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풋볼 시즌이 6주에 접어들면서 팬들의 열기도 절정에 달하고 있다. 사커(축구)만을 보아온 한국인에게 풋볼은 미국에서 발견한 새로운 재미가 아닐 수 없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또 있을까! 선수들에겐 부상자가 속출하는 위험천만한 경기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스릴 만점이다. 풋볼 구경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태클이다. 300 파운드의 거인들이 정면으로 돌진하여 죽기 살기로 부딪힌다. 자동차가 저렇게 정면 충돌하면 아마도 운전사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풋볼에서 태클이 최선의 방어책이며 최고의 공격 방법이기 때문에 태클에 지면 경기도 진다. 인생에 있어서도 부딪힘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부딪혀 보지도 않고 중단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인간은 없다. 자살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코너에 몰렸을 것이라고는 이해하지만 죽을 힘을 다하여 자기 자신과 그리고 직면한 문제에 태클을 해 보았느냐 하는 것이다.
월스트릿 저널은 뉴욕 멋장이 여성들의 하이힐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 동안 굽의 높이는 3-4인치였는데 최근 5-6인치로 높아지더니 드디어 7인치 하이힐이 등장하였다고 한다. 생각만해도 아찔한데 어쨌든 미인들은 높은 것을 좋아한다. 값도 굽을 따라 치솟아 600달러 내지 1,000달러나 된다고 하니 상상을 초월한다. 며칠 전 앤 베츠 라는 멋쟁이가 5인치 하이힐을 신고 맨해튼 5번가를 신나게 걷다가 넘어져 병원에 실려갔다. 의사의 처방은 ‘3인치 이하의 신을 신으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높은 것을 좋아하는 미인들의 정열을 의사가 이
길 것 같지는 않다. 기왕 도전하려면 높은 신발보다는 높은 진리나 지식, 인생의 풍랑에 도전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 같다.지난 13일은 ‘컬럼버스 데이’였다. 그가 바하마 열도에 도착한 것은 1492년 10월 12일이었다. 컬럼버스는 “만일 선원들의 투표에 의해 항해하였다면 대서양을 3분의 1도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공포에 싸인 선원들은 날마다 돌아가자고 주장했고 때로는 컬럼버스 선장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컬럼버스는 “서쪽으로 전진!” 명령을 날마다 내렸다. 이런 것을 고집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컬럼버스는 신념을 가지고 전진하였고 선원들은 의심과 두려움으로 살 길만을 찾았던 것이다. 성공과 실패의 갈래 길이 여기에 있다. 신념과 희망을 가지고 전진하는 자는 성취의 열매를 거두고, 의심과 염려에 사로잡혀 희망을 포기하는 자는 손에 쥐는 것이 없다. 소망이 희미한 자는 신경질을 부리고 조급하다. 그러나 신념이 있는 자는 인내하고 조용히 기다리는 슬기가 있다.
USA Today지는 ‘직장과 스트레스’라는 기획기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소위 노력형 직장인이 요령껏 눈치를 보며 일하는 사람보다 소외감이나 권태를 덜 느끼고 자기평가도 높으며 몸도 건강한 편이라고 보고하였다. KBS가 만든 치매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도 명랑하고 쾌활하며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적다는 것이다. 좋은 목재는 쉽게 빨리 자란 나무가 아니다. 세찬 바람에 시달린 나무일수록 그만큼 단단한 나무가 된다. 북유럽의 바이킹 족은 추운 자연 환경을 극복하고자 조선술과 항해술을 발전시켰다.
머지않아 다람쥐들의 겨울나기 준비가 시작될 것이다. 다람쥐의 생태를 읽고 감탄하였다. 그들은 도토리를 땅에 저장한다. 한 구멍에 한 개씩만 넣는다. 우선 앞발로 구멍을 깊숙이 파고 도토리를 구멍 밑바닥에 정성스럽게 내려놓는다. 그리고 흙을 덮고 흙 위에 마른 잎들을 얹는다. 다람쥐 한 마리 당 약 2,000개의 구멍을 파고 2,000개의 도토리를 저장한다고 한다. 다람쥐가 놀기만 하는 것 같아도 후일을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것이다.인간의 참 모습은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끝까지 잘 싸우는 사람은 그 투지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것이다. 실패란 단적으로 포기를 말한다. “포기하지 않는 개구리가 바터를 만든다.”는 서양속담이 있다. 개구리 두 마리가 우유 통에 빠졌는데 한 마리는 포기해서 죽고 다른
개구리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두 다리를 휘저으니까 어느새 우유가 바터로 굳어 살아 나왔다는 우화에서 나온 속담이다.
나는 오늘도 고생하는 우리 한인들에게 시 한 수를 바친다. “불가능한 정도의 꿈을 꾸며/ 힘겨운 상대와 대결하라./ 눈물은 속으로 흘리고/ 슬픔은 씹어 버리라./ 뛰어들라, 뛰어들라, 사자 굴로/ 언제나 정의 편에 서고/ 멀리서 맑게 사랑하라./ 자주 눈을 부비어 별을 보라./ 보람이 그대
의 별이다./ 상처 입은 한 사나이가/ 풍랑 속에서 굳세게 노를 젓는다./ 그대가 바로 그 사나이다./ 파도를 거슬려 끝까지 노를 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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