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엄마는 아빠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그런 거야. 여기 세계 지도가 있는 데 너무 너무 넓지? 바다 같지? 우리 셋이서 이제 쪽배를 타고 가는 거다. 같은 이름으로”
올해 초 7살, 5살의 남매를 앉혀두고 최진실씨가 한 말이다. 아빠의 성 대신 엄마의 성으로 바꾸기로 어린 자녀와 합의를 보고 난 후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는데 서류 하나 뗄 때마다 전남편과 연락해야 되는 일이 너무 불편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그는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마흔 살 싱글맘으로서 두 아이를 양팔에 끼고 셋이서 똘똘 뭉쳐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을 것이었다.
지난 4월말 드라마 ‘마지막 스캔들’로 새삼 주목을 받았을 때의 인터뷰였다. 최진실씨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몇 개월 전에 읽은 이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깜직 발랄 이미지가 재산이었던 예쁜 탤런트에서 인생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성숙한 여성, 엄마 그리고 연기자로 무르익은 것 같아 인상에 남았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극중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이혼 당하는 천덕꾸러기 아줌마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불행했던 경험들이 도움이 되더라고 했다.
“만약에 내가 아무 탈 없이 너무 행복한 가정에서 살고 있다면, 지금처럼 이런 감정을 내가 알까요? 다행이에요. 연기자로선. 억울한 것도 알아서 다행이고, 엄마로서의 절박함도 알아서 다행이에요”
‘억울한 것도 알아서 다행’이라던 그가 목숨을 끊었다. 기쁨과 행복 못지않게 슬픔, 고통, 좌절도 인생의 자연스런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다 이해한 것 같던 그가 생을 버렸다. 아무리 힘들어도 두 아이를 생각하면 ‘안주할 수 없다, 가야한다’며 마음을 다잡는다던, ‘엄마로서의 힘’이 버팀목이라던 그가 아이들을 남기고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큰 구멍하나 뻥 뚫린 듯 심란해한다. 그는 대중의 가족 같은 존재였었다.
자살이 너무 흔해졌다. 과거에는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아주 예외적인 사건으로 여겨졌었는데 요즘은 너무 빈번한 일이 되었다. 미국에서도 한인이 인구에 비해 자살이 많다는 통계가 있지만 한국은 자살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살이 많아졌다.
한국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007년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하루 평균 자살자가 33명이 넘는다. 지난 10년 사이 자살은 두배로 늘어서 사망원인 순위가 1997년 8위, 2006년 5위에 이어 4위로 뛰어올랐다.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4번째로 많다는 것이다. 20대와 30대의 경우는 자살이 사망원인의 1위를 차지한다니 심각한 일이다.
삶이 그만큼 더 힘들어진 것일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해진 사회, 숨 막히도록 치열한 경쟁, 그래서 밀려나는 그 순간 도태될 것 같은 불안감 등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할 심리적 압박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아울러 과거에는 한 지붕 대가족 구조 안에서 서로 비비고 다독이며 받는 위로가 있었는데 지금은 저마다 혼자이다. 공동체 문화가 붕괴되고 개인주의가 심해지면서 고독과 소외감에 무방비로 던져질 위험을 우리 모두 안고 있다.
그렇다고 상황이 자살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바윗덩어리 같은 고통에 짓눌려 ‘죽는 게 낫겠다’ 싶은 상황에서도 마음과 정신이 튼튼하면 결국은 버텨낸다. 낭떠러지에서도 살려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정신력의 씨줄과 날줄이 약해서 상황의 무게를 감당해내지 못하면 비극은 찾아든다. 낭떠러지 앞에서 지레 살기를 포기하고 뛰어내리는 것이다.
동아줄 같아야 할 정신력의 밧줄을 퍼석퍼석 삭게 만드는 것이 우울증이다.
몇 년 전 하버드 의대 연구진은 21세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은 요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심장병, 우울증, 교통사고이다. 요즘같이 자살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면 선견지명이 있는 진단이었다. 자살하는 사람의 90% 이상은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던 사람들이고 그중 가장 흔한 증상이 우울증이라는 통계가 있다. 우울증은 삶에 대한 의욕, 희망, 의미를 모두 앗아 가는 무서운 병이다.
최진실씨를 죽음의 나락으로 밀쳐버린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죽음을 두고 또 다른 억측 루머들은 없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든 우울증으로 시달려온 그가 감당하기에는 벅찼던 것이 분명하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결국 정신이다. 정신을 보살피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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