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어느 정도 짠가요?” “소금 넣지 말아주세요”
얼마 전부터 외식을 해야 할 때마다 어김없이 내 입에서 나오는 레퍼터리들이다. 뿐만 아니다. 집에서 요리할 때에는 아예 소금을 넣지 않고 있다. 소금! 소금! 소금! 밥 때만 되면 온통 내 머리 속을 헤집고 있는 단어이다. 내가 새 프로젝트로 삼은 ‘잃어버린 소 찾기’ 때문이다.
지난번 에세이에 내 신상정보 유출사건과 숭례문 화재사건을 연관시키면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이야기를 했었다. 그 글을 쓰면서 앞으론 이리저리 잘 살피면서 ‘소’를 잃지 말아야지 다짐도 했다. 그런데 그 글을 탈고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소’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지금까지 무탈했으니 앞으로도 쭉 ‘소’를 잘 지켜내겠지 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덜렁덜렁 부실한 티를 내는 ‘외양간’의 경고를 무시했었던 것이다. 신상정보 유출사건을 겪으면서 굳게 했던 다짐도 다른 ‘소’는 지켜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소’는 더군다나 자칫 영영 되찾을 수 없을 뻔한 정말로 소중한 것이었다. 다행히 아직 멀리 도망가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외양간을 아무리 말짱하게 고쳐 놓은들 아무 소용없을 뻔한 것이다. 바로 ‘건강’이라는 ‘소’였으니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꽉 막혀 버린 귀에서 묘한 금속성 소리가 나더니만 당해 본 이들은 모두들 ‘아주 끔찍한 경험’으로 동감할 수밖에 없는 소위 ‘현운증’(vertigo)을 겪게 되었다. 눈을 감아도 세상천지가 휭휭 돌아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약기운이 돌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 어지럼증이야말로 다시는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에 대한 의사의 진단은 ‘메리에르’라는 병이었다. 처방은 일단 술, 담배, 카페인, 소금 섭취를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소금의 하루 섭취 허용량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의사의 처방전을 그저 조금 조심하는 정도의 식이요법으로 여겼었다. 허용된 소금의 하루 섭취량은 2그램 이하. 어느 정도 줄여야 하나 가늠을 할 수가 없어 내 식단과 가장 유사할 한국 국민의 1일 소금 섭취량을 찾아보니 13.5그램이라 했다. 세상에 여섯 배 이상이나 줄여야 하다니… 게다가 여기저기 이미 알게 모르게 들어 있을 소금량을 고려한다면 그 외의 음식에는 소금이 거의 들어 있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말이 저염식이지 사실 거의 무염식 수준이었다.
이 무염식을 실천하려다 보니 식품 하나하나 그 성분표를 꼼꼼히 살피게 되었다. 덕분에 그동안 내 밥상이 얼마나 소금에 절어 있었는지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밤중에 출출할 때면 그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우리의 국민 메뉴, 라면 한 그릇에는 이미 내게 허용된 2그램을 훌쩍 넘는 소금량이 포함되어 있었다.
씩씩하게 ‘무소금’을 외치며 음식에서 소금을 몰아내다 보니 어느새 소금과 함께 진하게 맛을 냈던 양념들 또한 점점 사라져가는 듯했다. 어느새 소금밭 수준의 밥상이 아주 담백한 밥상으로 완전 탈바꿈을 하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소금과 진한 양념이 사라지자 그동안 그 빛을 잃었던 재료들의 참 맛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었다. 소박하면서도 자연 그대로의 화려함을 담고서 말이다.
사실이지 내 몸은 그동안 여기저기 자주 부어가며 나에게 줄곧 문제가 있음을 암시해 왔었다. 아침에는 얼굴과 손이 붓고, 후에는 다리가 붓고는 했다. 그저 보기가 약간 흉하고 조금 불편할 뿐 사는데 별다른 지장을 초래하지 않았기에 보이지 않는 어느 부위까지 붓는다거나 하여 이처럼 끔찍한 지경이 쉽게 찾아올 줄은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겪고 나서야 이만하기 천만 다행이구나 겨우 깨달을까 말까 하는 우리의 우매함을 어찌하겠는가.
이처럼 우리의 삶이 어쩌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배우는 과정 중에서도 ‘소’를 잃어버렸으니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후에 본전 생각나지 않도록 제대로 배우기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어서 결국 또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이번 수업에서는 우리가 밥상을 마주 하게 되는 하루 세 번이라는 반복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라는 사실 또한 새삼 상기하게 되었다. 하루 세끼 변함없이 마주하는 이 소박하고 진솔한 밥상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삶의 행보 또한 소박하고 진솔하게 하는 듯하니 말이다. 소금으로 절은 밥상을 퇴치하고 얻은 이 소박한 밥상이 내 삶 또한 혹시나 욕심으로 찌들어 피폐해지지는 않나 알게 모르게 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
김선윤
USC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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