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종업원 호세가 차를 샀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쪼개고 쪼개어 모은 돈으로 산 것이다. 하루에 한 갑 태우던 담배도 1/3로 줄이고 퇴근길에 사들고 가던 캔 맥주 24온스 버드라잇을 16온스 킹코브라로 바꾸며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차를 샀다.
우리 마켓 뒤 파킹랏에서 2,800달러를 주고 이웃이 몰고 다니던 기아를 사던 날, 미국으로 와서 이렇게 신나는 날은 처음이라며 한껏 기분이 붕- 들뜬 호세가 예쁜 나이 어린 아내를 태우고는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자기가 일하고 있는 우리 마켓 앞으로도 세 번이나 지나가며 손을 흔들었다.
차를 몰다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차를 세우고는 차 산 이야기를 하고 차 안을 보여주고 시승을 시켜주기도 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하나는 이루었다고, 이제는 집만 장만하면 된다고 흥분하던 것이 일 년 전이다.
그 차가 도로 옆에 박혀 있다. 박혀도 푹 박혀 움직이지를 않는다. 그 차가 움직이는 날은 일주일에 딱 한 번, 거리 청소하는 날이다. 그 청소차가 지나가기 바로 직전 호세는 마켓에서 나와 거금을 주고 산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우리 마켓 뒤 파킹랏으로 옮겨 놓는다. 청소차가 지나가면 다시 길가에 세워 놓는다.
그 차가 호세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전에는 여러 명이 서로 개솔린 값을 나누어 호세 차를 타고 여기도 돌아다니고 저기도 돌아다니고 했는데 그 쪼개어 나누는 개스비도 아까워서 지금은 아예 모두들 차보다는 발품을 팔고 있다. 그 동네 많은 사람들이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있다. 그곳에서 수피어리어 마켓을 걸어갔다 오려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어 다닌다. 대부분 여럿이 어울려서 장을 보러 다니니 심심하지는 않겠지만 혼자 갔다 오는 여자도 많다.
들어오지 말라는 파리만 들락날락하는 문가에 서 있다가 양 손에 물건이 가득 담긴 플래스틱 봉지를 여러 개씩 들고 길을 걸어오는 그들을 보노라면 안쓰럽기도 하고 코앞에 있는 마켓을 놓아두고 멀리까지 갔다 오는 그들에게 괜히 부아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싼 곳을 찾아 천리 길도 마다않는 그들을. 그래도 그들이 있기에 우리 마켓이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 것을.
길 건너 아파트 양쪽 도로뿐만이 아니라 그 뒷골목 그리고 우리 마켓 길에도 언제부터인지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차들이 움직이는 것은 호세 차와 마찬가지로 청소차가 오는 날 뿐이다. 그 날은 우리 마켓 뒤 파킹랏이 몹시 분주하다. 차 주인들이 모두 마켓 안으로 들어와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청소차가 지나갈 때까지만 잠시 차를 세워두게 해달라고 사정을 한다. 다행히 파킹랏이 넓어 여러 대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그래도 어떤 때는 더 많은 차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자리만 있으면 갖다 세워놓는다.
길 건너 아파트 더 뒤쪽으로는 공터가 있는데 그 공터 철조망을 끼고 서 있는 차들은 아예 움직이지를 않는다. 그 차들의 창문은 고지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따금 지나가며 그 차들을 보노라면 어제는 바퀴가 없어지고 오늘은 창문이 없어지고 내일은 의자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분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차에도 이따금 새 고지서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자동차보다도 고지서가 더 신기하게 보여진다.
내가 호세의 차를 팔아주려고 길 건너 한 블럭 떨어진 곳에서 햄버거 가게를 하고 있는 K씨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갖고 있던 차를 며칠 전에 팔고 버스와 전철을 이용한다고 한다. 시간은 걸리지만 두 시간 더 투자하여 개스 값을 절약하는 것이 가게에 무척 도움이 된다고 한다.
K씨의 햄버거 가게도 장사가 안 되는 모양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뭉개 뭉개 쏟아져 나와야하는데 날이 갈수록 연기가 가늘어진다. 연기가 가늘어질수록 K씨가 아내 몰래 던지고 가는 복권 뭉치가 점점 더 커진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복권에 매어 달리나보다. 복권 사는 사람들은 날마다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호세의 차를 사려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똥값에 버릴 수도 없는 일. 아메리칸 드림이 아메리칸 악몽이 되었다고 호세가 고기를 자르다말고 한숨을 푸욱 내쉰다.
문 닫을 시간은 되어 가는데 호세가 내쉬는 한숨으로 정육부 쪽이 뿌옇기만 하다.
이윤홍
시인·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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