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서너 채, 재산 수십억’ - 이명박 정부 장관 내정자들의 평균적인 재력이다. 한국에서 돈 있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동산 투기를 해서 재산이 상당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막상 장관 내정자들의 재산 목록이 줄줄이 눈앞에 공개되니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배우 35년 하면…” “부부가 교수 25년 하면…” 수십억 재산은 기본 아니냐는 내정자들의 해명 앞에서 서민들의 마음은 편할 수가 없다. 누군들 수십년 일하지 않았겠는가. 그래도 여전히 먹고살기 팍팍하니 “세상 참 공평하지 못하다” “사람 사는 형편이 천차만별이다” 싶은 허탈감이 한국 뿐 아니라 미주 한인사회에도 있다.
‘강부자’로 불리는 한국 장관후보들의 재산이 화제였던 지난 주말,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문화권에 따른 일주일분의 먹거리’라는 제목으로 10장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첫 번째 사진은 독일의 4인 가족과 그들의 일주일 분 먹거리 사진. 갖가지 음료수를 비롯, 커다란 식탁 두 개를 그득 채운 식품들은 “저 많은 걸 정말 다 먹어치울까?” 싶게 많아 보였다. 이들의 일주일 식품비는 500달러 7센트였다.
다음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4인 가족. 식품비 341달러98센트로 사들인 피자, 포테이토칩, 패스트푸드 등 먹거리 대부분이 포장된 가공식품이어서 색깔이 화려하다. 이어 일본, 이탈리아, 멕시코 … 문화권이 바뀜에 따라 식품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흥미롭게 지켜보는데 에콰도르 가족을 보는 순간 퍼뜩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순서가 하나씩 내려가면서 먹거리의 양과 식품비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에콰도르의 단칸 오두막집 안에서는 아이들이 올망졸망한 9인 가족이 맨바닥에 먹거리를 쌓아놓고 활짝 웃고 있었다. 감자, 곡물, 조리용 바나나 등의 일주일분 식품비는 31달러55센트. 이어 부탄의 12명 대가족은 푸성귀와 감자, 곡물 등 5달러 3센트 어치로 일주일을 먹고 산다.
마지막 사진은 차드 난민촌에서 5남매를 기르는 홀어머니 가족이었다. 일주일 식량이라고 앞에 놓인 것은 물 한통과 곡식 몇 자루. 6식구의 일주일, 126끼로 나누면 끼니 당 한줌도 채 되지 않을 분량이다. 이 가족의 일주일 식품비는 1달러23센트였다.
같은 지구,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형편이 어떻게 이렇게 천차만별일까,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이 처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도 없을 것 같다.
이 사진들은 사진작가 피터 멘젤과 작가 페이스 달뤼시오 부부가 만든 책 ‘굶주린 행성: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Hungry Planet: What the World Eats)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이들 부부는 지난 2000년부터 24개국을 돌며 30 가족과 일주일씩 생활하면서 그들의 식생활을 카메라에 담고 글로 써서, 지구의 먹거리 현실을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5년 출판돼 화제가 되었고, 최근 한국어판이 나오면서 한국인들 사이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책을 통해 작가들이 지적하는 것은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인 먹는 일을 둘러싼 부조리이다. 선진국에서는 너무 먹어서 병이 들고, 후진국에서는 못 먹어서 병이 드는 부조리. 지구 한쪽에서는 폭식과 비만으로, 다른 쪽에서는 불공평하게도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하지만 결국 공평하게 같이 죽어가는 현실이다.
미국에 사는 ‘나’의 포식이 아프리카 어느 어린이의 배고픔과 상관이 있는 것일까. 선진국의 ‘나’와 제3세계의 ‘너’가 같이 먹고 살 길은 없을까 - 우리 모두가 물었으면 한다. 전문가들은 그 해답을 육식에서 찾고 있다. 잘 사는 나라 국민들의 ‘고기 욕심’이 현대 식량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수확하는 옥수수 콩 등 곡물의 절반은 사람이 아닌 가축들이 먹는다. 쇠고기 1파운드를 얻으려면 소에게 그 16배 무게의 사료를 먹여야하니 곡물 수요가 클 수밖에 없다. 육식 많이 하는 미국사람들이 고기를 10%만 덜 먹으면 남는 곡물로 10억 명을 배고픔에서 구할 수 있다니 대단한 양이다.
이번 주말 시장을 본 후 식품들을 식탁에 한번 나열해 보자. 어떤 먹거리들을, 얼마나 많이 먹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전체적으로 먹는 양을 좀 줄이고, 특히 고기를 좀 덜 먹으면 가족이 건강해지고, 기아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며,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다.
한국의 ‘강부자’ 내각 앞에서 느끼는 ‘불공평’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지구 저편 배고픔의 ‘불공평’을 해결하는 데는 우리가 십시일반의 미력을 보탤 수 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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