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한인자녀들이 그렇듯이 우리집 아이들도 어려서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가깝게 지내던 유학생이 집에 와서 가르쳤는데 아이들이 여간 재미있어 하는 게 아니었다. 서로 피아노를 치겠다고 싸울 정도였다.
“아이들 피아노 연습시키려면 내 입이 닳는다”던 선배 엄마들의 푸념을 익히 들어온 터라 아이들의 다툼은 반갑다 못해 감동적이었다. “얘들이 천부적 음악성을 타고 난걸까?” - 내심 흐뭇했다.
하지만 그뿐, 다른 엄마들의 푸념이 그대로 나의 푸념이 되는 데는 몇 달이 걸리지 않았다.
피아노를 가르치면 피아노가 너무 재미있어서 밤낮으로 건반을 두드리고, 학교에서 새로운 걸 배우면 더 알고 싶어 도서관 책들을 뒤지고, 시험 때가 되면 누가 말 안해도 밤잠 줄이며 공부하는 그런 아이들만 있다면 부모노릇은 얼마나 쉬울까.
학교들이 개학하면서 동기부여가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이번에는 공부 잘할 때마다 돈을 주는 문제가 부모들의 화제가 되고 있다. 워싱턴 D.C. 교육구의 미셸 리 교육감이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현금포상제를 실시한다는 보도가 계기가 되었다.
10월부터 D.C. 교육구내 14개 중학교는 결석하지 않고, 숙제 착실히 하고, 시험 성적 좋고, 규칙 잘 지키는 학생들에게 돈을 준다. 포인트 당 2달러씩 계산해서 매달 최고 100달러까지 받을 수 있다니 가난한 지역의 중학생들로서는 큰돈이다.
뉴욕, 볼티모어, 시카고 등 대도시 공립학교에 도입된 이 프로그램은 하버드 경제학과의 롤랜드 프라이어라는 흑인교수가 주관하는 시험적 프로젝트이다. 결석을 밥 먹듯 하고, 중퇴가 보통이며, 공부 좀 할라치면 “백인 흉내 낸다”고 놀림 받는 흑인 빈민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학업에 흥미를 갖게 할까 연구하는 프로젝트이다. 프라이어 교수는 교육구내 학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돈을 지급하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들을 비교, 돈의 효과를 분석한다.
38살의 한인여성 교육감이 이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하자 한인부모들이 새삼 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돈의 동기부여 효과에 대한 관심이다. 똑똑한 우리 아이, 머리 좋은 우리 아이, 게임에는 천재 같은 우리 아이, 하지만 공부에는 열의가 없는 우리 아이에게도 “돈을 줘볼까?” 하고 솔깃해지는 것이다.
며칠 전 USA 투데이에 의하면 기업 경영자들 중에도 상당수가 자녀 성적 높이는 자극제로 돈을 이용한다. 조사 대상이 된 74명의 CEO들 중 절반 이상이 성적에 따라 자녀들에게 돈을 준다고 했다. 회사에서 성과급을 지급하면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하듯 자녀들도 돈을 주면 공부에 열심을 낸다는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교육자들은 공부 잘한 대가로 돈을 주는 데 대해 반대 입장이다. 학교와 회사, 교육과 직업, 어린 학생과 성인인 직원은 다르다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서 배워야할 가치들이 많이 있다. 새로운 지식을 얻으며 누리는 배움의 기쁨,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을 때의 성취감과 자신감, 부모나 교사 등 주위로부터 인정받는 즐거움 등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가치들이다. 그런데 잘한 대가로 돈을 줘 버릇하면 이런 가치들을 제대로 배울 기회를 잃고 만다.
흑인 빈민가 공립학교의 현금포상제는 그 지역의 특수한 사정과 상관이 있다. 도무지 교육을 중시하지 않는 환경에서 아이들의 눈길을 끌 마지막 수단으로 돈을 동원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 중퇴한 아이들이 대부분 갱이 되고 마약 팔아 돈 버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이 또한 얼마나 성과가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A 하나에 얼마’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거래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잘할 때마다 돈을 주거나 잘못하면 벌을 세우는 등 외부로부터의 동기부여는 운동선수의 스테로이드와 같다. 당장은 반짝하고 효과가 있지만 지속력이 없다.
칭찬과 격려와 아울러 그때그때 아이가 가장 원하는 것을 상으로 주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성적을 잘 받은 주말에는 게임시간을 늘려주거나, 귀가시간을 늦춰주거나, 용돈을 좀 더 주는 등이다.
아이들의 공부는 많은 부분 습관이다. 어려서부터 공부하는 습관을 잘 길러주면 동기부여로 고민할 일이 많이 줄어든다. 세 살 버릇 여든 가는 건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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