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라는 항구를 떠나 대학이란 바다로”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핵심 가치로 선택하고 결정짓는다. 이 결정과 선택의 체험이 모자이크처럼 엮어진 것이 우리의 인생. 지금 고교 시니어들은 중대한 선택 하나를 마쳤다. 전공과목, 재정보조 패키지, 졸업 후 취직률, 장래에 미칠 영향, 집안 사정 등을 꼼꼼히 종합 분석한 다음 한 대학을 골라 등록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이제 부모는 더 이상 이들을 따라 다닐 수가 없다.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찾아 떠나가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내려놓음과 선택의 기로에서 한층 성숙해진 시니어 3명을 만나봤다. 돛을 달고 큰 바다로 나갈 이들로부터 대학선택과정과 앞으로의 희망과 고교생활의 회상 등을 들어봤다.
“새벽까지 공부·주말엔 화끈하게 놀아”
■클라라 윤(17)
윤양은 최근 “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팔로스버디스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성장하였다 “라고 시작하는 책을 한권 냈다.
책 제목은 ‘PV고교와 함께 한 여행’(A Journey with Palos Verdes High School). 한글과 영어로 된 총 77페이지짜리 소책자인 이 책에서 윤양은 이중문화권에서 학교생활과 과외활동을 통해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윤양은 자신의 다양했던 경험이 미국에서 고교를 시작하려는 ‘한인동생’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됐으면 한다고 말한다.
윤양의 고교생활 경험담을 담은 책자를 봐도 또 8X11 종이 2장을 빼곡히 채우는 그녀의 이력 및 경력을 봐도 윤양은 평범한 고교생은 아니다. 그는 4년간 팔로스버디스 하이스쿨의 학생회 활동을 해왔고 시니어인 지금은 이 학교의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다. 학교 승마팀의 캡틴이며 아시아 아메리카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하고 있다.
이외에 몇 개 의 클럽회장을 더 맡고 있으며 자원봉사,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홈커밍에서는 퀸으로 뽑히는가 하면 100여명이 출전하는 ‘미스틴 캘리포니아’에 유일한 아시안으로 참가, 최종 선발 5명 안에 들어 커뮤니티 서비스상과 인터뷰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주니어가 끝난 작년 여름방학 때는 비행기를 5번이나 갈아타며 목사님 한 분과 함께 단둘이 아프리카 선교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윤양은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바쳤던 학생회 활동을 통해 계획, 준비, 진행 등에 대한 일처리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선생님과 또래 학생들과의 관계 및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또 노숙자 봉사활동, 바다 쓰레기 치우기, 아프리카 여행 등을 통해서는 “다른 사람과 환경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으며 그들이 절대로 나하고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닌, 마음과 힘과 용기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한 인간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새벽까지 공부하고 활동도 많이 하는 그이지만 주말만은 따로 떼내어 영화도 보고 미술관, 박물관, 음식점도 돌아다니고 댄스파티도 참석하면서 놀았기 때문에 후회되는 점은 별로 없다는 윤양은 호텔경영학이나 MBA, 퍼블릭 릴레이션 등 사람들과 어울려서 일할 수 있는 학문 쪽으로 전공의 가닥을 잡아놓고 있다. 코넬, 웨슬리 등 오라는 곳은 많지만 윤양은 7,000달러의 장학금을 확보해 놓은 버클리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다.
“공부하며 한 주에 10시간씩 그림 그려”
■제시카 글로리 김(17)
다이아몬드바 하이스쿨 시니어인 김양은 올 가을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 진학할 예정이다. 어렸을 때부터 세라믹 등 뭔가를 손으로 만드는 것을 즐겨했던 그는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있는 전공을 택하라”는 부모의 조언을 받아들여 고교에 입학한 9학년 중반부터 아트 스튜디오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출생, 6년 전인 11세 때 미국에 온 김양은 한국어, 스패니시, 영어를 구사하는 ‘트라이링궐’이다.
남동생이 중증 자폐아이기 때문에 부모가 동생에게 매달리느라 미처 자신에게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어서 자신은 혼자 학업공부도 열심히 하며 일주일에 10시간씩 시간을 쪼개어 그림공부를 별도로 했다고. 김양은 이에 대해 “그림공부하는 아트 스튜디오가 세리토스에 있는데 다이아몬드바에서 매주일 3번씩 3년이나 운전해 준 부모님께 감사한다”는 성숙한 고백을 하고 있다.
또 그는 RISD는 연간 학비만 3만5,000달러에 기숙사비 1만여 달러에 한달 용돈 300~400여달러가 드는 데다가 미술 재료비만도 한 달에 1,000여 달러씩이 필요한 ‘비싼 학교’인데 이를 선뜻 지원해 준다고 한 부모님이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오티스, USC 등 여러 사립 및 주립대학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김양이 RISD를 택한 것은 이 학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이후이다.
이 학교는 3,350명이 지원했는데 합격증을 받아든 학생은 400명인 순수 아트 스쿨이다. 김양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오는 가을에 입학하면 일단 모든 분야를 시도해 본 다음 내년 3월에나 자신의 전공을 정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학교에서 주고 있다는 점이다. 김양은 무대디자인을 전공하고 싶어하는데 아트분야는 물론 건축디자인에서도 공대 수준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만만하지 않은 분야이다.
그래도 김양은 집에서 멀고 학비도 부담이 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이 학교를 최종 택했다며 졸업 후 취직률이 97%이고 평균 초봉은 4만5,000달러부터 시작하지만 능력에 따라 경험이 쌓이면 대우가 천차만별이라고 덧붙였다. 비록 미대에 가지만 공부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림 외에 다른 특별 활동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그는 일주일에 한번씩 ‘서클 오브 프랜드’에서 자폐아들 그림공부 지도로 자원봉사를 했다.
“여학생 2명과 ‘스터디 버디’ 큰 효과”
■대니얼 김(18)
“좋은 대학 가기 위해 꼭 스트레이트 A 안 맞아도 됩니다” 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김군은 토랜스 사우스 하이 12학년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재목이다. 화학, 생물, 물리 등 어려운 과학과목을 모두 AP로 끝내고 수학도 미적분 BC까지 끝낸 것을 보면 김군은 고교생이 들을 수 있는 가장 어려운 과목은 모두 들은 셈이다. 거기에다가 테니스, 클라리넷을 했고 키클럽, YMCA산하 ‘청소년과 정부’라는 클럽에서 활동했고 병원, 교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등 분주한 고교생활을 보냈음이 확실하다.
그런데도 김군은 가장 기억에 남고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던 부분으로 ‘스터디 버디’를 꼽고 있다. 그것도 특이한 것이 자주 3명이서 새벽 2~3시까지 공부하곤 했는데 김군을 제외한 2명이 같은 학교 동급생 한인 여학생이었다는 것. 처음 한동안은 김군의 집에서 시작하다가 다음에는 여학생들 집에서 공부하곤 했다는데 물론 새벽에 자녀를 픽업해야 하는 부모들의 동의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 여기에 대해 김군은 어떤 때는 아예 잠옷을 입고 와서 새벽까지 공부하다가 한 집에서 자고 바로 학교로 간 적도 있다고 들려준다.
또 자신들은 순수한 공부친구였고 이성친구는 따로 있을 정도로 순수하게 공부만을 위해 뭉친 그룹이었는데 모두 열심히 공부했고, 나름대로 또래의 인생문제도 진지하게 토론했고 각자 원하는 대학으로 따로 따로 진로를 결정했다고 들려준다. 들을수록 재미있는 얘기이다. 김군은 1만여달러의 장학금을 받고 올 가을 버클리로 진학하게 된다. 생화학을 전공한 후 의대에 진학할 꿈을 갖고 있다.
김군은 “남들보다 특별히 더 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더 잘한 것도 없고요. 튜더도 하기 싫어서 그냥 혼자 공부하거나 스터디 버디와 함께 한 것 뿐” 이라면서 “어릴 때는 부모의 조언으로 의사가 되려했지만 청소년기의 방황과 봉사활동을 거쳐 남을 돕고 싶어 의사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굳혔고 이를 에세이에 풀어 쓴 것이 사정관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그는 버클리로 진학하자마자 동아리 그룹에서 활동하며 새 친구를 많이 사귀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석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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