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열리는 동아시아학 분야 사서 및 학자들의 모임이 올해는 애틀랜타에서 개최돼 얼마 전 일주일가량 다녀왔다. 물론 이런 모임의 주목적은 학회를 통한 정보 전달 및 교환이겠지만 나는 그 진정한 묘미를 주로 다른 곳에서 느끼고 돌아온다. 같은 분야에 종사하며 그 애환을 같이하기에 마냥 반갑기만 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묵은 얘기들을 쏟아내는 재미, 그러는 사이 얻어지는 귀중한 뒷(?)정보들이야 말로 쏠쏠한 재미거리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시와 그 도시안의 사람들을 살피며 그 신선한 정취를 만끽하는 일 또한 매번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 ‘사람만나기’와 ‘구경하기’에 흠뻑 취하기 위해서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즉시 ‘잿밥’을 위한 준비 작업에 바삐 움직여야만 한다. 이미 빼곡한 미팅스케줄 사이사이에 미리 준비해오거나 혹은 호텔에서 얻은 그 도시의 구경거리, 먹을거리에 사람들을 엮어가며 이리저리 꿰맞추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미팅주제보다 ‘잿밥’에 더 흥분해서 말이다. 더군다나 애틀랜타는 이번이 난생 처음이었으니 그 빵빵한 기대감에 ‘할 거리’의 리스트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올해는 사람만나는 일에선 그런대로 소득이 있었지만 구경거리는 기대만 요란했을 뿐 겨우 ‘CNN 투어’ 밖에는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서야했던 유일한 구경거리치고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다행히 한가지 확실한 기억거리를 제공해주었다.
다름 아닌 ‘동물원 원숭이’를 연상케 하는 CNN 직원들의 일터 공개였다. 현장을 직접 공개함으로써 뉴스가 방송되는 과정을 한눈에, 그것도 현장감 있게 보여주고자 하는 방송국 측의 의도는 확실히 효과를 거둔 듯 했다. 뻥 뚫린 넓다란 오피스위에 삥 둘려진 유리창 아래로 여러 부서에서 어떻게들 방송을 위해 움직이는지 관광객들이 흥미진진하게 ‘구경’을 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니 말이다.
이미 익숙해진 듯 전혀 개의치 않아 보이는 직원들 역시 방송국 측과 한 마음 한뜻 일까? ‘방송’이라는 진기한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니면 짭짤한 관광수입을 위해서 기꺼이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 관광객들의 ‘원숭이’가 되고 있는 것일지 그 마음들이 궁금했다.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았나 보다. 어느 날 오피스에 앉아서 갑자기 내 머리위로 구경꾼들이 온종일 진을 치고 있는 상상을 해보게 된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미 우리 생활의 대부분, 특히 일터는 더 이상 나만의 공간이 아님을 잊고 지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 곳곳에 CCTV가 장착되어 있을 거고 직장 컴퓨터는 마음만 먹으면 모니터링이 가능할 것이니 말이다. 그뿐인가 카메라 폰, 화상통신, 위치 추적 등 우리가 개발해 가고 있는 최신 테크놀로지들은 점점 더 우리들의 노출을 용이하게 할 것이다. 속속들이 기록까지 남겨가면서 말이다. 유리창과는 비교도 안되는 노출, 감시 시스템인 것이다.
이처럼 갈수록 영악(?)해져만 가는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편리하게 사용하면서도 한편으론 혹시나 우리 스스로를 옭아매는 엄청난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나 간혹 염려스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유리집의 구경거리’가 되는 상상을 하는 동안 이 ‘괴물’에 대한 걱정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구경하는 내가 오히려 어색할 정도로 ‘원숭이’ 역할에 너무도 익숙하고 편안해 보이는 CNN직원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에도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으니 이 무작위 노출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그리고 뚤뚤 감았던 포장지를 뜯어 버릴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흐트러진 모습에 ‘배 째라’ 당당해 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이고 말이다. 그래 원숭이래도, 구경거리래도 상관없는 담담한 자유인이 된 듯싶었다.
요즈음 한국 TV 프로그램에서도 엉망으로 망가진 연예인들의 모습이 그대로 방영되면서 시청자들로부터 대단한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물론 색다른 모습이라 인기이기도 하겠지만 너도 나도 있는 그대로가 정겹고 편안해서가 아닐까 싶다. 문득 그 속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특히 근래 ‘말거리’의 주인공인 몇몇 정치인들이 잠깐이나마 그 가면을 벗어던지고 우리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속이 후련할까, 정말 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엉뚱한 상상만으로도 오늘은 잠시 즐거울 수 있을 것 같다.
김선윤
USC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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