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인사 전기 작가 도널드 스파토가 쓴 알프레드 히치콕에 관한 두 번째 작품 ‘미모에 홀려: 알프레드 히치콕과 그의 주연 여우들’(Spellbound by Beauty: Alfred Hitchcock and His Leading Ladies-Harmony사·26달러)이 최근 출간됐다. 제목이 말하듯이 책은 히치콕과 그가 기용한 차가운 금발 미녀 배우들과의 관계를 분석한 글이다.
생전 서스펜스의 장인이라 불린 히치콕은 거의 병적으로 금발 미녀들을 좋아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신사’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체중 285파운드에 작달막한 키 그리고 심술 난 아이처럼 부루퉁한 입술과 두 턱에 눈꺼풀이 무거운 눈이 달려 있는 서양호박처럼 큰 머리를 가진 히치콕에게 이들 미녀들은 하나같이 화중지병의 존재였다는 점이다.
그에 관한 자료를 보면 히치콕은 평생을 억눌린 성적 욕망에 시달리며 살았는데 그는 이런 좌절감을 자기가 결코 취할 수 없는 자신의 영화 속 금발 미녀들을 학대하며 해소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라는 별명이 붙어 다닐 정도였다.
히치콕이 변태적 새디스트로 변해 무참히 학대한 금발미녀 중 가장 대표적인 배우가 ‘사이코’(Psycho·1960·사진-등돌린 사람이 히치콕)에 나온 재넷 리였다. 그는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앤소니 퍼킨스를 시켜 주연인 리를 베이츠 모텔에서 샤워를 하는 동안 식칼로 난자해 죽여 버렸다. 히치콕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런 가학적 행위는 그가 애지중지하던 또 다른 금발미녀 그레이스 켈리가 자기를 버리고 모나코 국왕 레이니에게 시집간 데 대한 복수라고 풀이하고 있다.
어쩌면 켈리는 히치콕에게 더 이상 시달리기 싫어 모나코로 달아났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2편의 히치콕 영화에서 죽다 살아나다시피 했다. 켈리는 입체영화 ‘다이얼 M을 돌려라’(Dial M for Murder·1954)에서 남편(레이 밀랜드)을 두고 바람을 피우다가 남편이 고용한 청부 살인자에 의해 스카프로 목이 졸려 캑캑대며 몸부림을 친다.
천상에서 내려온 순결의 화신과도 같은(그러나 실제로 켈리는 수많은 남자 배우들과 잤다) 켈리를 간부로 몰아 이렇게 혼을 내면서 즐겼을 히치콕은 과연 미녀 학대자라 불릴 만하다. 켈리는 역시 1954년작으로 제임스 스튜어트와 공연한 ‘이창’(Real Window)에서도 아내 토막살해자에게 혼이 난다.
히치콕 때문에 영화에서 죽을 고생을 한 끝에 병원 신세까지 진 여배우가 또 다른 차가운 금발미녀 티피 헤드렌(배우 멜라니 그리피스의 어머니)이다. 헤드렌은 ‘새’(Birds·1963)에서 진짜 새들의 날카로운 부리에 온 몸이 쪼여 그 충격으로 기절을 했는데 다행히도 이 영화를 끝으로 히치콕의 금발미녀 학대증이 끝났다.
당시 66세였던 히치콕은 특히 헤드렌을 좋아했다. 그는 풋내기 헤드렌을 지도하고 의상을 골라주고 심지어 그녀의 필적까지 분석하며 그녀를 애지중지했다. 그는 성적으로 헤드렌을 탐내 그녀가 션 코너리와 공연한 ‘마니’(Marnie·1964) 촬영 중 헤드렌에게 몸을 바치라고 요구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백치미가 있는 또 다른 금발미녀 킴 노박도 히치콕의 새디즘의 희생자 중 한 사람이다. 노박은 ‘환상’(Vertigo·1958)에서 애인 제임스 스튜어트가 보는 앞에서 높은 종탑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리고 한창 스타의 위치를 향해 부상하던 또 다른 금발미녀 베라 마일스를 ‘사이코’에서 조연급으로 격하시킨 것(재넷 리의 언니 역)도 그녀가 결혼해 아기를 가진데 대한 화풀이라는 해석도 있다.
히치콕이 성적으로 억눌린 자가 된 것은 그와 아내 알마와의 불편한 성관계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이 설에 따르면 히치콕은 알마와 생전 딱 한 번 섹스를 했는데 이 관계에서 태어난 딸이 후에 배우가 된 패트리샤다(패트리샤는 아버지 영화 ‘사이코’와 ‘열차 안의 낯선 사람들’에 단역으로 나왔다). 전문가들은 히치콕은 자신의 이런 성적 불만을 영화속 금발미녀들을 괴롭힘으로써 해결했다고 여긴다.
따라서 히치콕은 자기 영화의 남자 배우들인 그레고리 펙이나 제임스 스튜어트 등에게는 신경도 안 쓰고 여자 배우들에게만 매달렸는데 특히 불안정한 신인 여우들을 괴롭히길 좋아했다. 히치콕 스스로도 “여배우들에게서 숙녀성을 박탈하는 것만큼 날 기쁘게 하는 것도 없다”고 고백한바 있다.
그런데 그는 성에 관계없이 모든 배우들을 가축으로 여겼던 감독이었다.
히치콕이 금발미녀들을 학대하며 쾌감을 느끼는데 함께 한 사람들은 결국 팬들이다. 그런 면에서 우린 모두 관음증자요 히치콕의 공범이라 하겠다. 생애 60여편을 감독한 히치콕은 1980년 80세로 사망했다.
유명 인사 전기 작가 도널드 스파토가 쓴 알프레드 히치콕에 관한 두 번째 작품 ‘미모에 홀려: 알프레드 히치콕과 그의 주연 여우들’(Spellbound by Beauty: Alfred Hitchcock and His Leading Ladies-Harmony사·26달러)이 최근 출간됐다. 제목이 말하듯이 책은 히치콕과 그가 기용한 차가운 금발 미녀 배우들과의 관계를 분석한 글이다.
생전 서스펜스의 장인이라 불린 히치콕은 거의 병적으로 금발 미녀들을 좋아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신사’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체중 285파운드에 작달막한 키 그리고 심술 난 아이처럼 부루퉁한 입술과 두 턱에 눈꺼풀이 무거운 눈이 달려 있는 서양호박처럼 큰 머리를 가진 히치콕에게 이들 미녀들은 하나같이 화중지병의 존재였다는 점이다.
그에 관한 자료를 보면 히치콕은 평생을 억눌린 성적 욕망에 시달리며 살았는데 그는 이런 좌절감을 자기가 결코 취할 수 없는 자신의 영화 속 금발 미녀들을 학대하며 해소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라는 별명이 붙어 다닐 정도였다.
히치콕이 변태적 새디스트로 변해 무참히 학대한 금발미녀 중 가장 대표적인 배우가 ‘사이코’(Psycho·1960·사진-등돌린 사람이 히치콕)에 나온 재넷 리였다. 그는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앤소니 퍼킨스를 시켜 주연인 리를 베이츠 모텔에서 샤워를 하는 동안 식칼로 난자해 죽여 버렸다. 히치콕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런 가학적 행위는 그가 애지중지하던 또 다른 금발미녀 그레이스 켈리가 자기를 버리고 모나코 국왕 레이니에게 시집간 데 대한 복수라고 풀이하고 있다.
어쩌면 켈리는 히치콕에게 더 이상 시달리기 싫어 모나코로 달아났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2편의 히치콕 영화에서 죽다 살아나다시피 했다. 켈리는 입체영화 ‘다이얼 M을 돌려라’(Dial M for Murder·1954)에서 남편(레이 밀랜드)을 두고 바람을 피우다가 남편이 고용한 청부 살인자에 의해 스카프로 목이 졸려 캑캑대며 몸부림을 친다.
천상에서 내려온 순결의 화신과도 같은(그러나 실제로 켈리는 수많은 남자 배우들과 잤다) 켈리를 간부로 몰아 이렇게 혼을 내면서 즐겼을 히치콕은 과연 미녀 학대자라 불릴 만하다. 켈리는 역시 1954년작으로 제임스 스튜어트와 공연한 ‘이창’(Real Window)에서도 아내 토막살해자에게 혼이 난다.
히치콕 때문에 영화에서 죽을 고생을 한 끝에 병원 신세까지 진 여배우가 또 다른 차가운 금발미녀 티피 헤드렌(배우 멜라니 그리피스의 어머니)이다. 헤드렌은 ‘새’(Birds·1963)에서 진짜 새들의 날카로운 부리에 온 몸이 쪼여 그 충격으로 기절을 했는데 다행히도 이 영화를 끝으로 히치콕의 금발미녀 학대증이 끝났다.
당시 66세였던 히치콕은 특히 헤드렌을 좋아했다. 그는 풋내기 헤드렌을 지도하고 의상을 골라주고 심지어 그녀의 필적까지 분석하며 그녀를 애지중지했다. 그는 성적으로 헤드렌을 탐내 그녀가 션 코너리와 공연한 ‘마니’(Marnie·1964) 촬영 중 헤드렌에게 몸을 바치라고 요구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백치미가 있는 또 다른 금발미녀 킴 노박도 히치콕의 새디즘의 희생자 중 한 사람이다. 노박은 ‘환상’(Vertigo·1958)에서 애인 제임스 스튜어트가 보는 앞에서 높은 종탑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리고 한창 스타의 위치를 향해 부상하던 또 다른 금발미녀 베라 마일스를 ‘사이코’에서 조연급으로 격하시킨 것(재넷 리의 언니 역)도 그녀가 결혼해 아기를 가진데 대한 화풀이라는 해석도 있다.
히치콕이 성적으로 억눌린 자가 된 것은 그와 아내 알마와의 불편한 성관계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이 설에 따르면 히치콕은 알마와 생전 딱 한 번 섹스를 했는데 이 관계에서 태어난 딸이 후에 배우가 된 패트리샤다(패트리샤는 아버지 영화 ‘사이코’와 ‘열차 안의 낯선 사람들’에 단역으로 나왔다). 전문가들은 히치콕은 자신의 이런 성적 불만을 영화속 금발미녀들을 괴롭힘으로써 해결했다고 여긴다.
따라서 히치콕은 자기 영화의 남자 배우들인 그레고리 펙이나 제임스 스튜어트 등에게는 신경도 안 쓰고 여자 배우들에게만 매달렸는데 특히 불안정한 신인 여우들을 괴롭히길 좋아했다. 히치콕 스스로도 “여배우들에게서 숙녀성을 박탈하는 것만큼 날 기쁘게 하는 것도 없다”고 고백한바 있다.
그런데 그는 성에 관계없이 모든 배우들을 가축으로 여겼던 감독이었다.
히치콕이 금발미녀들을 학대하며 쾌감을 느끼는데 함께 한 사람들은 결국 팬들이다. 그런 면에서 우린 모두 관음증자요 히치콕의 공범이라 하겠다. 생애 60여편을 감독한 히치콕은 1980년 80세로 사망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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