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돌이와 함께 하는 닭장차 타고 서울 투어~’
며칠 전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보다가 그 기상천외한 발상에 한참을 박장대소하게 만든 ‘촛불시위’ 관련 포스터 제목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건을 시작으로 지난달부터 연일 계속되는 촛불집회에 관한 보도들을 접하면서 80년대 초에 한국을 떠나온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위 양상에 내심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있던 차였다.
재기발랄한 구호와 노래가사들, 경쾌한 춤까지 곁들인 시위모습은 내 기억 속의 그 살벌하기 그지없던 시위 현장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어서 신기해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런 대박 포스터까지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일명 ‘닭장투어’. 요즘 네티즌들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신조어로 이미 위키백과에도 등록이 되어 있다. 한국 전투경찰의 운송차량인 동시에 시위대 연행을 겸하는 호송차량의 유리창이 철조망으로 덮여 있어 ‘닭장차’라 풍자한 데서 유래한 것이란다.
시위하다 연행된 ‘현행범’의 경우, 48시간 내에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못하면 귀가시켜야 한다는 규정이 있으므로 경찰서 연행 때 최고 48시간, 즉 무박이일 동안의 구금시간을 힘들어하지 말고 차라리 ‘잡혀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떳떳이 즐기자’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말이라 한다.
‘닭장 투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푹 빠져서 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지다 보니 경찰청 마스코트인 포돌이와 닭장차를 배경으로 한 이 포스터 외에도 “함께 해요, 닭장 투어”라며 신데렐라가 ‘닭장차’를 안내하는 합성사진 등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과거 시위대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닭장차’가 어느새 자진해서 올라타는 인심 좋은 ‘무료 관광버스’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다. 온갖 톡톡 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인터넷 이곳저곳을 도배하고 있었다. ‘숙식은 경찰청이 지원’하지만 식사의 질은 경찰서에 따라 다르다며 연행된 날짜에 따라 서로들 몇 ‘기’인지 따지는가 하면 선배 기수들은 다음 기수 여행객들을 위한 팁도 알차게 제공하고 있었다: 밤새 유치장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핸드폰은 필수이니 반드시 사전에 충전 여부를 확인할 것, 이 잊지 못할 순간들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도록 카메라 또한 필수품이라는 것, 서로 헤어지지 않고 같은 경찰서에서 ‘연행’을 즐기기 위해서는 연행 당시 줄을 잘서야 한다는 것 등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운 얘기들이 줄줄이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시위는 시위인지라 불행한 사고 기사들이 결국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닭장 투어’라는 말처럼 시위하다 “‘연행’되면 ‘여행’처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오기는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내 머리에서 쉬이 사라지지가 않았다.
현장을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모든 게 미디어와 현지 친구들을 통한 간접경험인 데다가, 내 머리에는 아직도 ‘닭장차’는 공포의 대상이란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고 반정부 시위하다 ‘연행’이 되면 인생 끝나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어서인가 보다. 하지만 ‘촛불시위’를 놓고 미디어마다 축제, 잔치, 야유회, 혹은 문화제라는 표현까지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시위문화가 완전 탈바꿈을 한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21년 전 6.10항쟁의 주인공들인 ‘넥타이 부대’가 떠오른다.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모든 투사들의 상징이라 여겨지는 이들이 오늘날 시민들이 참여하거나 아니면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시위나 집회가 적어도 공포 그 자체였던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 공신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08년 새로운 시위문화를 돋보이며 밝혔던 5, 6월의 ‘촛불바다’는 과연 어떤 의미로 기억될지 그 귀추가 주목이 된다. 부디 평화스럽고 잔치스러운 ‘촛불’이 물리적 충돌을 연상케 하는 ‘횃불’이 되어서 시위가 퇴보하는 일이 없기를, 이번 6월10일에 등장했던 일명 ‘컨테이너 산성’이 다시는 시내 한복판에 등장하는 일이 없기를, 가까운 시일 내에 모두들 안심하고 각자의 가정이나 일터로 그 촛불을 옮겨 밝힐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선윤
USC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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