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에 한번 온다는 홍수가 왜 15년 만에 또 오는 거지요?”
아이오와 홍수를 소재로 한 시사만평에서 한 이재민이 던지는 질문이다.
1993년 대홍수로 한바탕 피해를 겪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데 또 다시 물난리가 났으니,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 ‘탄식’이다.
‘500년 표준형’ 대홍수로 미국의 중서부가 물바다가 되었다. ‘500년 형’ 홍수란 한해를 단위로 발생 확률이 500분의 1인 홍수. 500년에 한번 올까말까 한 홍수이다. 93년 홍수 피해자들은 필경 “내 생애 두 번 다시 이런 재난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했을 텐데 500년은커녕 100년도 아니고, 15년 만에 다시 ‘500년 형’ 홍수가 들이닥친 것이다.
아이오와, 일리노이, 미주리 등 3개주에서는 이번 주까지 24명이 사망하고, 106명이 부상했으며, 4만 명이 대피를 했다. 수십개 마을이 침수되고, 20여개 제방이 터지거나 범람했는데 추가로 20-30개 제방이 위태롭다고 한다.
홍수는 왜 발생하는가. 아주 간단하게 보면 두가지 조건 때문이다. 하늘에서 비가 너무 많이 오고, 땅에서 그걸 감당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50갤런 양동이에 100갤론의 물을 쏟아 부으면 물이 넘칠 수밖에 없는 이치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폭우가 잦을까. 현재 가장 지목받고 있는 원인은 지구온난화이다. 중서부가 물난리를 겪고 있던 지난 19일 연방기후변화 과학 프로그램이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50년간 지구 온난화가 북미대륙의 기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담은 포괄적 연구이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앞으로 극심한 기상 이변은 점점 심해질 전망이다. 예를 들어 20년에 한번 오던 폭염이 21세기 중반이면 3년에 한번 꼴로 오고, 20년에 한번 오던 폭우가 21세기말이면 5년마다 올 것이라고 한다. 한쪽에서는 불볕더위로 땅이 바작바작 타들어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홍수로 물에 잠기는 일이 빈발할 것인데, 그 원인은 인류 문명 발달의 후유증인 지구온난화라는 것이다.
그런데 폭우가 잦아도 대지가 물을 빨아들일 수 있다면 홍수의 위험은 줄어든다. 신비롭게도 대지는 천연의 흡수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역시 인간의 개발 욕심이 망쳐버렸다.
20세기 초반 만해도 미시시피 강 양안에는 수마일의 습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키 크고 억센 잡초들만 무성한 황무지였다. 광활한 그 땅의 효용성에 사람들이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1930년 즈음부터였다. 택지가 조성되고 건물이 들어서고, 농토로 탈바꿈하면서 지난 75년간 100만 에이커의 습지대가 사라졌다. 작은 주 하나만한 크기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땅은 가장 쓸모 있는 땅으로 개발돼 이윤을 창출해내고, 캄캄하던 미시시피의 야경은 2,300마일의 기나긴 문명의 불길이 되었다.
하지만 쓸모라곤 없어 보이는 것에도 중요한 쓸모가 있는 것이 자연의 신비이다. 태고 이래로 강변의 습지대는 폭우로 강이 넘칠 때마다 잡초들의 깊고 억센 뿌리로 물을 빨아들여 범람을 막는 역할을 했다. 이런 완충장치가 사라진 곳에 폭우가 쏟아지자 인위적 제방에 갇힌 강물이 성난 파도처럼 들끓으며 대홍수가 된 것이다. 자연이 절대 양보하지 않는 선, 그 경계를 못 본 결과이다.
우리 눈으로 모든 걸 다 볼 것 같아도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필요 없어 보이는 것들의 가치이다. 중국의 고서에는 ‘축록자불견산 확금자불견인(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이란 말이 있다.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하고 금을 움켜쥐려는 자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슴’이라는 목표, ‘금’이라는 성과에 너무 집착하면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 4개월 만에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슴’과 ‘금’만 쫓은 결과이다. ‘실용’을 내세우며 오만하고 조급하게 인사, 외교를 서두르다가 정작 국민 정서라는 산을 보지 못한 것이 오늘의 촛불 ‘홍수’를 몰고 왔다. 실용의 한계를 못 본 결과이다.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 당장은 별 이득이 될 것 같지 않은 것들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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