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주필)
지난 1993년 영국의 BBC방송은 여론조사를 통해 지난 1세기 최고 탐험가로 마르코 폴로, 아문젠 같은 인물을 선정했다. 그 속에는 어니스트 섹클턴이라는 사람이 포함돼 있었다. 그는 얼핏보면 실패한 탐험가라고 할 수 있다.
1948년 27명의 대원을 데리고 남극대륙 횡단길에 나섰다가 배가 좌초돼 얼음덩이를 타고 표류하다 18개월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그에게 endurance’라는 배 이름대로 그가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견뎌내고 한 명의 부하도 잃지 않고 함께 귀환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얼음장을 넘을 때에 분명 누가 함께 하는 것과 같은 것을 느꼈다”고... 그것은 누구일까? 아마도 그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국민이나 그의 가족, 아니면 그를 평소 아끼던 주위에 많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호(號)는 자칫하면 넘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얼음판을 항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선장이 된 이명박 대통령은 이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고유가, 고물가 등 넘기기가 너무 버거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런 때에 만일 섹클턴과 같이
국민들의 염원이 묻어있다면 얼마든지 이 얼음산을 무사히 넘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염원을 얻는 길은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그들의 아픈 상처를 보듬고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진정한 리더쉽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강한 추진력과 생각으로 나라를 끌고 가는 것은 좋지만 함께 해야 할 국민들의 아픔과 연약함을 생각할 때 바로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신념이 리더쉽이 될 수는 있지만 그러나 국민들이 무엇을 요구하는가 하는 상황을 잘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내가 갖고 있는 신념의 포기나 좌절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민들이 왜 이렇게 촛불을 들고 왜 이처럼 격렬하게 시위를 하는가를 살피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은 자칫 극한 상황을 몰고 올 수 있다. 한 때 잦아들던 촛불시위가 폭력으로 변한 것은 쇠고기 고시 강행과 시위 강경대처 때문이 아닌가.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에 대해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진 염원밖에 없을 것이다.신념이 있는 지도자일수록 지도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의 지도력은 국민의 요구를 잘 알고 상황을 잘 파악하고 이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권위의 상실이 아니다.
진정한 리더는 또 타이밍을 읽을 줄 아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지금 극한대결 속에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단지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갈등이 모여 표출된 것이다. 이런 시기에 강제적으로 나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비전을 줄 수 있는 대통령이야 말로 진정한 리더이다. 비전이란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아닌 국민들을 보듬고 그들에게 옳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백성들과 더불어 가면서 물러설 때와 강행할 때를 잘 조절할 줄 아는 것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고시 강행을 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이해하고 정부의 행보를 한 발 물러서 지켜볼 때 극한 대결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촛불시위가 폭력으로 변질되면 폭력 없는 진정한 시위문화의 본래취지가 퇴색하게 된다. 촛불이란 자기가 타고 빛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촛불을 들고 외치면서 상대방만 타 들어가라고 외친다면 이것은 본래 촛불이 지닌 의미와 무관하다. 촛불을 들고 외칠 수밖에 없는 처지는 나름대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촛불이 우리를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처럼 우리가 자신에게 물어볼 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촛불은 단순히 시위용이 아니라 촛불이 탈 때 녹아내리는 만큼 빛이 나는 것이다.
그대는 진정 촛불의 의미를 아는가. 내 몸을 태워서 대한민국의 어둠을 밝힐 수 있는 그런 촛불시위야 말로 진정한 시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성은 신념의 신하’라는 말도 있다. 정부나 촛불연대 측은 이제 냉정하게 한발씩 물러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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