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문을 열면 찰 고무줄로 칭칭 감은 두툼한 복권용지가 문 앞에 떨어져 있다. 강씨가 늦게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넣은 것이다. 고무줄을 풀면 복권용지 한 가운데 100달러가 들어있다.
나는 손님 맞을 준비를 다 끝낸 뒤에 강씨의 복권을 뽑기 시작한다. 강씨가 하는 것은 팬타시 5(Fantasy 5)다. 한번은 왜 그것만 하느냐고 물었더니 하룻밤 사이에 결과를 알 수 있고 또 매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오래전에 그는 그 게임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작은 대박을 터트렸다. 그 때의 대박으로 그는 마켓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럭저럭 미국 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20여 년 전 일이었다. 뜻밖에 생긴 돈으로 연 마켓이어서 그랬을까? 장사가 부진했고 마켓을 사고팔고 하면서 알게 모르게 마켓 규모가 줄어들었다.
강씨는 이스트 LA에 있던 작은 마켓을 팔고 이곳, 나의 마켓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햄버거 가게를 열었을 때 다시 한 번 대박을 꿈꾸기 시작했다. 하루의 매상이 얼마가 되던 상관하지 않았다. 무조건 하루에 100달러씩 팬타시 5를 사기 시작했다. 그것이 벌써 일 년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강씨의 복권을 뽑아 찰 고무줄로 동여매고는 서랍 속 깊이 넣어둔다. 오후 2,3시쯤 그는 길을 건너오리라.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대로를 건너 어슬렁 마켓 안으로 들어오리라. 햄버거 가게를 혼자 지키고 있는 아내 몰래 그는 복권을 가져가리라. 다시 한 번 더 대박을 꿈꾸면서. 내일은, 두 번 다시 길을 건너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강씨의 복권은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다. 맞아도 고만 안 맞아도 고만이 아니다. 강씨의 복권은 절박함이 배어있다. 강씨의 생명이 걸려있다.
저 작은 햄버거 가게에서 종업원도 없이 부부 둘이서 하루 종일 밤늦도록 햄버거를 팔면 순 이익금이 100달러가 남을까? 200달러는 넘을까? 글쎄? 그 금액에서 매일 아내 몰래 100달러를 꺼내 팬타시 5에 목숨을 거는 그를 바라보는 일은 여간 괴롭고 힘든 일이 아니다.
오후가 조금 지나 햄버거를 사러 간다. 강씨의 아내가 반가이 맞는다. 햄버거를 내주면서 한숨을 폭 내쉰다. 장사가 갈수록 힘이 든단다. 열심히 하는데 이상하게도 돈이 모이지를 않는다고 여간 낙담하는 모습이 아니다. 강씨는 못들은 척 딴 짓을 하고 있다. 나는 강씨 아내의 말을 들을 때마다 괜히 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강씨와 언약한 바가 있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사람의 도리라면 그의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 주어야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은데 강씨를 생각하면 또 그게 아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집은 평지풍파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강씨가 복권에 목숨 거는 일이 멈추어지기만 한다면 다행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게 아니다.
강씨는 햄버거 가게를 말아먹고 집을 팔아먹어도 복권을 살 것이다.
그가 오늘 산 복권이 내일 아침에 맞아서 다시 한 번 더 대박이 터진다면 햄버거 가게도 유지될 것이고 집도 유지될 것이고 부부 사이도 더 좋아질 것이다.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것을 괜히 내가 말을 해가지고는 대박이 터지기도 전에 강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강씨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나한테 복권을 맡기면서 신신당부를 한 것이리라. 햄버거를 사들고 오다가 길 건너 저 멀리 강씨네를 바라본다. 굴뚝으로 나오는 연기 줄기가 오늘따라 더 가늘고 희다. 하루 종일 펑펑 연기가 치솟아 올라야하는데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연기가 묽다. 그것을 바라보노라면 햄버거 가게는 금방이라도 쓸어질듯 위태롭게 서 있고 마음은 괜시리 아려온다. 어서 빨리 대박이 터지든지 아니면 강씨의 복권 사는 일이 끝나던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햄버거를 한 입 깨물고 있는데 복권에 미친 흑인 여자가 복권을 흔들며 마켓으로 달려 들어온다. 길거리에서 동냥해서 받은 돈을 모두 복권 사는데 쓰는 여자다.
대박이 터졌다고 큰 소리로 웃고 난리다. 그녀가 팬타시 5를 꺼내든다. 오호, 정말 대박이 터졌다. 470달러가 맞았다. 나는 돈을 꺼내주면서 다시 강씨네를 본다.
이왕지사 이제쯤은 강씨에게도 대박이 터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
이윤홍
시인·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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