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가꾸며 모종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지인이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똑같은 고추 모종이라도 결과가 제각각이다. 가지가 찢어질 듯 고추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리는 집이 있는 가하면 비실비실 자라다만 듯 부실한 집도 있다.
집집마다 토양이 다른 탓도 있겠지만 가장 큰 변수는 사람의 손길이다. 수시로 잡초 뽑고, 벌레 잡고, 거름 주며 세세히 돌본 경우와 스프링클러로 물을 준게 고작인 경우는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정성을 쏟은 만큼 거두기는 채소 농사나 자식 농사나 마찬가지이다.
베이징 올림픽으로 눈이 시원해지고 가슴이 시원해졌다. 인간의 체력과 정신력으로 갈수 있는 극한까지 자신을 밀어내는 선수들의 몸짓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예술이다. 그들 올림픽 선수 모두가 영웅이지만 이번 올림픽의 스타는 단연 마이클 펠프스, 그리고 한국에서는 박태환이다.
줄줄이 세계 신기록,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는 이들 선수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가슴이 저릿해질 때가 있다. 어려서 부실한 측면이 있던 이들에게 그 극복의 수단으로 수영을 소개한 부모가 없었다면 이 청년들은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어린 시절 펠프스는 주의력결핍 과다행동 장애(ADHD), 박태환은 천식을 앓았고, 이를 뛰어넘어 천부적 재능을 펼칠 기회를 갖게 된 데는 부모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아이의 부족한 부분, 강한 부분을 완벽하게 파악해서 아이에게 가장 잘 맞는 길로 이끌어준 역할이다.
박태환이 천식 때문에 수영을 시작했다는 일화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천식 치료에 좋다”는 의사의 말에 7살짜리 아들에게 수영을 시켜보니 재능이 남달라서 그때부터 부모가 수영선수 만들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덕분에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수영부문 금메달을 얻었다.
펠프스가 경기할 때마다 그의 어머니 데비 펠프스가 유난스럽게 진한 감정을 실어 응원하는 것도 아들을 키우며 겪은 남다른 애로와 상관이 있다.
매릴랜드의 중학교 교장인 데비는 아들이 9살 때 ADHD 진단을 받은 후 ‘아들과 한 팀’이란 자세로 살아왔다. 모자간의 정이 남달리 끈끈할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교사였던 데비도 아이가 어릴 적 왜 그렇게 말썽꾸러기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항시 기운이 넘쳐서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한순간도 입을 다물지 못해 부산스럽기 그지없었다. 막연히 “사내아이라서 그런가 보다”했는데 아이 학교교사의 조언으로 의사를 만나보니 ADHD 라는 것이었다.
아이 학교에서는 수시로 엄마를 불러댔다. 주의가 산만해 수업시간마다 옆의 아이들을 건드려 수업 분위기를 흐리니 교사들은 “마이클이 이걸 못한다. 저걸 못한다” 지적이 많았다. 그때 마다 데비는 묻곤 했다 - “그래서 선생님은 아이를 돕기 위해 뭘 하고 계신가요?”
집중이 안돼서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 하는 아이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 까는 그에게 일생일대의 과제가 되었다. 치유에 도움이 된다면 무슨 방법이든 시도를 해보았다. 그러던 중 데비의 눈을 끄는 게 있었다. 천방지축 마이클이 수영할 때만은 컨트롤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마이클이 처음부터 수영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7살 때 수영을 시켰더니 얼굴이 물에 젖는 게 싫다고 떼를 써서 배영부터 배우게 했다. 그리고는 차츰 수영에 빠져들더니 그 다음부터는 일년 365일, 크리스마스 날까지도 수영장에서 사는 아이가 되었다.
ADHD가 있으면 평소 주의가 산만하다가도 뭔가 자신을 빠져들게 하는 일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선수들이 긴장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 펠프스는 오히려 더 무섭게 집중하며 펄펄 나는 것은 이런 요인 때문이다.
아들이 ‘수영 황제’가 된 지금 데비는 ADHD 계몽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자녀들을 모두 키워 내보내고 나면 대부분 부모들은 아쉬워한다. “아, 그 아이한테는 이런 게 필요했었구나. 이렇게 길렀다면 더 좋았을 텐데”하는 뒤늦은 후회이다. 한창 아이들을 키울 때는 바쁘고 고단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이 세월이 지나고 나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대단한 운동선수로, 음악가로, 과학자로 잠재력을 지닌 아이에게 그런 분야를 접할 기회도 주지 못한 채 어른을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펠프스나 박태환이 수영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 그건 얼마나 큰 불행인가. 올림픽 메달 선수 뒤에는 올림픽 메달감의 부모가 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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