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는 “소설이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새 정부 각료 인사청문회가 땅 투기, 논물 표절 등 갖가지 화제를 불러일으킨 데 이어 4월 총선을 앞둔 공천 심사가 웬만한 소설보다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라는 농담이다.
소설이 팔리지 않을 만큼 흥미진진하기는 지금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경선 중반을 지났는데도 누가 대선 후보로 결정될지 예측이 불가능한 민주당 후보 지명전 이야기이다. 지난 연말만 해도 철옹성 같던 힐러리 클린턴 대세론이 어느 순간 버락 오바마 돌풍에 무참하게 무너지더니, 이젠 끝인가 싶던 힐러리가 미니수퍼화요일을 계기로 다시 일어나 오바마 대세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변덕스런 날씨에 일기예보가 힘을 못 쓰듯 접전의 이번 선거에서 체면을 구기는 것은 여론조사이다. 똑같은 지역에서 실시했는데도 조사 결과가 들쭉날쭉 제각각인가 하면, 여론조사로는 분명 이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투표 결과를 보면 저 후보가 이기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유권자들이 마음을 정하지 못해서 표심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는 말도 되고, 유권자가 겉으로는 이 말을 하고 투표는 다르게 한다는 말도 된다. 이래저래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유권자들의 마음이다.
선거란 한마디로 유권자들의 마음잡기 게임. 마음을 잡아야 표가 따라오고 표가 모여야 이기는 게임이니 후보들은 유권자 심기 살피느라 고심에 고심을 한다. 다 잡은 것 같던 표심이 다음 순간 빠져나가 버리는 상황이면 유권자들의 머릿속에라도 들어가 보고 싶은 것이 후보들의 심정이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훔쳐볼 방법은 없을까. 다급해진 선거진영이 한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뇌파 추적이라는 첨단기법이다. 특수 헤드밴드를 착용한 자원봉사자에게 후보의 연설이나 TV광고를 시청하게 한 후 뇌파의 변화를 조사하는 방법이다. 당사자는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무의식 차원의 반응이 드러나는 것이 이 기법의 장점이라고 한다. 원래 상품 판촉을 위해 소비자 반응 검사용으로 쓰는 방법인데, 상품을 고를 때나 지지후보를 선택할 때나 무의식이 많이 작용한다는 이론이 바탕에 깔려 있다.
‘브래들리 효과’라는 것이 있다. 남가주 한인사회와 가까웠던 톰 브래들리 전 LA시장의 이름을 딴 용어이다. 시장으로 인기를 누리던 지난 82년 브래들리는 민주당 후보로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의 조지 듀크메지언 후보를 22포인트나 앞서있던 그는 당선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믿어졌었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뜻밖이었다. 듀크메지언이 근소한 표차일망정 승리를 했다. 즉각 여론조사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유권자들 중에 입으로는 브래들리를 지지한다고 하고 정작 표는 듀크메지언에게 던진 케이스가 많았다. 브래들리와 듀크메지언의 가장 큰 차이점은 피부색. 머리로는 브래들리를 지지하면서도 무의식 차원에서는 흑인 주지사를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였다.
‘브래들리 효과’가 이번 선거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다. 여론조사와 투표결과 사이의 혼선을 짚어보면 그 끝에 인종에 대한 무의식적 거부감이 도사리고 있으리라는 추측이다. 지난 연말 워싱턴 대학과 하버드의 연구진이 실시한 조사가 좋은 예. 이 조사를 보면 비공식 인터넷 여론조사에서는 오바마를 선호한다고 하고는 무의식 반응 조사에서는 힐러리 선호로 나타난 사람들이 많다. 두 후보 중 누가 본선에 나가든 ‘여성’ 혹은 ‘흑인’에 대한 무의식적 거부감의 벽을 넘어야 하는 것이 민주당의 숙제이다.
무의식 다음으로 표심에 영향을 주는 것은 감성. 키 큰 후보, 잘 생긴 후보, 머리숱 많은 후보가 이길 확률이 높다는 류의 조사결과들은 유권자들이 이성보다 감성에 많이 좌우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싸움이 힘들수록 후보들이 네거티브 전략으로 가는 것도 유권자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효과가 빠르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 선거이후 힐러리와 오바마 선거진영은 재빨리 필라델피아로 이동했다. 다음의 최대승부처인 펜실베니아의 표밭을 다지기 위해서이다. 생산직 근로자와 노년층이 많은 그곳의 표심은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 앞으로 6주간 표심의 흐름에 따라 미국의 대통령이 바뀔 수도 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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