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세일즈이다. 이념과 정책 그리고 정치인 자신의 개인적 매력을 상품으로 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시장에서 벌이는 경쟁이다. 세일즈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데서 성패가 갈린다. 소비자들의 욕구를 정확히 읽어내 그에 맞는 상품을 내놓는다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겠지만 욕구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선거도 똑같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정치적 상품을 내건 후보는 당선의 영광을 안지만 그렇지 못한 후보에게는 패배의 쓰라림이 기다린다.
세일즈 전문가들은 보통 고객을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매처’(matcher)이고 다른 하나는 ‘미스매처’(mismatcher)이다. ‘매처’는 변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의 상태에 전반적인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런 성향의 사람일수록 평생 한 배우자와 살 가능성이 높다. 이와 달리 ‘미스매처’는 변화를 갈구하고 이를 즐기기까지 한다. 이런 이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동차를 자주 바꾼다는 것이다. 상품을 팔 때는 상대가 ‘매처’형인지 ‘미스매처’형인지 잘 구분해 접근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성향은 개개인의 고유함이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이진 않다. 주변 환경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도 한다. 가령 타기 편하다는 이유로 기름 많이 먹는 SUV 차량을 고집해 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유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치솟는다면 기름 적게 먹는 하이브리드 차량에 눈을 돌린다. 환경이 바뀌면 그런 변화에 맞는 상품으로 고객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다. ‘진보’와 ‘보수’라는 개인의 고유성향은 있지만 정치적 환경에 따라 ‘매처’형 유권자와 ‘미스매처’형 유권자 비율은 수시로 뒤바뀐다. 성공적인 선거 전략은 수시로 변하는 이런 구성비를 정확히 읽어내는 데서 출발한다고 보면 된다. ‘시장조사’를 잘 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과에 따라 접근법과 메시지가 달라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맥락에서 힐러리 클린턴 진영은 문제점을 보여 왔다. 4년 전 별로 유능한 이미지를 주지 못하는 조지 W. 부시가 재선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변화보다는 안정을 원하는 ‘매처’형 유권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시 8년을 지나면서 미국의 위상이 말이 아니게 되자 “지금처럼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미스매처’형 유권자들이 크게 증가했다. 유권자들이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을 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도 힐러리 진영은 ‘안정된 국정수행 능력’과 ‘경륜’ 같은 ‘고인 물’ 이미지를 내세워 유권자들에 접근했다. 소비자들이 항상 상품의 구체적 성능을 꼼꼼히 따져가며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는 모든 것”이란 문구는 소비가 꼭 합리적 판단에 의해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정치적 구매행위인 선거 역시 그렇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건 힐러리 진영이 쓰디 쓴 패배를 체질개선을 위한 약으로 삼지 못했다는 점이다. 멀티미디어 시대인 21세기 선거에서는 감성이 큰 힘을 발휘한다. 패색이 짙었던 뉴햄프셔 예비선거를 앞두고 힐러리가 눈물을 보인 다음 승리했던 사실은 감성의 힘을 보여 준 사례였다. 또 최근의 잇단 패배는 감성이 결여된 힐러리 진영의 전략과 메시지에 시급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했다. 그런데도 힐러리 진영은 뉴햄프셔를 기억조차 못하는 듯 했다. 오히려 그동안 감성 캠페인으로 재미를 본 것은 남자인 오바마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대세론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면서 불거지기 시작한 캠페인 진영 내부의 불화는 힐러리의 이미지에 흠집을 냈다. 취임 첫날부터 안정되게 나라를 이끌 수 있다고 호언해 온 후보가 집안 단속도 제대로 못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그것이다. ‘치국’에 앞서 ‘제가’를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책이 따가울 수밖에 없다.
4일 4개주에서 실시된 ‘미니 수퍼 화요일’ 경선에 사활을 걸고 총력을 기울여 온 힐러리는 오하이오와 로드 아일랜드를 건지고 텍사스에서도 접전을 벌이는 등 소기의 전리품을 얻었다. 역전의 발판까지는 아니더라도 레이스를 계속 끌고 갈 동력과 명분은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그녀가 ‘언더 독’이라는 사실은 그대로이다.
일찌감치 후보를 확정한 공화당과 달리 민주당은 레이스가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집안 식구간의 앙금과 적전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힐러리에게는 부담이다. 일부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용퇴 압력을 잠재우는 길은 앞으로 남은 예비선거에서 판세를 확실히 장악하는 것밖에 없다. 힐러리가 후보가 되려면 남은 경선에서 6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판세를 확 바꾸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에 다가가는 접근 방식 또한 확 바꾸는 승부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같은 엎치락 뒷치락으로는 계속 이긴다 해도 근본적으로 판세를 흔들기에는 역부족이다. 어차피 승부수는 도박이다. 몇개 주에서 이겼다고 “오바마를 선택했던 구매자들의 후회가 시작됐다”면서 희망 섞인 해석을 내놓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실수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는 법이다. 4일 거둔 고무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여전히 힐러리 편이 아니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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