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동안은 직업상 필요해서, 또 원래부터 좋아해서 책을 참 많이 읽었다. 보통 두서너 권을 한꺼번에 읽어가는 식이였다. 기분 따라서 다른 책을 펴 읽어도 전혀 내용이 섞이지 않았고 진도에도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시를 읽는 일은 다른 영역이었다. 산문과 달리 마구 읽을 수 없는 것이 시라는 영물이다. 은퇴한 지금 나는 시를 읽을 수 있는 행복을 체험 하고 있다.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볼 때/ 내 가슴은 높이 뛰 네/ 내가 태어 낳던 때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다 네/ 내 나이 먹어 늙어도 여전히 그러 하리/ 그러지 못하다면 차라리 나를 죽게 하라/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이 시를 쓴 시인을 나는 사랑한다. 19세기 낭만파 시인의 대표 주자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 영국)는 일상의 평범한 사물을 전혀 평범하지 않은 감성으로 노래했다. 어린 시절에 느꼈던 경이로움을 세월 속에서도 잃지 않는 재능은 시인에게만 가능하다. 또 내가 좋아하는 그의 시에 ‘수선화’가 있다. “저 계곡과 언덕을 높이 떠도는/ 한 점의 구름처럼 외로이/ 나는 그렇게 방황 했다네” 로 시작되는 이 시를 나는 대학시절에 절절한 심정으로 암송하곤 했다.
외롭게 방황하던 시인은, 그러나, 호숫가 나무아래서 줄 지어 늘어 선채 함께 춤추고 있는 수선화 무리를 발견한다. 하늘의 은하수처럼 끝도 없는 물가를 따라 수만 송이의 꽃들이 빤짝이며 살랑대는 모습에 시인은 넋을 잃고 외로움도 잊고 만다. 뿐만 아니라, 이제 시인은 혼자 있을 때도 오히려 고적함을 즐기면서 수선화들의 춤을 마음 안에서 재현해 본다. 그리고 기쁨으로 가득 찬 자신을 발견한다. 시인은 자연 속에 몰입되고 자연은 시인을 그 한 부분으로 받아 들여 함께 융화되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 이 시를 애송 하면서 나는 가 본적이 없는 먼 나라의 사원과 호수와, 그 주위에 피어있는 수만 송이의 춤추는 수선화를 그리워했다.
“아름다운 사물은 영원한 기쁨” 이라며 ‘아름다움’에 바치는 헌시, ‘엔디미온’을 남기고, 26살의 꽃다운 나이에 죽은 또 다른 낭만 시인, 잔 키이츠 (John Keats 1795-1821, 영국)도 내가 사랑하는 시인이다. 낭만파들과 그 후의 빅토리아 시대까지의 시인들이 나의 정서에 딱 맞는 것 같다. 나에게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싹틀 수 있게 가르쳐 주신 P 선생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은 시를 쓰고, 시를 읽는 기쁨과 괴로움에 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시인은 태어나는지 혹은 만들어 지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남이 쓴 시를 읽고 사랑하는 마음도 분명히 시를 쓰는 마음만큼 태생적이거나 후천적 길들임에 달렸다고 믿는다. 나는 불행하게도 시를 쓰는 재능은 못 가졌지만 남이 쓴 좋은 시를 읽고 감동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시 쓰는 사람을 먼발치에서 부러워한다.
언젠가 한국에 갔을 때 옛날에 알던 어느 시인이 만나지 못하던 사이에 출간한 시집을 3권이나 주었다. 또 한 사람의 여류시인도 역시 3권을 주었다. 그들의 시는 옛적에 미숙한대로 좋았고 나는 밤늦도록 그들의 시를 읽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렇지 못했다. 난감한 일이었다. 후에 그 중견 여류시인이 내게 말했다. 당신의 한국적인 정서는 30년 전에서 멈추어 버렸기 때문에 이런 시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야. 그런가 봐, 나는 풀이 죽어서 대답했다. 그러나 책 출판에 급급해서 양이 질을 희생시키지 않았나 생각했다. 같은 지역에서 반드시 동시대를 살아야 공감대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김소월, 한용운, 윤동주 같은 시인들을 틈틈이 읽는다. 문학뿐 아니라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클래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우리 가슴마다에 어필하기 때문에 클래식으로 남는 것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군가가 감동할 수 있는 그런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을 나는 사랑한다. 시를 읽을 때면 생각나는 P 선생님. 그분이 좋아하셨던 미국의 여류 시인, 세라 티즈데일(Sara Teasdale, 1884-1933, 미국)의 ‘별’을 읽는다.
“나 혼자 이 밤/ 어두운 산언덕에 서다/ 향기롭고 고요한 소나무들이/ 나를 에워싸고/ 머리 위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 흰색 황옥색 그리고 물기어린 붉은색/ (약) 산과같이/ 웅장한 둥근 하늘에서/ 행진하는 별들을 나는 보노라/ 장엄하고 고요한/ 그리고 나는 아느니/ 저리도 장엄한 광경을/ 목격하는/ 이 영광을”
송정원
전베벌리힐즈 도서관 사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