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쁨’이란 바로 이런 거다. 아무나 누릴 수 있지만 누구나 누리긴 힘든 삶. 필라델피아에 가면 꼭 들르는 포토라인에서 황규일·켈리씨 부부가 사진을 찍었다.
▲펜실베니아 대학에는 ‘헤이 데이’(Hey Day)라는 오랜 전통이 있다. 대학 시절의 전성기 4학년이 되는 걸 축하하기 위해 선배들이 퍼붓는 음식물 세례다.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조앤 황씨.
황규일 목사 부부의 세 딸 그레이스·패트리샤·조앤
딸 셋이 모두 아이비리그 ‘유펜’(Univ. of Penn) 동문이다. 게다가 세 자매가 하나같이 장학생으로 졸업을 했고, 올해 학사모를 쓴 막내딸은 최우등상인 ‘수마 쿰 라데’(Suma Cum Laude)를 받았다. 이쯤 되면 ‘축복받은 가정’이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누구네 집 딸들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바로 발렌시아영락 교회 황규일 목사와 켈리 황 사모네 이야기다. 8년 넘게 펜실베니아대학 기숙사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는 황목사 부부와 세 딸, 변호사 시험 준비에 바쁜 맏딸 그레이스 황(03 졸업), 타임(TIME) 매거진의 어시스턴트 아트 디렉터인 둘째 딸 패트리샤 황(05 졸업), 스탠포드 교육대학원에 진학하는 막내딸 조앤 황(08 졸업)씨를 소개한다.
초·중·고도 동문 세 자매 모든 상 휩쓸어
대학들 장학생으로 졸업 주위 부러움 사
둘째는 빌 게이츠 밀레니엄 장학금까지
지난 달 막내딸 조앤의 펜실베니아 대학 졸업식을 위해 8년을 내 집처럼 드나는 캠퍼스에 온 가족이 모였다. 오른쪽부터 그레이스, 황규일 목사, 조앤, 켈리 황 사모, 패트리샤.
5월의 햇살이 눈부신 아침, 평온함이 느껴지는 발렌시아로 켈리 황씨를 만나러갔다. 마침 막내딸 조앤이 졸업식을 끝내고 스탠포드 대학원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 집에 다니러왔다고 했다.
이사 온지 20여년 만에 리모델링에 들어갔다는 발렌시아의 아담한 주택은 스물한 살이 된 조앤이 태어난 집이라고 한다. 당시 황 목사는 LA 영락교회로, 켈리 황씨는 할리웃에 있는 포토 랩으로 출퇴근하는 상황이었지만, 세 딸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동네가 좋을 것 같아 이들 부부는 발렌시아에 둥지를 틀었다.
막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일하랴 세 딸 뒷바라지하랴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았지만 이젠 가슴 속 깊이 충만한 ‘행복감’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켈리 황씨. 육체적으로는 너무 힘들었지만 젊어서 견뎌냈고, 그 때도 지금도 세 딸이 있어 언제나 기쁘고 행복하다고 거듭 말한다.
“조앤의 졸업식이 끝나면서 세 자매가 모두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같은 대학교를 졸업한 학교 동문이 됐어요. 발렌시아에서도 필라델피아에서도 우리 딸들은 ‘황 시스터즈’로 통하죠. 초중고 시절엔 세 딸이 상이라는 상을 모두 휩쓸어 동네 사람들에게 보기가 미안할 정도였지만, 장학생으로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하는 세 딸을 보면서 모두가 뿌듯해 했어요”
특히,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둘째 딸 패트리샤는 빌 게이츠 재단이 수여하는 게이츠 밀레니엄 장학금을 받았다. 대학원도, 박사과정도 학업을 계속하고 싶으면, 끊임없는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을 받고 학부를 마친 패트리샤는 지금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 ‘타임’의 어시스턴트 아트 디렉터이다.
졸업과 동시에 ‘인스타일’(InStyle)에 입사했고, ‘피플’(People)을 거쳐 현재 ‘타임’(TIME)지 아트 부서에 정착했다.
동네·학교서 ‘황시스터즈’로
초등학교부터 펜실베니아 대학교까지 학교 동문인 세 자매. 왼쪽부터 막내딸 조앤, 맏딸 그레이스, 둘째 딸 패트리샤.
최근 타임에 게재된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 스토리 레이아웃이 패트리샤의 작품이다. 해마다 게이츠 재단으로부터 대학원 진학 권유를 받지만, 지금은 어려서부터 꿈꾸어왔던 ‘타임’이 직장이기에 언니와 동생의 부러움을 받으면서도 ‘노’(No)를 고집한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을 다니며 학비 걱정 없이 원하면 언제든지 캠퍼스로 돌아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딸이다.
맏딸 그레이스는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을 거쳐 샌디에고 로스쿨을 졸업했다. 대학시절 경영학과 정치학을 복수전공 하느라 동생들보다 훨씬 치열한 삶을 살았고, 졸업 후 LA 다운타운 로펌에서 2년 정도 경험을 쌓으면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이제 겨우 시간적 여유가 생긴 황 목사 부부가 가끔 보는 김수현 드라마 ‘엄마는 뿔났다’의 큰 딸 영수의 성격이 그레이스를 떠올리게 한다고.
“엄마보다는 큰 언니가 더 무섭죠. 어려서부터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큰 언니가 대장이었어요. 애스터스쿨이 필요 없었죠. 우리 둘 다 모르는 건 큰 언니한테 물어보면 됐거든요.”
세 딸 모두 이들 부부에겐 귀하고 착한 딸이지만 막내 조앤은 남달리 신경을 기울인 딸이었다. 공부하고 책 읽는 것 밖에 모르는 조앤은 아들이었다면 운동선수가 됐을지도 모를 만큼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것. 수영을 가르치면 코치가 수영선수를 시켜야 한다고 했고, 스케이팅을 시켜도 마찬가지였다. 고교 시절엔 축구와 농구팀 주장을 도맡는 바람에 딸이 운동선수로 나갈까 봐 학교 코치들을 찾아가 “조앤은 그냥 공부만 했으면 좋겠다”고 팀에서 빼내온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도 조앤은 후배들 사이에 농구 코치로 유명하다. 밤 새워 공부하느라 피로가 쌓이면 농구 경기 한 판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었다고 한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열정이 넘쳐도 정신과 육체가 건강하지 않으면 제대로 발휘되질 않잖아요. 또, 언니들과 늘 서로에게 성경과 더불어 사는 생활을 강조하죠. 우리 셋은 어려서부터 함께 묵상(QT)을 해왔어요. 같이 살 때나 따로 떨어져 있을 때나 전화 혹은 이메일로 함께 큐티 타임을 행해 왔죠. 서로에게 배우고 느끼는 점도 많고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든든함도 있고요. 요즘은 언니 둘 다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들이 있어서 큐티 가족도 늘어날 것 같아요.”
켈리 황 사모가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누군가 딸들을 아름답게 키워주셔서 늘 감사할 따름”이라는 말, 조앤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렴풋이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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