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네티즌 한 사람이 ‘사랑밭 새벽편지’에 올린 글을 읽고 한참을 웃었다. ‘감자양’이라는 별명의 그가 인터넷 동호회 회원을 문상 가서 겪은 일이었다. 온라인으로 가깝게 지내면서도 서로 실명을 몰라 생긴 에피소드였다.
회원 몇 명과 병원 영안실에 도착하고 보니 우선 빈소를 찾을 수 없어 난처하더라고 했다. 온라인의 ‘산꼭대기’ 씨가 오프라인에서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를 몰랐던 것이었다. 전화를 걸어 이름을 알아낸 후에야 그들은 빈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다음 난처한 것은 방명록에 이름을 쓰는 문제였다. 실명을 쓰자니 상주가 모를 것이고 온라인 이름을 쓰자니 조의를 표하는 자리에는 영 맞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상주가 알아보는 이름이 낫겠다 싶어 ‘감자양’ ‘아무개’ ‘에헤라디야’ … 같은 이름들을 써내려 가는데, 안내석 청년은 민망한 표정이 역력했고 한 회원은 이름도 쓰지 않은 채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어리둥절해진 회원들이 모두 큰소리로 저승사자님 어디 가세요?하고 부르니 주변 분위기가 한순간에 썰렁해지더라고 했다.
인터넷이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두 가지 신분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현실 세계의 신분과 사이버 세계의 신분이다. 오프라인에서 ‘김수정’이 온라인에서는 ‘백설공주’로 사는 식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백설공주’는 ‘김수정’의 잠깐의 변신에 불과했는데 사이버 세계가 급속히 커지면서 ‘백설공주’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래서 사이버 세계의 일이나 관계들이 그 가상공간의 울타리를 넘어 현실의 세계에 현실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상적이기는 두 세계가 상호보완하며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평화로운 공존의 형태.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프라인의 모임을 가지면서 현실 세계의 친구로 발전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런데 ‘김수정’이 ‘백설공주’가 되는 순간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표변하는 데 문제가 있다. 평소 점잖던 사람들, 온순한 사람들이 사이버 세계로만 들어가면 거칠고 무책임하며 폭력적인 ‘어둠의 자식들’로 종종 변신을 하곤 한다.
신분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익명성, 그리고 가공할 속도의 파급효과로 인해 사이버 세계는 바람에 너무 약하다. 익명성을 방패로 한 어떤 무모한 적의, 무책임한 분노, 비겁한 악의가 한번 바람을 일으키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 일대 광풍을 일으키곤 한다.
그 바람이 현실 세계로 넘어오면서 한국에서는 몇몇 연예인들이 자살을 했고, 근거 없는 루머로 낯을 들 수 없는 피해자들이 생겨나며, 광우병 소동과 같은 사회적 대혼란이 일어난다. 누가 어디서 어떤 의도로 보내는 지도 모를 ‘정보’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흥분하는 것은 인터넷 시대가 아니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현상이다.
소문은 퍼져 나갈수록 생명력을 얻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 “그런 것 같더라”는 입에서 입을 거치는 동안 “그렇다”로 바뀌고, 그 사이 “설마?” 하던 반응은 단지 많은 사람들이 들어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사실로 굳어진다. 일종의 사회적 증거 법칙이다. 남의 말 퍼트리기 좋아하는 것이 사람들의 속성이고 보면 인터넷만큼 유용한 도구도 없다.
미국이라고 인터넷 소문·괴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가장 눈에 띄는 괴담은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 대한 비방. 오바마는 이슬람교도이자 인종차별주의자로 전 세계에 이슬람 성전을 벌이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는 데 이 더러운 비밀을 미국의 미디어들이 숨기고 있으니 가능한 한 널리 알리라는 내용이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몇 년 전에는 빌 게이츠가 돈을 나눠 준다는 이메일이 한바탕 돈 적도 있었다. “마이크로 소프트와 AOL이 합병을 준비하면서 이메일 추적 시스템을 시험 중이다. 메일을 받는 즉시 친지들에게 보내면 나중에 추적해서 수고비를 지급한다”는 내용인데 물론 거짓말이었다. 메일이 너무 퍼져 나가서 나중에는 빌 게이츠가 직접 ‘사실이 아니다’는 해명을 해야 할 정도였다.
사이버 세계를 무시하고는 살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사이버 세계의 시민들이 어서 성숙해져야 하겠다. 남이 내게 해주기를 바라듯 모두 그렇게만 한다면 사이버 세계에서도 바람 잘 날이 올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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