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 5년을 지나면서 일상화 돼 버린 단어인 ‘코드’를 학술적인 용어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스위스의 위대한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이다. 파란 불에 길을 건넌다던가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린다던가 하는 등의,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상징과 언어, 그리고 몸짓 등 모든 기호체계가 바로 ‘코드’이다. 이렇듯 ‘코드’에는 보편성과 중립성이 전제돼 있다. 그렇게 본다면 노무현 정권을 통해 ‘끼리끼리’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우리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코드의 의미는 본래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코드가 다르다는 것은 대화의 기호체계가 어긋나 있다는 말이다. 개와 고양이는 유전적으로 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 다툴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두 동물은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서로의 코드가 다르기 때문이다. 개가 앞다리를 치켜들면 “놀고 싶다”는 뜻이다. 그런데 고양이가 앞다리를 들면 이건 공격적인 신호다. “꺼지지 않으면 할퀴겠다”는 경고인 것이다.
이렇듯 다른 코드는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된다. 동물뿐만 아니라 남녀 사이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코드의 일치는 이해와 화목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국가들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언어와 이념은 고유의 코드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다른 이념은 종종 다른 코드 체계를 뜻한다. 그래서 상대 의중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힘들고 그것은 오해와 분쟁의 불씨가 된다.
결국 관계 개선이란 서로간의 보편성을 찾아내 코드를 맞춰 나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것에 가장 유용한 수단이 바로 ‘문화’이다. 국가 관계개선을 위한 문화의 유용성은 1956년 구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열린 보스턴 필의 연주회와 1973년 미·중 수교의 물꼬를 튼 필라델피아 필의 베이징 연주회를 통해 이미 입증됐다.
국가 간 장벽을 허무는 데는 정치적 수단이나 물리력보다 스포츠와 음악처럼 사람들 마음속의 장벽을 허물어 주는 문화적 수단이 훨씬 효과적이다. 문화는 무엇보다도 상대를 덜 자극하면서 감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현재 중동지역에서 뜨겁게 불고 있는 한류바람도 마찬가지다. 언어와 종교가 완전히 다른 이집트에서 ‘겨울연가’가 재방송 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이란에서는 ‘대장금’이 사람들을 TV 앞으로 끌어 모으고 있다. 한국과는 코드가 상이한 중동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현상은 국경과 사상을 뛰어 넘는 문화의 보편적 힘으로 밖에는 달리 설명되지 않는다.
뉴욕 필이 26일 평양에서 성공적으로 역사적인 공연을 가졌다. 이번 공연을 위해 뉴욕 필 단원을 비롯, 취재진 등 수백명의 미국인들이 평양을 찾았다. 한국전 종전 이후 이렇게 많은 미국인이 한꺼번에 북한을 찾은 것은 처음이며 공연장인 동평양 극장에 성조기가 걸리고 미국 국가가 북한에 울려 퍼진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뉴욕 필의 평양 공연은 ‘역사적’이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뉴욕 필은 공연에서 조지 거슈인의 ‘파리의 미국인’과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그리고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3막의 전주곡 등을 연주해 평양 시민들의 갈채를 받았다. ‘파리의 미국인’은 거슈인이 28세였던 1930년 찾은 파리의 인상을 랩소디 풍으로 경쾌한 선율에 담은 곡. 뉴욕 필 지휘자 로린 마젤은 이 곡을 소개하면서 “언젠가는 ‘평양의 미국인’이라는 곡이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마젤의 바람대로 이 곡이 탄생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음악 외교사절로 나선 ‘평양의 미국인들’이 얼어붙었던 두 나라 관계 개선에 긍정적 분위기를 만들어 준 것만은 확실하다. 서로 다른 코드를 맞춰 나가는 일은 ‘낯설음’과 ‘생경함’이 ‘익숙함’과 ‘친숙함’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상식의 오류사전’을 쓴 괴츠 트렝클러는 “개와 고양이라고 해도 약간의 훈련과 적응을 거치면 공동 언어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아무 문제없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뉴욕 필 공연이 북한 전역에 생중계 되고 이런 모습들이 서방 언론들의 카메라를 통해 미국인들에게 생생히 전달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해서 봄이 왔다고는 할 수 없다. 뉴욕 필의 성공적 공연은 분명 좋은 징후이지만 속단은 이르다. 이번 공연은 그동안 적대적이었던 미·북 관계가 덜 적대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소극적 모드’일 뿐, 완전히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적극적 모드’로 보기는 힘들다.
26일 영변 핵시설을 사찰한 미국 외교관은 “북한은 우리가 들려주는 음악은 듣고 싶어 해도 우리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 푸념처럼 북한은 젯밥에만 관심을 보일 뿐 핵시설 폐쇄에는 별로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
결국 두 나라 관계 개선의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는 셈이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할 경우 미국과 북한 관계는 이번 뉴욕 필 공연이 조성한 해빙 분위기를 동력으로 해 급속히 정상화의 물결을 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북한이 약속 이행에 불성실하면 뉴욕 필의 공연은 봄이 온 줄 알고 동토의 땅에 잘못 날아들었다가 얼어 죽은 제비 꼴이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2~3달이 관건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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