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에 오래 종사하던 한 지인이 최근 은퇴를 했다. 보통의 은퇴연령 보다 10년 정도 더 현직에서 일을 한 후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한국의 광고 문구를 떠올리며 그분에게 은퇴 후의 계획을 물어 보았다. “평생 일했으니 이제는 느긋하게 쉼을 즐기겠다”는 대답을 기대한 질문이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정반대였다.
“앞으로의 활동 기간을 10년으로 봐요. 그동안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아요”
일이 바빠서 가고 싶은 데도 못 가본 곳들을 가보고, 만나고 싶은 데도 못 만난 사람들을 만나며, 사놓고도 읽지 못한 책들을 다 읽는 것은 물론 천문학 등 전혀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책도 몇 권 쓰고, 사이사이 사회봉사도 하고 싶다는 ‘빽빽한’ 계획이었다.
세상에는 반드시 직접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나이’가 바로 그렇다. 나이를 산에 비유한다면 산기슭 유년의 눈으로 산정의 노년을 알 길은 없다. 산중턱쯤 되는 40·50대가 바라보기에 70·80대의 산꼭대기는 바람과 구름이나 찾아드는 고적한 곳이다. 하지만 그곳에도 직접 가보면 생명현상이 활발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특히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요즈음 70살 즈음에 ‘이제 다 살았다’며 두 손 놓고 있다가는 후회 막심하게 생애를 마칠 수가 있다.
최근 네티즌들이 열심히 퍼 나르는 글 중에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라는 글이 있다. 누가 쓴 글인지, 실제 경험담인지 창작물인지도 알 수가 없는데 처음 등장한 시기는 1년쯤 전으로 짐작이 된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중략…//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 날/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은퇴한 후부터 노쇠해 활동을 못할 때까지의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노년을 앞두고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은 병고에 시달리느라 살아도 산 게 아닌 목숨을 부지하는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건강한 심신에도 불구,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고 그날그날 보내기를 20-30년 계속하는 것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위의 노인과 같은 경우이다.
은퇴 나이에도 건강과 의욕이 젊은이들 뺨치는 요즘의 노장년층을 하버드의 사회학자 윌리엄 새들러 박사는 ‘제3의 연령기’로 규정했다. 50년 전만해도 이 나이면 자타가 공인하는 노인으로 죽음에 대비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건강해서 제2의 인생을 시도해볼만한 보너스 같은 기간이 되고 있다.
새들러 박사는 ‘제3의 연령기’를 40대부터 70대의 30년으로 보았다. 하지만 요즘 추세로 보면 그보다 나중인 은퇴를 기점으로 20-30년이 더 타당할 것 같다. 60대 초중반의 은퇴자들은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이전 세대의 40-50대에 버금가기 때문이다.
‘제3의 연령기’는 시간의 주인이 되는 시기이다. 학교·직장에서 타의에 의해 일정이 정해지던 삶에서 벗어나 자기의 시간을 온전히 자기의 손안에 쥐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생애 중 가장 의미 있는 기간이 될 수도 있고, 끝없이 지루한 허송세월이 될 수도 있다.
전반전, 후반전에 이어 그만큼의 연장전이 우리 생애 앞에 놓여있다. 준비 없이 맞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평생 의사였다면 노후에 시인을 꿈꿔보면 어떨까. 마켓주인은 소설가로, 은행가는 바이올린 주자로, 엔지니어는 화가로 … 인생의 마지막 장에 우리 모두 변신을 해보면 좋겠다. ‘제3의 연령기’를 위한 프로젝트들이 있어야 하겠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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