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가 태어났을 때 여성들은 투표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 딸은 자기 엄마를 대통령으로 뽑는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26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민주당전당대회 연설 중 한 구절이다. 여성 참정권획득 88주년 기념일이기도 한 그날 힐러리는 ‘최고의 연설’이라는 극찬과 함께 민주당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전국을 사로잡았다.
그의 말 한마디 손짓 한 번에 열광하고 눈물 흘리는 대회장의 분위기는 한가지를 분명하게 확인시켜주었다.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의 반석 같은 위상이었다. 출마 초기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여성이 어떻게…’ 꼬리표나 ‘남편 후광’ 꼬리표는 어느새 떨어져 나가고 막강한 정치인으로서의 힐러리만 우뚝 서있었다.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엄청난 변화이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40여개의 세계 신기록이 세워졌다. 그중 하나가 우사인 볼트의 육상 100m 신기록이다. 그가 이번에 세운 기록은 9초69. 세계기록이 10초를 웃돌던 50년 전만 해도 사람이 9초대에 100m를 돌파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1960년 서독의 아르민 해리가 10초00을 기록하고, 이후 0.01초 단위로 단축을 꿈꾸던 수많은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 끝에 인류는 이번 볼트의 기록에까지 도달했다. 0.31초를 앞당기는 데 48년이 걸린 셈이다.
마라톤은 이번 올림픽에도 불구, 지난해 9월 베를린 마라톤의 기록이 여전히 세계 신기록이다. 당시 에티오피아 선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가 2시간4분26초에 완주했다. 공식적 최초의 기록인 1908년 미국 선수 존 하예스의 2시간55분18초4에서 거의 51분이 단축되었으니 대단한 발전이다. 하지만 이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얻은 변화는 아니다. 지난 100년 동안 수많은 선수들이 피땀 흘린 투지로 몇 분씩, 몇 초씩 기록을 경신한 덕분에 이뤄낸 성과이다.
모든 신기록이 의미 있는 것은 이정표적 역할 때문이다. 도달해야 할 목표, 넘어서야 할 도전으로 후진들의 가슴에 새겨짐으로써 기록은 존재 가치를 갖는다.
‘체력의 벽’ 못지않게 넘어서기 어려운 것은 ‘의식의 벽’이다.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아우르는 이 사회의 의식의 지평 또한 장구한 세월에 걸쳐 힘겹게 한뼘 한뼘 넓혀졌다.
1848년 7월19일은 미국의 여권운동사에 영원히 기록되는 날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권익옹호 대회인 세네카 폴스 대회가 열린 날이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불온’한 사상이 논의된 대회였다. 그리고 혁명과도 같은 결의로 여성이 재산을 소유할 권리, 의사표현의 자유, 이혼할 권리, 동등한 비즈니스 기회를 보장받을 권리, 직업과 교육 상 동등한 기회를 가질 권리 등 12개 조항의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모두가 일반적 정서로는 포용이 불가능 할 만큼 파격적이었지만 특히 한 조항은 당대의 선각자들인 대회 참석자들조차 너무 놀라서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바로 여성의 투표권 요구였다. 그후 여성 참정권이 헌법으로 보장되는 데는 72년이나 걸렸다. 사회적 고정관념이 변화하는 데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이었다.
이번 덴버 전당대회는 여성파워가 유난히 돋보인 대회였다. 당의 화합을 좌지우지한 힐러리, 감동적 연설로 청중을 매료시킨 미셸 오바마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그 외 여성 연설자들과 전체 대의원의 50.1%를 차지한 여성 대의원들로 대회장은 여성들의 잔치 분위기였다. 여성 참정권이 인정된 1920년 전당대회장에는 딱 한명의 여성 대의원이 있었을 뿐이었다.
희망은 길과 같다고 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지만 누군가 한사람이 걸어가고 그 뒤를 많은 사람들이 따르다보면 길이 생기 듯 희망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희망을 가지고 앞장 선 여성들이 여성 최초의 교사, 교수, 판사, 하원의원, 상원의원 … 으로 길을 열고 그 뒤를 후배들이 따르면서 오늘의 여성 지위가 이룩되었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한뼘의 변화, 한줌의 변화를 위해서 수 세대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려 투쟁한 결과가 오늘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권리들이다.
여성으로서 우리의 딸들이 살아가기에, 유색인종으로서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가기에 이 사회는 충분히 평등한가. 아직도 불평등이 남아있다면 변화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변화가 희망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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