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문명의 이기를 들라면 단연 TV이다. TV는 우리의 의식과 습관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 무수한 시간을 TV 앞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 현대인들의 보편적 모습이다.
“TV의 영향은 너무나 광범해 이것을 측정하겠다는 것은 마치 물고기에게 미친 물의 영향을 측정하는 것과 같다”는 어느 학자의 지적이 실감난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듯 우리 또한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 TV의 영향 속에서 숨 쉬고 생활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TV가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 네모 상자가 가정을 한층 화목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예상했다. TV 앞에 단란하게 모여 앉아 있는 가족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이런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실제로 나타난 현상은 정반대였다.
거실 공간에 TV 소음이 들어차면서 가족 간의 대화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한 집에 TV가 2~3대 될 정도로 보급이 확대되면서 리모콘 쟁탈전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가족 간의 고립은 한층 더 심화됐다. 이제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기의 TV를 소유한 채 화면에 몰입한다. 공간의 거리가 멀어졌을 뿐 아니라 서로 다른 프로그램에 탐닉하면서 의식의 거리 또한 더욱 벌어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TV의 영향력이 사람들의 의식을 점차 표준화시킬 정도로 거대화 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침 출근길 FM방송 DJ들의 단골 이야기 소재는 전날 밤 TV에 방영된 화제의 프로그램들이다. DJ들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대화 주제도 TV가 던져 주는 것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TV를 멀리하면 대화에 끼어들기 힘들 정도이다.
TV를 흔히 ‘바보상자’라고 하는데 이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말이다. 책을 읽을 때 우리 뇌는 능동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TV를 볼 때는 뇌가 책을 읽을 때와는 달리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능동보다는 수동이 항상 마음 편하고 손쉬운 법. 그래서 사람들은 책 읽기보다 TV 보기에 더 쉽게 빠져든다. TV를 보면서 수많은 단편적 지식은 얻을 수 있지만 능동적 성찰의 결과인 지혜는 얻을 수 없다.
TV가 가족 간의 대화 단절과 비만 등 가정적·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각성이 일어나면서 TV를 치워 버리는 가정들이 점차 늘고 있다. 한인가정상담소 피터 장 소장도 2년 전 집에서 TV를 없애 버렸다. 초등학생에 다니는 1남2녀를 두고 있는 장 소장은 접시 TV를 설치한 후 아이들이 TV 화면에 빠지자 가족회의를 열고 TV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이 TV 앞에 앉는 시간이 늘면서 조금씩 대화 시간이 줄더군요.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면 습관을 되돌리기 힘들겠다 싶어 결단을 내렸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이해하고 잘 따라 줬어요.”
TV를 치운 자리에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책장을 대신 들여 놓았다. TV를 없앤 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자녀들과 대화 시간이 늘어난 것은 물론 산책과 자전거타기 등을 통해 자녀들과의 유대감도 훨씬 짙어졌다. 아이들이 독서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은 물론이다. 장 소장은 지금까지 자녀 양육과 관련해 내린 많은 결정들 가운데 TV 치운 것을 가장 잘한 일로 여긴다.
이번 주(21~27일)는 ‘전국 TV 끄기 주간’이다. 민간단체들이 주도가 돼 벌이는 TV 끄기 주간은 일시적으로나마 TV 플러그를 뽑음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TV에 길들여져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 TV 소음이 차지했던 공간을 가족 레크리에이션과 대화로 한번 채워보자는 취지의 캠페인이다.
TV의 영향을 부정적으로만 본다면 TV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일이다. 무료함을 달래 주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빨리 전달해 주는데 이만한 매체도 없으니 말이다. 어느 누구도 TV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문제는 정도이다.
“TV를 갖느냐 치우느냐”(TV or no TV) 하는 문제가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는 햄릿의 실존론적 고민처럼 절박하게 다가온다면 삶과 TV 간의 밸런스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는 징후이다. 이런 성찰을 위해 단식하듯 가끔씩 TV 플러그를 뽑아 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전기제품 사용을 거부하며 자급자족의 생활을 꾸려가는 미국인들이 만드는 잡지 ‘플레인’에 실린 기고 가운데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플러그를 뽑는다는 것은 내 마음을 채우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은 통제력을 가진다는 뜻이며 침묵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건 그렇고 캠페인 취지에 공감해 이번 주 TV를 끄자니 NBA 플레이오프가 유혹으로 다가온다. 침묵의 편안함은 역시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닌 모양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