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 어른이 되는 것/ 그리고는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잃는 것//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
나이가 중년 즈음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하!’ 하고 공감할 이 구절은 ‘신과의 인터뷰’라는 시에 나오는 대목이다. 작자미상의 이 시에서 ‘나’는 신과 인터뷰 하는 꿈을 꾼다.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요?”라는 ‘나’의 물음에 신이 한 대답이 위의 말들이다. 신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또 덧붙인다.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 그리고는 결코 살아 본 적이 없는 듯 무의미하게 죽는 것”
시인은 신의 입을 빌어 우리 인생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
뭔가 대단한 걸 움켜쥘 듯이 서두르고 욕심 부리며 달리지만 지나고 보면 손아귀에 움켜쥔 모래처럼 다 빠져나가 남는 게 별로 없는 것이 대부분 우리의 인생이다. 그래서 “내가 제대로 산걸까?”싶은 회의와 함께 깊은 허탈감에 빠지는 순간이 닥치는데 그 시기는 대개 중년이다.
인생이라는 산등성이를 부지런히 오를 때는 모르다가 정상을 지나 내리막길에 접어들면서 눈에 들어오는 뒤늦은 깨달음 혹은 후회이다. 중년은 그래서 정서적으로 복잡한 시기이다.
중년이 어려운 시기라는 연구보고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연방질병통제예방 센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40대 중반-50대 중반의 나이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겉으로 별 문제없는 것 같던 중년의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남편이나 아내가 갑자기 자살을 해버려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케이스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5년간 전국의 사망률을 보면 45세-54세 연령층의 자살은 이전 5년간에 비해 거의 20%가 증가했다. 특히 여성의 자살은 무려 31%나 증가했다. 10대(15-19세)의 자살 증가폭이 2% 미만이고, 노년층(65세 이상)의 자살이 오히려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그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중년층의 자살이 늘어난 것인지 보건당국은 해답을 찾느라 고심 중이다. 이런저런 가능성들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 발암 위험 경고로 폐경기 여성들이 호르몬제 사용을 대거 중단한 것, 바이아그라 등 처방약 사용이 지나치게 늘어난 것, 베이비 붐 세대의 우울증 기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여성 호르몬제를 끊거나 처방약을 남용해서 초래되는 증상은 우울증. 결국 주범은 우울증으로 좁혀지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지난달 말 “중년은 일생 중 가장 우울한 시기”라는 연구 보고가 나왔다. ‘사회학과 의학’이라는 저널에 발표된 이 연구는 세계 80개국, 200만명을 대상으로 우울증, 불안, 행복, 인생에 대한 만족도 등을 30여년에 걸쳐 조사한 것이다. 그 결과에 의하면 남녀 구별 없이 40대가 되면 우울해지고, 그 중에서도 44세가 가장 우울한 나이이다.
중년이 되면 왜 우울해질까? 호르몬 변화로 인한 정서적 불안정이 제일 큰 원인으로 꼽힌다. 알뜰살뜰 살림하던 여성이 갑자기 사치를 하거나, 가정적이던 남성이 늦바람에 빠지는 등 ‘중년의 위기’는 호르몬 변화로 인한 우울증이 그 바탕이다.
아울러 중년층을 우울의 나락으로 밀어뜨리는 원인으로는 정신적 요인을 빼놓을 수가 없다. 생의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듯한 막막함이다. ‘이 길이다’ 믿고 수십년 달려왔는데 어느 순간 둘러보니 ‘이게 아닌데’ 싶은 자괴감, 그래서 이대로 살수도 없고, 이대로 죽을 수도 없는, 손발이 꽁꽁 묶인 듯한 무력감이 종종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인도에서는 50세를 바나프라스타라고 부른다고 한다.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볼 때라는 의미이다. 아이들 키우며 먹고 사느라 허겁지겁 살던 삶에서 벗어나 존재의 의미를 추구할 나이라는 해석이 된다.
우리가 살면서 저지르는 어리석음도, 중년의 우울도 결국은 번뇌의 산물이다.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는 것’이 해결책이다. 육체의 삶을 줄이고 정신의 삶을 늘리는 것이다. ‘결코 살아 본 적이 없는 듯 무의미하게 죽는 것’을 피하려면 중년부터는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