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시즌이 되면서 ‘자랑스런 졸업생들’이 화제에 오른다. 사춘기의 불안한 열정들을 잘 다스리며 착실하게 공부에 전념해 우수하게 고등학교를 마치는 학생들은 누가 봐도 대견하다.
딸이 그런 학생들 중의 하나인 한 엄마와 며칠 전 통화를 했다. 지금은 직장을 옮겼지만 몇 년 전까지 우리 신문사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였다. 교내 아시안 클럽 회장, 학력 10종 경기팀 주장 등을 맡았던 그의 딸은 수석 졸업생으로 이번에 졸업사를 맡았고, 가을이면 아이비리그 중의 하나인 유펜에 진학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그가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은 ‘딸 자랑’이 아니었다.
“고마운 선생님이 있었어요. 그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오늘의 딸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의 가족은 딸이 2학년 때 이민을 왔다. 갓 이민 온 부모 누구나 그렇듯이 그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매일 불안했다. 영어 한마디 못 하면서 수업을 어떻게 따라 갈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지민이는 잘 할 거예요. 걱정하지마세요’ 나는 그때부터 그 말 한마디에 의지해 아이를 긍정적으로 지켜보았어요”
1.5세 여교사의 확신에 찬 말 한마디가 엄마에게 힘이 되고, 그래서 힘을 얻은 엄마의 “넌 잘 할 수 있어. 분명히 잘 할 거야”라는 말 한마디가 딸에게 자신감을 준 결과라고 그는 해석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한다. 말의 위력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도 한다. 말에 어떤 신령한 힘이 실려 있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말을 가려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마음에도 없는 말, 해서는 안 될 말들이 수시로 튀어나온다.
불교의 수행 중에 묵언 수행이 있고, 가톨릭 수도원 중에도 침묵을 서약하는 수도원이 있는 것은 모두 말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석씨요람이라는 송나라 고서는 “재앙은 입을 좇아 생기기 마련이며 혀는 몸을 쪼개는 도끼”라고 가르쳤다. 말의 파괴적인 힘이 그만큼 강하다면 일으켜 세우는 힘도 그만큼 강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 ‘웃음 전도사’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있다. 한국 웃음연구소의 이요셉 소장이다. 사람도, 기업도 웃음이 있어야 건강해지고 성공한다는 것이 그의 웃음 철학이다. 방송에도 출연하고, 강사로도 초빙되며 그는 웃음으로 성공한 셈인데, 그 시작은 말 한마디였다.
그는 키가 작다. 후하게 잡아도 158cm이니 남자로서는 매우 작은 키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별명이 ‘난쟁이 똥자루’였고, 공부도 잘 못해서 항상 주눅 들어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에서 손뼉을 치며 신나게 웃고 있는 데 친구의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야, 그 웃음소리는 600만 불짜리다. 속을 다 후련하게 하는 구나!”
‘나도 잘 하는 게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이후 삶이 바뀌었다. 열등감을 벗어던지고 적극적인 생활태도를 갖게 된 것이었다. 결국 그는 ‘장기’인 웃음의 전문가가 되었다.
‘말 한마디’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예는 적지 않다. 19세기 초 런던에는 가난에 짓눌린 한 청년이 있었다. 해군 경리직원이었던 아버지가 돈을 함부로 써서 집안은 거덜 나고 아버지는 감옥에 갇히면서 청년은 12살 때부터 공장에 나가 일을 했다. 이후 변호사 사무실 사환, 법원 속기사 …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가난은 면할 길 없고 앞날은 암담했다. 작가가 되고 싶던 꿈을 거의 포기할 지경이었다.
그때 그에게 메모 한 장이 도착했다. 한 편집장이 그가 쓴 글을 보고 보낸 메모였다. “글에 대한 고료를 줄 수 없어 미안하지만 글이 참 좋다. 다른 글들도 보내 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청년에게는 한줄기 빛 같은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가 없었다면 영미문학은 ‘크리스마스 캐롤’‘올리버 트위스트’‘데이빗 코퍼필드’ 등의 보물을 구경할 수 없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청년은 찰스 디킨스였다.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말이 있고, 거꾸러뜨리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말이 있고, 있던 날개도 꺾어 버리는 말이 있다.
아버지날이다. “요즘은 아버지 노릇 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불평만 할 일이 아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비결은 어쩌면 간단하다. 진심 담긴 말 한마디가 마술을 부릴 수 있다. “넌 잘 할 수 있어. 난 널 믿는다”는 말 한마디.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