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스피처 뉴욕 주지사가 매춘행위로 결국 사임하였다. 뉴욕에서 주지사의 도중 하차는 35년만에 처음 생긴 일이라고 한다. 미국 뿐이 아니라 전세계에 충격적인 뉴스가 되었다. 부인과 세 딸이 있는 주지사의 간음은 높은 지식과 최고의 명예를 무색하게 하는 인간의 약함을 또 한 번 드러
낸 사건이었다. 인류학자 제이 언윈은 “인류가 걸어온 88개 문명의 흥망사에 공통점이 있는데 문명이 일어날 때는 성 도덕이 건전했고 문명이 쇠퇴하는 시대에는 성 도덕이 문란했다”고 지적하였다.
며칠 전 뉴욕타임스는 가공할 기사를 보도하였다. 미국 틴에이저 소녀(14세~19세)의 25%가 성병을 가지고 있고 흑인 소녀의 50%가 성병 보균자라는 것이다. 아동의 10%가 13세에 섹스의 경험이 있고 틴에이저의 10%가 해마다 임신하며 대학생의 66%가 혼전 정사를 체험하고 있는 미국의 성 문제는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를 넘어 문명에 관계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10년 전 미국에서 ‘순결서약’이라는 것이 대학생 사이에 유행되었다. 혼전 성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으로 큰 운동이 되는가 싶었더니 겨우 1년 쯤 뒤에 시들해졌다. 혼전 성행위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미국의 경우 미혼자의 37%인데 유럽에 비하면 높은 편이라고 한다. 한국
도 경제력이 있는 남자들이 소실이나 내연의 여인을 두는 것을 예사롭게 생각한 시절이 그리 먼 옛날이야기는 아니다.
성경에도 첩을 둔 인물이 많고 간음의 사례들이 노골적으로 밝혀져 있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 퍼지면서 간음을 죄로 지적했기 때문에 유난히 정결을 주장하는 새 종교로 받아지고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특색으로 간주되었다. 지금 우리는 성행위가 가장 자유스런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간음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빌 에이모스 교수 팀은 물개 새끼들을 유전학에 근거하고 조사해 왔는데 상당히 많은 수가 같은 부모의 태생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수 천 마리가 운집해서 사는 물개 세계에서 어떻게 해마다 같은 숫놈의 씨를 받고 있을까? 해마다 자기의 짝을 찾아서 정을 통했다는 이야기인데 정말 믿기 어려운 물개 아내의 충성심이다. 수컷 물개는 방랑벽이 심하다고 한다. 아내와 새끼들 곁에 있지 않는다. 그런 남자를 기어이 찾아내어 정을 통하는 물개 아내야말로 21세기 열녀문 감이다.
한 아주머니가 “실수로 낳은 딸년이어요” 하고 예사롭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피임과정의 실수라는 뜻이겠지만 탄생된 생명을 놓고 ‘실수’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성행위는 임신의 수단 뿐이 아니라 쾌락의 방법, 사랑의 표현, 심지어는 부부간의 의무감 등 복잡한 동기들이 깔려있기 때문에 동물적인 본능을 넘어선 도덕성이나 사랑의 윤리가 문제될 수 밖에 없다.
‘맥콜’지는 여성을 상대로 “성행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61%가 ‘가깝다는 느낌’에 체크하였다. ‘플레이보이’지도 같은 질문을 남성들에게 물었는데 역시 비슷한 결과였다. 가깝다는 느낌이란 마음의 결합을 뜻한다. 그것이 아마도 성행위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음과 마음이 부딪쳐 생긴 불꽃이 임신이라면 무척이나 당연하고 다행한 일이다.
정신의학자 스마일리 브랜튼 박사는 “성행위란 상대방에 대한 열렬하고 긍정적인 관심이다”고 정의하였다. 그러기에 그것은 자기본위적이어서도 안 되고 쾌락 충족만을 목적으로 해서도 안 된다. 더욱이 상대와 주변에 대한 파괴적인 행위여서는 안 된다. 음행에 대한 바울의 해석이 매우 재미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전6:18) 모든 죄는 남을 향한 것인데 유일하게 음행은 자기를 향한 죄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대로 한다면 내 몸을 해롭게 하는 담배, 술, 마약 등도 죄의 범주에 넣을 수가 있다.
모든 동물은 생식 본능 때문에 성행위를 한다. 생식의 욕구를 생각하지 않고 성행위를 하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다. 그 말은 인간의 성행위 속에는 복잡한 심리적 관계가 얽혀 있고 윤리문제가 내포되어 있다는 뜻이다. 모세는 제 7계로서 간음을 엄금했지만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자유 분망해 가고 있다. 성을 ‘하나가 되게 하는 행위’ 즉 새로운 단위의 가정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보는 성서의 사상(엡5:31-33)은 이제 너무나 고루한 생각인가? 인공수정이 가능한 현대에 사랑과 성의 분리가 더 뚜렷해진 듯 하지만 그 윤리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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