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고문)
부활절을 앞둔 고난주간인 이번 주 기독교의 한 선교회가 좥미디어 금식좦이라는 이색적 금식운동을 펴고 있다. 밥을 굶는 금식처럼 미디어를 밥으로 생각하고 삼가하는 것인데 모든 미디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게임이나 채팅, 만화 등 불건전한 미디어를 삼가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경건해야 할 고난주간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인 만큼 한국의 대형 교회들을 비롯, 미주와 해외의 많은 교회에서 교인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의 음식이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듯이 미디어는 정신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독서가 마음의 양식이란 말이 바로 그런 뜻이다. 육체는 음식물을 섭취하여 얻은 영양분으로 성장하고 음식물에서 에너지를 얻어 활동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신은 각종 미디어에서 얻은 지식으로 성장하고 거기서 얻은 정보로 활동한다. 음식 없이 육체가 없듯이 미디어가 없이는 정신활동이 없다.
음식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단순한 자연생산에서 시작됐다. 그러다가 농업과 목축업 등 재배와 사육으로 발전했고 그 규모가 대형화한 후 인공가공식품의 생산으로 발전했다. 미디어도 처음에는 서적에서 시작되었는데 종류와 양이 아주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종류가 다양해졌고 수량도 많아 모든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매스 미디어의 발달은 지식과 정보의 홍수시대를 열었다. 근대에 들어 대중을 상대로 한 신문이 나왔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라디오, TV, 인터넷이 차례로 등장했다. 과거에는 미디어의 갈증에 목말랐던 사람들의 생활이 이제는 넘쳐나는 미디어의 홍수에 밀려 선택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어느 것이나 마찬가지로 양이나 수가 많다 보면 좋은 것도 많지만 나쁜 것도 있기 마련이다. 음식 중에는 몸에 좋은 영양분을 주는 것도 있지만 성인병을 일으키는 것도 있다. 성장기의 발육에 좋은 음식이 있는가 하면 노화와 질병의 원인이 되는 음식도 있다. 요즘은 모든 사람이 웰빙에 관심이 많아 음식을 가려서 먹는데 무척 신경을 쓴다.
음식과 마찬가지로 미디어 중에도 어떤 것은 우리에게 좋은 지식을 주어 정신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양서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서점이나 우리 주변에서 보면 쓸모없는 책도 수없이 많다. 요즘은 인쇄술이 발달하여 아름다운 편집과 활자로 만들어진 책이 도무지 읽을 거리가 되지 않아 종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정신건강에 도움은 커녕 오히려 해악이 되는 엉뚱한 내용을 쓴 책도 있다. TV 드라마만 보아도 불륜이 얽히고 설킨 진부한 이야기나 터무니없이 역사를 왜곡시킨 드라마가 부지기수이다.
그 뿐이 아니다. 과거에는 미디어가 제한적이었던 반면 내용이 어느 정도 여과되고 정제된 것이었는데 지금은 양적 팽창과 함께 절제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인터넷 뉴스에 대한 댓글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욕설 수준이다. 또 악플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다.그런데 몸에 나쁜 음식일수록 입맛에 좋은 것처럼 우리의 정신을 해치는 미디어일수록 유혹적인 측면이 있다. TV의 프로그램은 날이 갈수록 선정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 인터넷의 게임이나 채팅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 TV의 섹스폭력물은 정신적 타락과 심지어는 모방 범죄를 일으키고 인터넷은 게임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 채팅으로 인한 비행은 물론 중독성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말하자면 나쁜 음식을 먹으면 건강을 해치는 것처럼 불량 미디어에 빠지면 정신적으로 파탄을 겪을 수 있다. 더우기 나쁜 음식은 개체의 건강에만 악영향을 주지만 나쁜 미디어는 개체의 정신을 망쳐 사회적 문제까지 야기하게 되니 그 폐해는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웰빙은 육체의 건강만을 생각하여 음식을 골라 먹는데 그칠 일이 아니다. 정신건강을 위한 미디어 가려 먹기도 웰빙에 포함돼야 마땅할 것이다.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황폐화시키고 잘못된 정보로 행동을 오도하는 그릇된 미디어가 범람하고 있는 이 시대에는 미디어 금식이 필요하다. 미디어 금식이 비단 고난주일에 기독교인들에게 한정된 절제운동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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