윤리지수는 어디쯤일까.” 도덕적 해이가 초래한 위기의 시대를 지나면서 새삼 던져 보는 질문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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