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 수요일 자에 나오는 푸드 섹션에 ‘먹는장사 이렇게 하라’는 칼럼이 있다. 식당 운영에 성공한 젊은 사업가 이재호씨가 쓰는 칼럼이다. 며칠 전 칼럼에는 까다로운 손님을 어떻게 대할 지에 관한 그의 경험담이 소개되었다.
한창 바쁜 시간에 “이거 빼라, 저거 넣어라”며 까다롭게 주문하는 손님은 사실 귀찮은 법이다. 그 역시 어느 날 그런 손님의 주문을 거절했는데, 그러고 나니 내내 마음에 걸리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손님들의 개별적 주문을 소화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덕분에 까다로운 주문 잘 받아주는 식당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까다로워서 갈 데 없던 손님들이 모두 단골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칼럼을 읽으면서 식당 주인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다. 까다로운 손님은 차라리 오지 말았으면 싶은 심정과 귀찮은 주문이라도 성의껏 받아주는 자세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전자는 손님을 ‘숫자’로, 후자는 손님을 ‘사람’으로 보는 시각의 차이일 것이다. 손님이 샌드위치 한 개 값인 5달러나 10달러짜리로 보인다면 바쁜 시간에 복잡한 주문은 안 받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건강이나 기호 때문에 특정한 방식으로 음식을 먹으려는 손님의 마음을 배려한다면 좀 성가셔도 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손님들도 자신이 ‘5달러짜리’로 취급당하는 식당과 ‘사람’으로 대접받는 식당은 말 안 해도 안다. 발길은 후자로 향하기 마련이다.
오는 3일 사우스다코타와 몬태나 예비선거를 마지막으로 민주당의 긴 경선이 막을 내린다. 1월3일 아이오와 코커스로 경선 테이프를 끊었을 당시와 비교해보면 5개월이 지난 지금 민주당의 경선 풍경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야심 있고 능력 있는, 하지만 흑인 초선 상원의원에 불과했던 버락 오바마는 이제 민주당 대선 후보로 자리를 굳혔고, 선거 해보나마나 차기 대통령 감으로 당연시 되었던 힐러리 클린턴은 ‘왜 빨리 안 물러나느냐’고 민주당 안팎에서 구박받는 형편이 되었다.
두 후보의 처지가 어떻게 이렇게 뒤바뀌었을까. 다양한 분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유권자들을 보는 시각에 근본적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유권자들을 일인당 한 표의 ‘숫자’로 보느냐 ‘사람’으로 보느냐의 차이이다.
클린턴과 오바마 선거진영은 전혀 다른 접근방식으로 캠페인을 벌여왔다. 두 후보 자체가 성별, 인종, 경험, 나이 … 어느 면으로 보나 서로 다르듯이 캠페인을 진두지휘하는 수석 전략가들 역시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다. 클린턴의 캠페인 매니저인 마크 펜은 여론조사가 전문분야인 반면 오바마의 캠페인 매니저 데이빗 액슬로드는 광고가 전문분야이다.
여론조사란 숫자에 기초해 민심을 읽는 방법이다. 얼마나 많은 유권자들이 어디로 쏠리는 지 추이를 분석하고, 이슈에 따라 표가 모이고 떨어져나가는 변곡점에 초점을 맞추면서 정책을 만든다. 예를 들어 의료개혁안을 만든다면 인종, 성별, 나이 등에 따른 데이터를 분석, 유권자들의 몇 %가 지지할 모델을 만들어 내는 식이다. 많은 숫자가 최상의 가치를 갖는다.
클린턴 진영이 대의원 수가 많은 큰 주에만 총력을 기울이고 작은 주들에 무심했던 배경에는 이런 심리가 있었다. 큰 주만 휩쓸면 승리는 문제없다는 계산이었는데 오바마의 예상을 넘어선 선전, 그리고 승자 독식이 아니라 득표수에 따라 대의원을 나누는 민주당 경선 방식이 차질을 가져왔다. 선거결과의 책임을 느끼고 펜은 지난 4월초 사임했지만 캠페인 흐름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은 뒤였다.
반면 광고는 사람들의 마음에 초점을 맞춘다.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가려운 데가 어디인지 찾아내려고 애를 쓰는 것이 광고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다. 국민의 80%가 “미국이 잘못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현 시점에서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변화’이다. 오바마가 구름 잡는 이야기란 비난을 받으면서도 ‘변화’ ‘희망’ ‘단합’을 일관되게 내세우며 유권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것이 승리의 기반이 되었다.
고객이든 유권자든 사람에 초점을 맞춰야 사람이 모인다. 그들의 필요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 겸손한 자세이다. 마음을 얻으면 ‘숫자’는 저절로 해결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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