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맛 때문에 과일로서 인기가 없었던 레몬은 성능과 품질이 조악한 싸구려 재화나 불량품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여 왔다. 그래서 이런 물건과 서비스가 교환되는 시장을 ‘레몬시장’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레몬시장’의 하나가 중고차 시장이다. 요즘은 차량국 기록 때문에 사고 여부 조회가 쉬워졌지만 구매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려고 하는 차의 과거 주행 상태와 성능, 그리고 사고 여부를 충분히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만한 정보를 되도록이면 숨기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면서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간에 ‘정보의 비대칭’이 형성된다.
보험시장도 마찬가지다. 보험사보다는 가입자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위험이 높은 사람은 되도록 정보를 감춘 채 열심히 가입하려 하는 반면 평소에 철저하게 위험에 대비하는 사람들은 보험료가 불공평하다며 오히려 가입을 꺼리게 된다. ‘레몬시장’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 같은 시장왜곡 현상을 바로 잡으려면 가입 희망자들에 대한 철저한 ‘스크리닝’과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또 일단 보험에 가입하고 나면 가입하기 전보다 사고 예방에 신경을 덜 쓰는 경향이 나타난다. 보험 커버가 주는 든든함 때문이다. 이른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고 불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과 이에 따른 ‘도덕적 해이’ 현상을 규명해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가 컬럼비아 대학의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이다.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내며 한국이 IMF사태를 벗어 날 수 있도록 돕기도 한 스티글리츠 교수는 미국 경제에 대해 수시로 쓴 소리를 던져 온 행동파 학자이다.
그는 몇 년 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을 때 이를 통렬히 비판한 바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당시 “자본주의는 전쟁을 필요로 한다고들 하지만 평화가 전쟁보다 경제에 좋다는 것을 1990년대 호황이 보여줬다”며 이라크 전쟁은 미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경고가 현실화 됐다는 내용을 담은 스티글리츠 교수의 신간이 요즘 워싱턴 정가를 달구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린다 빌머스 교수와 공동으로 쓴 ‘3조달러짜리 전쟁: 이라크 전쟁의 진짜 비용’(The Three Trillion Dollar War: The True Cost of Iraq Conflict)은 책 제목이 말하듯 이라크 전쟁에 소요되는 천문학적인 돈이 미국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고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책의 핵심을 요약하면 이렇다. “당초 예상보다 수십 배 많이 들어가고 있는 전비는 미국 내 은행의 자금을 고갈시켰고 신용경색의 보이지 않는 원인이 됐다. 또 현 고유가의 상당 부분은 이라크 전쟁 때문에 초래됐다. 이 전비가 복지와 구호 등에 쓰여 졌더라면 미국과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두 학자는 이라크 전쟁이 6년째로 접어든 지금 한 달에 무려 120억달러의 전쟁비용이 지출되고 있으며 오는 2017년까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전비는 못 잡아도 1조7,000억달러에서 2조7,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빌리는 돈의 이자만 8,160억달러이다. 너무 엄청난 액수라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책이 발간되자 이라크 전쟁을 지지해 온 보수진영은 “전비가 과다 계산됐다”며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이 가뜩이나 어려운 미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주장에는 달리 공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라크 전쟁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스티글리츠 교수에게 노벨상을 안겨 준 경제이론에 딱 들어 맞는다. 전쟁은 대통령과 국민들 사이의 엄청난 정보 비대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방적 설명만으로 시작됐으며 이런 비대칭은 지금까지 거의 그대로이다. 그런 가운데 정보를 틀어쥐고 있는 측이 천문학적인 돈을 국민들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 하고 강화하는데 쏟아부어온 것 또한 사실이다. 스티글리츠가 ‘도덕적 해이’라고 부른 바로 그 태도이다.
이라크 국민 대다수는 미국의 이라크 개입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남 돕는다면서 자식들 희생시키고도 고맙다는 말조차 변변히 듣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부시 대통령은 얼마 전 “개솔린 가격이 봄이면 갤런 당 4달러를 넘어 설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고 대답했다. 어려운 경제로 고통 받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대통령이란 사람의 이런 무심함에 분통이 터진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경제는 용수철 같아서 너무 과도하게 눌려 있게 되면 탄성을 잃어 버린다”는 유명한 비유를 한 적이 있다. 지금처럼 경제 위기감이 확산되고 끝 모를 전쟁이 계속되다가 미국경제가 아예 탄성을 잃어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가 점차 고개를 든다.
시장 정보의 비대칭을 줄이려면 무엇보다도 철저한 ‘스크리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노교수의 지론이다. 미국민들에게 모처럼 ‘스크리닝’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11월 선거가 그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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