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부리나케 책상으로 돌아와서는 멍- 하니 앉아 있는다. 뭔가 할 일이 있었는데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아, 전화를 하려고 했었지” 하고 수화기를 들고 나면 또 다시 멍- 하다.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 건지 생각이 안 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망각의 강에 발을 들여놓는 것인가 보다. 깜빡깜빡 건망증이 점점 심해진다. 다행이도 잊어버리는 정도가 나이를 따라가다 보니 동년배 사이에서는 그만한 동병상련도 없다. ‘깜빡했다’고 하면 웬만한 실수는 덮어주는 것이 중년의 푸근함이다. 그렇기는 해도 건망증으로 겪는 크고 작은 불편까지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력’하면 꼽히는 인물로 솔로몬 셰르셰프스키라는 사람이 있다. 20세기 초반 러시아 사람인데 그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기억이 얼마나 생생한지 옛날에 왼손으로 얼음을 쥐었던 생각을 하면 왼손이 차가워지고, 오른 손으로 뜨거운 걸 만졌던 기억을 하면 오른 손의 체온이 올라갔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런 기억력은 보통 괴로운 게 아닐 것이다. 하루를 살면 하루의 분량만큼씩 쌓이는 기억거리들을 하나도 덜어내지 못하고 모두 부둥켜 않고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축복이기 보다 저주이다. 실제로 그는 말년에 서커스에서 기억력 시범이나 보이며 목숨을 연명했고, 나중에는 정신분열증에 걸렸다고도 한다.
경제가 나빠지면서 밤잠을 못자는 사람들이 많다.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감원 당한 실직자,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겨 속이 타는 가게주인, 유가인상 여파로 적자를 계속하는 기업인 …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고, 야금야금 빼먹던 저금마저 바닥나고, 그래서 아파트에서 쫓겨나고 집을 차압당하고 공장은 문을 닫고 … 답답한 상황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생각할수록 분노와 자괴감에 울화병이 생겨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날 판이다.
내가 아는 60대의 한 여성업주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기까지 당했다.
가족같이 지내던 친지가 몇 차례 급전이 필요하다고 해서 돈을 빌려주었는데 하루아침에 그가 종적을 감춰버렸다. 은퇴 후 자녀들에게 손 벌리기 싫어서 ‘안 먹고 안 쓰며’ 모은 돈을 송두리째 잃고 나니 그는 제정신이 아니더라고 했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 이자 욕심에 덜컥 큰돈을 빌려준 자신의 어리석음 … 분노로 머리가 터질듯 하더니 혈압이 치솟으면서 한쪽 눈의 혈관이 터져 거의 실명까지 했다. 끼니도 거른 채 하루 종일 그를 찾아 헤매고, 밤이면 수면제에 의지해 겨우 눈 붙이기를 계속하던 어느 날 그에게 벼락 치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러다가는 내가 죽겠구나”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는 마음을 정리했어요. ‘잊어버리자. 잊는 것만이 내가 살길이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달 초순 콜롬비아에서는 할리웃 영화 같은 포로구출 작전이 있었다. 정부군이 콜롬비아 무장 혁명군에 억류된 포로들을 감쪽같이 구출해 낸 사건이었다. 그때 풀려난 잉그리드 베탕쿠르 전 콜롬비아 대선 후보가 석방 일주일 후 기자회견을 했다.
6년 반 동안 정글 속에서 쇠사슬에 묶이고, 고문당하며 짐승 같은 세월을 보내고 난 직후였다. 영혼이 너덜너덜 찢겨나가는 고통과 치욕을 그는 수도 없이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우선 그 세월들을 잊고 싶다고 했다.
“영혼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 나는 먼저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잊어버리는 것과 용서하는 것입니다. 다 잊고, 다 용서하고 나면 그때는 기억을 되살려 (반군의 범죄행위들을) 증언해야 하겠지요”
우리의 기억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기억과 주관적인 감정의 기억이다. 우리가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것은 어떤 ‘사실’, 밤잠 못자도록 고통을 겪으면서도 잊지 못하는 것은 ‘감정’이다.
잊어야 할 것과 잊으면 안 되는 것을 가려내는 것은 삶의 중요한 기술이다. 실직하고, 파산하고, 사기 당하고… 일어난 사건의 내용 자체는 절대로 잊어서 안 될 것이다. 두 번 다시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한 분노나 자책, 억울함 등 감정은 가능한 한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망각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그 또한 우리의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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