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쓰러진 소식은 미국사회에서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민주당의 거목인 그가 쓰러지고, 악성 뇌종양으로 진단받고, 전문가들이 종양의 성격과 수술의 난이도를 분석하는 소식들을 미디어는 시시각각으로 보도했다. ‘케네디’라는 이름, 수십년 진보진영의 지도자로 일해 온 업적이 주는 비중이다.
충격은 한인사회에서도 느껴졌다. 그 연배의 분들, 그의 소신 있고, 열정적이며, 진취적이던 모습을 지켜보았던, 그래서 일종의 동류의식을 가졌던 분들은 그가 쓰러진 소식을 남의 일로 여기지 못하는 듯했다.
“케네디가 쓰러졌어요. 나와 동갑인데…” 하며 심란해 하는 분도 있고, “(그런 소식을 들으면) 나도 언제 저렇게 될 까 하고 불안해 지지요”라며 걱정을 드러내는 분도 있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진리를 남을 통해 확인하고, 자신을 통해 절감하는 연령대에 서 있는 분들이다.
나이에 따라 관심이 변한다. 부자이건 가난하건, 배운 사람이건 못 배운 사람이건 나이만 비슷하면 모두를 아우르는 관심사가 연령대별로 있다. 서먹한 자리에서 누군가 첫마디를 꺼내면 갑자기 좌중에 활기를 돌게 하는 이슈이다. 대개 20대는 연애하고 결혼하는 이야기, 30대는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 40대는 사춘기 자녀로 속 터지는 일, 대학 보내는 일 등이다.
50대에 들어서면 ‘전 같지 않은 몸의 컨디션’이 슬슬 화제로 떠오르다가, 누가 무슨 병에 걸렸다더라, 쓰러졌다더라 … 식의 소식이 잦아지면서 건강문제가 보편적 관심사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어느 날 고혈압, 당뇨, 관절염, 심장병, 암 … 병이라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들면, 그때부터 삶의 질은 그 손님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식구와 근 30년 가족처럼 지내는 백인 친구가 있다. 며칠 전 60살 생일을 맞은 그는 50대를 암과 더불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9년 전립선암을 시작으로 방광암, 신장암을 거쳤고, 지난 2월 발병을 포함해 두 번 방광에 암이 재발했다.
존경스러운 것은 암이라는 불청객을 맞는 그의 태도이다. 운동하다 골절상 당한 정도로 담담하게 그는 암을 대한다. 암이 발견되면 치료받고, 또 암이 발견되면 또 치료받기를 반복해 왔다. ‘암에 또 걸리면 어쩌나’ 불안해하는 것도 없고, 몸에 좋거나 나쁘다고 음식을 가리는 것도 없고, 유난스럽게 운동에 매달리지도 않는다. 아무 일 없는 듯 묵묵히 그저 즐겁게 하루하루를 산다.
언젠가 “암이 두렵지 않으냐?” 고 물었더니 그는 말했다. “인생이란 항상 뭔가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 일이 생기면 해결하고, 또 일이 생기면 또 해결할 뿐이다. 앞으로 내 삶이 1년이 될 수도 있고 40년이 될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며 웃었다.
암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비결로 그는 자신의 신앙을 꼽았다. 마음이 편안하니 암세포들도 떼쓰지 않고 쉽게 물러나는 모양이다. 병 자체보다 병에 대한 걱정과 불안 등 정신적 스트레스가 사람을 짓눌러 치료가 어려운 경우는 많이 있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1974년 밥 애더라는 임상심리학자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조건반사의 지속기간을 알아보기 위해 그는 사카린 탄 물에 구역질 일으키는 약을 섞어 실험실 쥐들에게 먹였다. 단것을 먹으면 배가 아프다는 인식을 심어준 후 나중에 사카린 탄 물만 먹여도 쥐들이 복통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를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실험 2개월로 접어들면서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쥐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원인을 조사해보니 구역질 약에 면역력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이 있었다. 단맛을 본 쥐들은 반사적으로 복통을 일으킬 뿐 아니라 면역시스템까지 차단시키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었다. 이 실험은 마음이 면역력을 통제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정표적 연구로 기록되고 있다. 마음가짐에 따라 병은 낫기도 하고 깊어지기도 한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한두 가지 지병 없이 말년을 보내기는 어려워졌다. 병이라는 생의 마지막 손님과 상당기간 함께 지내야 할 운명이다. 개중에는 달래가며 같이 살아야 할 손님도 있고, 대접(치료)해서 내보내는 손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담담하게 병을 맞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 손님에게 지레 겁먹고 너무 휘둘리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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