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핑거. 그는 마이더스의 터치를 지닌 남자/ 거미의 터치. 그렇게 찬 손가락이 널 죄의 거미줄 안으로 들어오라고 부르네/ 아름다운 여자여, 그의 황금의 마음을 조심하라. 이 마음은 차갑네/ 그는 오직 황금만을 사랑해. 그는 황금을 사랑해’
셜리 배시가 열창하는 007 시리즈 ‘골드핑거’의 주제가의 일부다. 세계 금융계를 무력화 하려고 켄터키 포트 낙스의 미재무부 소속 금괴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려는 골드핑거는 현대판 마이더스 왕이다. 그는 영화 처음에 자기를 배신한 섹시한 금발미녀의 전 나신을 도금, 인체의 모든 구멍을 막아 질식사시킨다. 그야말로 마이더스의 터치다.
요즘은 신문을 봐도 돈, TV를 봐도 돈 그리고 라디오를 들어도 또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도 모두 돈 얘기뿐이다. 정말 지겹다. 월스트릿의 탐욕이 저지른 너절한 황금의 액수가 천문학적 숫자여서 글 써 봉급 받아먹고 사는 나로서는 별세계의 얘기처럼 들린다. 어느 정도의 욕심은 인간 활동의 추진력이 되지만 탐욕은 결국 인간의 영육을 파괴시킬 뿐이다. 물론 탐욕의 근원은 황금이다. 황금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도덕성을 파괴하는 힘을 지녔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요즘의 월스트릿 재난은 수단방법 안 가리고 취하면 된다는 지난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당시의 시대풍조에서 그 맥락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경제 문외한이어서 도대체 요즘 미국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얼떨떨하기만 하다. 그런데 나의 이런 얼떨떨함을 탐욕의 새카만 근성을 폭로한 영화 ‘월스트릿’(1987·사진)을 만든 올리버 스톤이 최근 어느 정도 풀어준 바 있다.
지난 7일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는 오늘 개봉되는 영화 ‘W.’를 감독한 올리버 스톤을 만났다. 당연히 요즘 월스트릿 파산사태와 그의 영화가 비교됐다. ‘월스트릿’에서 마이클 더글러스는 탐욕스럽고 부패한 브로커 고든 게코로 나와 “탐욕은 좋은 것이다”(Greed Is Good)라면서 닥치는 대로 해먹는데 이 영화는 탐욕의 가공스런 실체와 그것의 파괴성을 그린 도덕극이다. 한편 폭스는 월스트릿의 재난에 맞춰 이 영화의 속편을 준비중이다.
스톤은 아버지가 월스트릿 브로커여서 1980년대 많은 젊은이들이 엄청난 액수의 돈을 버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은 건달에 지나지 않는 젊은 백만장자들이 그렇게 많은데 놀랐다”면서 “1980년대는 미친 시대”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0~7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 돈을 벌었는데 80년대 들어 시작된 한탕주의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모든 것이 자본화, 돈이 되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투자하더니 결국 이 지경이 됐다”면서 “부시와 의회가 은행과 보험회사와 기타 재정 서비스 회사들 간의 장벽을 허문 것은 큰 실수”라고 덧붙였다.
인간 탐욕의 흉악한 모습과 그것의 비극적 결말을 그린 뛰어난 영화로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1948)이 있다. 존 휴스턴이 각본을 쓰고 감독하고 그의 아버지 월터 휴스턴과 험프리 보가트가 공연한 이 영화는 무일푼의 미국인 3명이 멕시코 탐피코의 시에라산에서 금을 캐는 얘기다.
이들은 금을 캐는데 성공하나 황금에 눈이 먼 보가트가 탐욕과 의심 때문에 광인의 지경이 되면서 비극이 일어난다. 황금에 의한 인간성의 파탄과 탐욕의 범죄성을 폭로한 걸작이다.
무성영화 ‘탐욕’(1925)도 황금의 부패 능력을 말한 충격적인 작품이다. 에릭 본 스트로하임이 감독했는데 돈에 집착하는 아내 때문에 광인이 되어버리는 한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잊지 못할 장면은 캘리포니아 데스밸리에서의 라스트 신. 주인공 맥티그와 그의 라이벌 마커스가 사막에서 서로 황금이 든 부대를 놓고 싸우다 맥티그가 마커스를 살해한다. 그러나 맥티그는 자기 손이 수갑에 의해 마커스의 손과 함께 채워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맥티그는 뜨거운 태양 아래 죽어간다.
인간들뿐 아니라 신들도 황금을 좋아했다.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는 황금에 대한 집착과 그것의 엄청난 파괴성을 그린 작품이다.
‘라인골트’에서 난쟁이 알베릭은 사랑을 포기하고 대신 자기를 세상의 주인이 되게 해 줄 라인골트를 훔쳐 반지로 만든다. 그러나 이 반지를 빚에 쪼달리는 신의 왕 보탄이 알베릭으로부터 빼앗고 이어 반지가 이 신 저 신들로 소유주가 바뀌다가 결국은 반지에 씌운 저주 때문에 라인강은 범람하고 신들의 왕국인 발할라마저 불길에 휩싸여 파괴된다. 신들이라고 별 수 있나.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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